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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소일 Apr 12. 2023

털 많이 빠져요?

개털과의 전쟁


 어느 날, 남편이 지인의 장례식에 갔을 때 일이다. 부고 소식을 들은 후 남편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검은색 양말을 신었다. 집을 나서기 전, 나는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곳곳에 붙어있는 밥풀의 털들을 돌돌이로 열심히 떼주었다. 남편은 장례식장에 다녀왔고, 집으로 돌아와 내게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름 아닌 ’개털‘ 이야기였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고 고인을 향해 엎드려 절을 하는데, 검은색 양말에 촘촘하게 개털이 붙어있던 하-얀 발바닥이 드러나는 순간 고인의 가족들이 빵 터졌단다. 아, 내가 차마 양말까지는 신경을 못 썼구나! 아차 싶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한 날과 하지 않은 날의 집의 상태는 확연히 다르다. 청소하지 않은 날엔 거실 바닥이 개털로 수북이 쌓여 먼지와 털이 뒤엉켜 여기저기 굴러 다닌다. 결벽증까진 아니지만 바닥에 털들이 굴러다니는 게 너무나 못마땅한 나는, 밥풀을 입양한 후 더욱더 깔끔을 떨면서 유난스럽게 청소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밥풀과 함께 산지 2년이 되어가니 이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개털과 타협하면서 개털과 함께 공생하고 있다.



  밥풀은 겉으로 보기에 털이 잘 안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의 짧고 뾰족한 털은 여기저기에 박혀서 잘 털리지도 않고, 심지어 납작하게 뉘어 자라는 이중모를 지니고 있어서 분홍색의 피부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고 촘촘하게 자란다. 이러한 털이 엄.청.나.게. 빠진다. 1년 365일 내내 털갈이를 하는 것만 같다. 나는 가끔 밥풀에게 ‘밥 먹고 털 싸는 애’라고 부른다. 진짜 많이 빠진다. 그렇게 털이 빠지는데도 항상 털이 자라서 부러울 때도 있다. 평생 탈모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밥 먹고 털 싸는 애를 보고 사람들은 털이 잘 안 빠질 것 같다고 많이들 물어보셔서 나는 그저 억울할 뿐이다. 특히 개 키우시는 분들은 털을 밀었냐고 물어볼 정도로 짧아 보인다.(하지만 그녀는 애견 미용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매일 집 청소를 하다 보니 청소 아이템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부 4년 차, 청소는 역시 아이템빨이라는 것을 몸소 느낀다. 실리콘 브러쉬로 된 빗자루(개털청소의 끝판왕. 강력추천템!), 부직포 막대걸레, 스팀청소기, 소파용 습식청소기, 코드제로 등 없는 청소도구가 없다. 코드제로 청소기의 경우, 사람 머리카락 보다 개털로 가득 찬 먼지통을 비울 때면 주인을 잘못 만나 개털로 고생하는 청소기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집 안의 개냄새 제거를 위해 각종 소독제와 탈취제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편백수, 차아염소산수, 70% 에탄올, 반려동물 전용 탈취제 등이 있다. 이 정도면 청소 전문업체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우리집에 놀러온 이모 팬을 위한 밥풀의 특급 팬서비스


 집 안의 공간 중에서 밥풀은 거실에서만 지내고 있다. 거실은 너의 공간, 방은 사람의 공간으로 구분해서 알려줬고, 특히 침대를 공유하는 것을 절대 금지했다. 남편과 나는 안방의 침대에 들어올 때는 잠옷으로 환복 하거나 탈의하는 것을 규칙으로 정했다. 집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다니며, 손님이 방문할 때는 손님용 슬리퍼를 내드린다. 그리고 지인이 집들이로 방문하기 전에 검은색 옷은 가급적 지양해 달라고 미리 부탁드린다. 현관에는 강력한 돌돌이 테이프가 구비되어 있다.(흔히 시중에 파는 일반 돌돌이로는 밥풀의 털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초강력 접착력으로 유명한 제품만 골라 사용한다.) 개털이 가장 많이 묻어 있는 소파매트와 밥풀이 담요는 매주 세탁을 하는 편인데, 우리 집 세탁기와 건조기가 늘 힘겹게 일하고 있다. 특히 건조기에게 무한 감사할 정도다. 기특하게 건조기만으로 세탁물에 붙은 개털의 절반 이상을 제거해 준다. 단, 건조기의 필터는 개털로 촘촘히 박혀있어서 매번 필터청소를 잘해야 한다. 또한 화장실과 다용도실의 배수구는 뚫어뻥 세정제를 붓고 개털로 막히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가장 씁쓸하게 하는 것은, 옷 쇼핑을 할 때 평소 좋아하던 검은색 옷 보다는 개털이 묻어도 잘 티가 나지 않는 밝은 색깔의 옷을 고르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개털‘로 비롯된 일들이다.



 이 지긋지긋한 개털로 이젠 털반지를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연히 반려동물의 털로 주얼리를 만드는 브랜드를 알게 되어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털반지를 제작하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지 항상 밥풀과 함께하는 기분이 들어서 주문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려동물 보호자에게는 추억이 될만한 꽤 좋은 아이디어 같다. 비록 지금은 매일매일이 개털과의 전쟁이지만, 맨날 욕하면서 개털 청소를 하지만, 봄날에 벚꽃 잎 날리듯 개털 풀풀 날리던 날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때가 언젠가는 찾아오겠지. 가끔은 나의 모든 삶에 밥풀이 관여하고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날 때가 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모두 다 밥풀의 흔적이 안 묻은 데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밥풀이 떠나가버리면 나는 어떡하지. 내 곁에 있을 때 잘해줘야겠다. 뒤늦게 후회하지 않도록.




밥풀 인스타그램  |  @kimbobpurii

https://instagram.com/kimbobpur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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