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소원
어머니는 이제 칠순 넘었지만 초등 때 기억이 많이 나시나 봐요.
중학교는 못 나오셨어요. 대신 결국은 방송 중/고 졸업으로 설움을 푸셨습니다.
고향 초등 동창 모임에서 있었던 일도 가끔 얘기하시고요.
요즘 한 번씩 옛날 사진 찾았다면서 보내주시는데, 어머니 얼굴이 지금과 조금 다릅니다.
이번에도 희귀 사진 발견했다고 초1 사진을 보내셨지만,
사진 속 몇몇 아이 중 누가 어머니인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귀티 나는 아이로 대충 찍어봤는데 어머니가 그 아이 아니랍니다.
카톡으로 서운한 티를 내시면서, 구석에 있는 작은 아이를 지목하시네요.
물론 어머니께는 귀엽다고 했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 나이답게 조금 꾀죄죄한 느낌이 있었어요.
어머니는 나이를 먹으면서 예뻐진 거네요.
저는 상상을 해봅니다.
7살의 이 조그맣고 천진난만한 어린 여자애가 70살의 할머니가 되는 과정을.
이 아이가 친구들과 마냥 즐거웠던 건 한 때입니다.
새엄마와 지내면서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집니다.
20살 사무원으로 지내면서 외로움이 더해집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결혼해 말씀이 적은 시어머니를 만나면서 긴장감으로 표정이 굳어버립니다.
집 안에 돈은 없는데, 장남의 아내로서 책임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첫째 아들이 장애를 가지면서 마음속의 간절함이 몸과 하나가 됩니다.
어머니의 청춘은 짐이 많아 보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무엇이 행복을 주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이 학교에서 반장을 맡고 상도 자주 타오면서 그제야 굳은 어깨가 좀 펴집니다.
말 안 듣고 짜증 잘 내던 막내아들이 군대 갔다 와서 존댓말 쓰니 귀가 좀 열립니다.
오래전 자신만 알면 충분하던 초1 여자 아이가,
가족 생각으로만 마음을 가득 채운 어른이 될 줄 알고 있었을까요?
고된 인생이 반드시 불행한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미 없는 인생이 불행한 것이죠.
세 아들을 키우고, 그중 두 아들은 자손을 가졌습니다.
그중 두 손녀가 할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형태는 실상 바라던 것의 실현이라고 믿습니다.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을 가슴 깊이 품었던 어머니 모습을,
막내아들은 기억합니다.
어머니는 편안한 인생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삶을 바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용기 내 그 말을 한 아들에게서
또한 맘 편히 "할머니 사랑해요." 하는 손녀들이 태어난 것도
우연이 아닐 겁니다.
아마도 지금의 어머니의 삶은
꾀죄죄한 초1 꼬마의 무의식적 소원이 이뤄진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이번엔 초등학교 졸업 사진이란다.
여기서 네 엄마가 누구인지 맞춰보렴.
참고로 네 아빠는 바로 찾아냈단다. 못 찾으면 넌 아들도 아니야."
... 그럼 게임을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