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고 Apr 25. 2024

I (나)

0. I am that I am.


심지어 성경 속 하나님도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나'일뿐이다. 특정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호와'라는 이름도 히브리어로 풀이하면 위의 말이라고 한다. tetragrammaton)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어렵다고 해도, 나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 정체성을 모른다. 기껏해야 자신보다 작은 무언가에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을 뿐이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고민 속에 나를 집어넣는다. 나는 그 고민보다 작아진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 빈곤함 속에 누워버린다. 나는 너무 부족해서 둥둥 떠있고 만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라는 실체를 보고 느낄 수 없는 것이 나를 스스로 있게 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I 를 찾고 싶다.'


우리는 목적지를 정하고 몸이 그 장소로 이동해 살펴보며 느끼는 것을 여행이라고 부른다. 마음이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룰 생각에 도달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여행이다. I 를 찾아 나선 마음의 여행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1. I 는 노래를 불렀다. 


여행은 나를 노래하게 만들었다. 여차한 과정은 생략하고, 노래를 위해 뱃속의 마지막 숨까지 쥐어짜 낼 때, 운동의 한계에 부딪힐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고양감에 도달했다. 내 안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는 것을 알았다. 객관적으로도 나는 연습한 만큼 더 고음의 더 긴 호흡의 소리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런 얘기가 아니다. 내 관심사는 기교가 아니다. 


노래하는 동안 나는 내 본질적인 목소리에 도달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40년 동안은 I 로서 드러내지 못했던 목소리였다. 이 여행을 결심하고서, 나는 내 목소리를 제대로 발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완벽하게 내는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 I 가 노래하고 I 가 말하도록 할 것이다.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2. I 는 페인트 칠을 했다.


누수로 얼룩진 벽지를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지만 이제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해 냈다. 누수 잡는데 수개월이 걸려서 겨울 동안은 숨 좀 돌리고 이제 봄이 되어서 뭐라도 해보자던 참이었다. 사람을 불러서 벽지를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같은 색의 실크용 페인트로 직접 칠하는 사례도 있었다. 나는 페인트칠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지만 우선 가장 심한 구석진 곳에 연습 삼아 칠해본 다음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로 날을 잡아 광범위한 부위에 칠을 시작했다. 잊지 않았다. 나는 I 를 찾고 싶어서 이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작업을 결단하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칠은 잘 되었다. 까다로운 아내의 눈에도 마음에 들 정도면 성공적이었다. 그때 아내는 나에게 중요한 단서를 던져줬다. "당신이 이 정도로 집을 사랑하는지는 몰랐네." 이 말의 효력은 그날 밤부터 나타났다. 내가 하얗게 칠해서 더 깔끔해지고 예뻐진 집. 나는 이 집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처음 이 집을 구해 올 때, 여기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을 기대했다. 아이들이 더 행복해할 것을 기대했다. 오래 남을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다가 누수, 누전 등과 싸우면서 그 기대를 다 잊고 말았다. 죽어가는 집을 살려내기 위해서 종일 칠하고 다듬고난 뒤, 그날 밤에 모든 기대는 다시 돌아왔다. 이것이 내 집이다. 이런 기대감, 애정을 안고 살아가는 집이 바로 내 집의 처음 모습이자 본질이다. 그리고 이 본질을 찾아서 기뻐하는 내가 바로 I 이다. 


3. I 는 소망한다.


아기와 작은 동물의 좋은 점은 그들과 눈을 맞추어도 된다는 점이다. 한 때 아기였던 딸들은 이제 오래 눈을 맞추기엔 좀 부담스러운 어린이가 되어 버렸다. 그들과의 스킨십조차 더 부담스러워지기 전에, 만나면 안아주고 들쳐 매고 던져주고 마사지도 해준다. 마사지는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귀찮아하면 I 에게 호소한다. 오늘 밤도 좀 만져달라고. 사실 I 는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길 원한다. I를 찾고 있는 나는 본질의 요구에 순응하기로 했다. I 의 소망은 주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이다. 이 여행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주면 줄 수록 I 는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병원 수족관에는 애완 거북이 한 마리가 있다. 금붕어는 눈을 맞추지 않지만 거북이는 종종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는 그의 느릿함이 좋다.  눈이 작아서 사람처럼 그 눈동자에 내가 비치지는 못하지만, 거북이의 마음과 거북이의 본질은 어떻게 드러나나 상상하면서 본다. 반대로 거북이는 내 눈을 살펴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어째서 이 생물은 내 코나 입이나 목이 아니라 눈을 볼 생각을 했을까? 나는 감탄하며 예의 바르게 그에게 나를 소개해준다.


I am that I am.

작가의 이전글 [헤어질 결심], 진실의 선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