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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Sep 03. 2024

사랑이 아닌 상거래를 한 나에게

게임중독 남편을 버리려다가 법륜스님을 만나버렸다



퇴근한 남편은 여전히 게임중독 경증이다.

지금 이 새벽 시간에도 이미 1시간 전에 굿나잇 양치를 하고 작은방으로 자러 들어간 남편은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저께까지 이 남자와 계속 살아야할까 를 고민하던 내가,

엄청난 평화를 얻어버렸다.

그것도 공짜로.


지인들이 법륜스님 강의를 보라고 할 때는 그냥 그저그런 종교인의 강의아닐까 하고 보지 않고 넘어갔던 것인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오늘 본 내용의 강의에서는 60대 여성 보살이 법륜스님을 찾아왔다. 보니까 강연 형식은 방청객들이 직접 마이크를 들고 질문하는 내용에 법륜스님이 본인과 불교교리를 곁들인 대답을 해주는 식.


남편이 죽은지 20년이 지났다는 여성은 신기가 있다는 이야길 듣는다.

점사보러 갔더니 직성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뭐하러 여기까지 왔냐고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법륜스님에게 물어본다.

그걸 법륜스님 왈,

"직성? 성질이 더럽다 이거지 뭐."


낮이나 밤이나 수시로 절에 가서 울었다는 여성.

기도를 많이 하면 손자가 좋아진다고 하는 것도 좋지만

손자를 위해 보시를 많이 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를 또 묻는다.

2년을 별러서

가게 손님까지 내쫓고 법륜스님을 찾아왔다는 이 여성의 주된 질문은


딸은 사위가 파출소소장이니 걱정없는데

아들이 심리불안과 결벽증이 있어서 빚은 2억이 있고, 직장이 없어서 아들한테 유산을 주려하니 딸이 가만히 안있을 것 같고,

죽은 뒤에 그 재산으로 남매가 싸울 생각을 하니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아주머니.....


그랬더니 법륜스님이 염불로 노래를 시킨다.

관세음보살을 트로트에 넣어서 해보라고 했더니,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를 바꿔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로 바꿔서 흥겹게 부르시는데 노래 너무 잘하시는데??


1300년 전에 원효대사도 학자로서 서민들에게 알려주려고 했던 불교 교리를,

무지한 서민들이 들으려 하지 않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보니

자기 교리를 졸다가 가버리는 사람들이 광대를 보면서 재미있어 하는 걸 보고

연구를 해서 자기를 내려놓고 무가해곡과 무해의 춤을 추었더니

깔깔대고 웃으며 재미있어하면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천민도 배울 수 있었다고.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두 분에게 귀의한다는 말입니다. ‘나무’는 귀의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두 분에게 귀의한다는 것 입니다. 아미타불은 극락에 계신 부처님이고,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중생들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분입니다. 또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을 염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 분들께 귀의한다는 뜻과 함께 이 분들처럼 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대자대비 (大慈大悲)  

넓고 커서 끝이 없는 부처와 보살의 자비. 특히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이른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신내림을 받아 신을 모실 수도 있다며 설명을 해주고

불교는 누굴 모시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종교라고 말한다.


불교는 알면 알수록 수용성이 높은 종교인 듯 하다.

기독교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데 반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교리 역시 신기하다.

9살부터 21살까지 권사인 할머니를 따라 다녔던 나인데,

그 오랜 시간 받아들이기 힘들던 교회의 교리보다 자기 전 잠깐 보는 이 즉문즉답의 강의 내용이 수년간의 교리보다 더 녹진하니 내 뇌와 가슴에 배어드는 것만 같다.


절도 안다니는 나에게 불교 교리가 더 깊이 와닿는 건, 이 사람은 자신의 무욕을 위해

가정을 이루지도 않고,

늘 수련을 하며 살고 있다는 게 증명이 됐으니까 더 진실성이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것 같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몽이라는 책에서 나온 정신분석에 대한 내용까지 간단하게 설명하는 법륜스님은

신내림 쪽으로 가지 않으려면 꿈에 의미부여를 하지 말라고 얘기해준다.

자기 종교에만 갇혀있지 않고, 학문까지 넓게 연구하셨기에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절에 가든

교회에 가든

지나가다 불쌍한 사람을 보든


손자를 생각하면서 작은 돈이라도 꾸준히 베푸는 게 좋다.


밑거름을 많이 해놔라.

조금씩 조금씩 널리 보시를 하세요.


내가 보시를 한다, 하고 드러내지 말고..



성인은 복을 지어도, 복을 지어놓고 받겠다는 거는 당연한 법칙이야.


더 수행자는 복을 지어도 지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복을 받겠다는 생각을 안 한다는 것.

이걸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받는 게 없어도 하늘나라에서는 더 큰 복을 받는다는 교리를


불교 교리로는

무주상보시.

무주상보시의 공덕은 저 허공보다도 더 크다.

칠보로 허공을 채워도 무주상보시에는 못 미친다.


대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짓는 보시는 보시가 아님을.

베풀고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놓고 미워하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 대가를 갈구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베푼 것 없이복을 받으려 하고

자긴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갈구하면 어리석은 중생이고,


조금 사랑해놓고 많이 받으려고 하면

인연을 짓고 받으려 하니

인연 이치는 아는 사람이니 현인이다.

돌아오면 다행이지만 안돌아오면 불행하다.


성인은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마라."


우리가 설악산에 가서 산 좋으네~ 하며 산을 좋아하면

산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은거다.

바다봐라!!

꽃봐라!!

하고 좋아하면 그 대상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대가성이 없는 사랑이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왜 말이 없어?"

"편지 3번이나 했는데 왜 답장안해?"

"전화 2번이나 했는데 왜 전화안해?"


사랑이 아니라

상거래를 했으니

밑졌다.

손해봤다. 하며 미워하는 거라고.


상거래,장사를 하지 말고

사랑을 하라고 말한다.


부모가 자식 키우는 데 장사속으로 하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 아이가 말을 안들으면 "내가 너 키우는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라고 말하는 것은

본전 생각한다는 말이다........


진짜 대단한 인사이트다.


자식 키우는 걸 주식 투자하듯이 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한다.


스무살까지 키우는 건 부모의 의무.

그 뒤로는 간섭도 바라지도 말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손자 도우려면 그렇게 무주상보시를 해야 공덕이 크다.

자기가 뭐 재벌도 아닌데 얼마나 받겠어.. 뭐 롯데타워 하나 줄 수 있어??

그거 대신에 더 큰 마음이 되고자 하면 손자에게 공덕이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말고, 이 세상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풀면 된다."



바로 지옥으로 갈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나 병을 만나고 재앙을 만난다고.


좋은 일만 생겨야 공덕이라고 생각하는데

재앙마저도 공덕인 줄 알면

이 세상을 사는데 두려울 게 없어진다.


재산을 어떻게 할꼬.?

아들주면 딸이 난리고

안주면 아들이 난리고

죽으면 재산가지고 싸울거고.

그럴때는 누굴 주면 좋다?

법륜스님을 주면 좋지.


그럼 나는 그걸 북한이나 인도에 가난한 사람을 위해 주면 좋지.


말씀도 참 재미있게 하니 강연을 나도 들으러 가고 싶어진다.


(사실 딸 1억 아들 1억 주는 게 제일 낫지

그게 제일 공평하지 않을까.

공덕을 생각하면 거기서 천만원씩 빼서 기부하면 좋겠다......)


스님 입에서

"그냥 죽으세요." 라는 말도 나온다.



"아들딸 싸우든지 말든지

죽어서도 싸울 게 걱정이면

그냥 스님한테 주고 죽으라잖아!!!

신기가 좀 있는 줄 알았더니 별볼일 없네?"



1시간 남짓한 영상을 보고 나서 느낀 점은

내가 남편한테 바란 대가로 요구했던 감정들과 언행들은


사랑이 아닌 상거래였던 것이라는 것.


어제 봤던 김창옥교수님 강의 내용 중에 " 결혼은 내가 손해봐도 괜찮다는 사람과 하세요" 라고 했던 말이랑 결이 비슷한 것 같다.


9년 전 남편의 청혼을 받았을 때의 나는

"남편 사지가 없어져도 내가 먹여살릴 수 있는가?"

이 고민의 답을 내리고 이 남자와 결혼을 했던건데


어떻게 보면 나는 초심을 잃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산,

내가 좋아하는 바다,

내가 좋아하는 구구를 보듯

남편을 봐야 한다는 것을

새벽에 깊이 새겨본다.


그러고나니


불현듯 떠올라 괴로웠던 남편과의 시간보다

같이 9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해주며 견딘 희노애락이

감사해지는 새벽.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정말.

치사하고 간사하고,

때로는 가엾다.


오늘 이 밤이 괴로운 누군가에게

뼈때리는 혼자사는 남자스님의 강의를 건네본다.


https://youtu.be/P29Dm56GxOg?si=oxLhZD-2YfeV-o7b


https://youtu.be/SZ3-mMFthgU?si=HFFDyA9bfW5qIw9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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