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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Nov 22. 2024

취업 3주차 중고신입의 다짐

힘을 숨기고 빼는 경험치를 쌓는 중




10.28 첫 출근을 하고, 이제 3주가 지나가기 전이다.

요즘 살림에 재미든 백수 남편의 내조를 받으니, 내가 진짜 돈만 많이 벌면 남편 살림하고 내가 벌어오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살림을 정말 못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살림보다는 일이 재미있어서......)


20대의 나는 혈기왕성 + 정의감 투철 + 심한 도덕성(윤리의식) 때문에 우여곡절 많은 직장생활을 했다.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고 가정형편 때문에 일찍 생계를 꾸려야 하다보니 원하는 직장보다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간 곳은 사무보조, 경리 이런 일들이었다.


1. 첫번째 직장에서는 아침 6시 일어나 밤 10시에 집에 들어왔다.

위경련 두번으로 퇴사를 하긴 했지만, 그 시절 나는 강제로 워커홀릭이 되어 밤 늦은 시간까지 대표이사의 채찍질에 꽤나 매운맛 직장을 다녔다.


2. 중소기업 대표나 임원들 일부는 신입 여직원이 조금 예쁘거나 어리다(나는 예쁘지 않고 어렸음) 싶으면 건드리고 싶어하는 인간 이하의 금수들이 있게 마련이다. 손을 잡아보면 안되냐는 대표이사에게 사모님 번호를 주시든지 영상통화를 켜시면 손을 드리겠다고 했다가 쌍욕을 먹기도 했다. 퇴사하는 날에도 자기 집에서 재택으로 일하면 일당 30만원을 주겠다길래 사모님한테 전화한다고 하니 빨리 꺼지라고....ㅋ


3. 결혼 후에 잘 다닌 직장에서는 대표이사 (그 늙은이 아들이 둘이나 있었는데 둘다 유학을 보냈다가 한국에 잠시 들어오면 회사 직원을 시켜서 공항으로 차를 대기시키고 갑질이 대단했던...)가 딸뻘 되는 여직원한테 성희롱 발언(치마 입었네? 몸매좋은데? 한번 돌아봐 - 오늘 노래방 가야지?)을 하고 추파를 던지길래 "아 대표님 딸뻘 되는 애한테 뭔 소리세여~ 오늘 연수씨 남친 만나러 간다니까 노래방은 저희끼리 가시죠~" 했다가 일주일 뒤에 권고사직을 당했다.


4. 투표용지 만드는 회사에서 선거관리위원회에 접대를 하러 가는 날이면 수백만원이 깨지는 옛날(김영란법 제정전이었지 아마) 다니던 회사에서, 내 월급과 경리언니 월급은 꼬박 들어왔지만 기술팀장님과 대리님(남직원) 월급이 반년 가까이 밀리고 있던 걸 듣고 못 참은 게 화근이었다. 유흥주점 들락거리고 외제차 와이프 차까지 끌고 다니면서 명절에 직원 상여도 못 챙기면서 커피값도 아까워하는 대표이사를 보고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2주 이내 퇴직금 지급과 직원들 밀린 월급을 해결하지 않으면 근로계약서 미교부와 제조업 위반사항까지 싹 다 털어서 노동부에 찔러버리겠다고 협박을 해서 해결을 약속받고 퇴사하기도 했다.


혹자는 통쾌하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냥 좀 니가 참지. 너한테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총대를 메서 사단을 내냐."는 핀잔을 주신다.

내 피끓는 청춘 탓이었을까. 참지 못했던 그 사이 기억들이 삐죽삐죽 새어나와 지금의 내 직장생활과 다른 내 모습을 비웃는 것 같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조금 더 정교하고 더 재수없는 직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성희롱같은 경우는 퇴사 후에도 제 3자여도 신고가 가능하다는 노무사님의 상담을 듣고 확 3번 대표에게 도전장을 내밀까도 했다만, (퇴사 후에 만난 직장동료였던 여자동생에게 들었는데 그 대표가 여자동생도 건드려서 여자차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무마시켜서 퇴사했다고 함) 나 하나 나선다고 해결되지 않았던 만큼 섣불리 건드려봐야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 직장에서도 이런저런 바꿔야 할 환경이 눈에 보이지만 티내지 않는다.

조금 불편해도 참는다.

조금 답답해도 첫 출근의 기쁘던 순간을 생각하며 감사하려 애쓴다.


출근한 지 2주차에 대표님의 다른 팀원을 향한 샤우팅을 듣고 나서,

직원들과의 식사시간에는 직원을 위로하지만,

별다른 액션을 예전처럼 취하려 하지 않는다.


이제 나도 가장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처럼 무모하고, 대나무처럼 부러지는 방법을 선택하기보다,

부드럽게 빗물을 걷어내는 연잎처럼 흘러내리는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예전처럼 무리해서 위를 불려가며 억지로 먹는 밥도, 간을 녹여버리는 술도 억지로 하지 않고,

초코바로 떼우며 쌓아놓고 보던 서류더미들 속에서 10분도 채 되지 않던 점심시간은,

지금의 사무실에서는, 전화도 1시간동안 받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자유시간으로 보장받고 있는 것 같다.

일부러 의식해서 천천히 배워간다.

조금 덜 눈치보면서, 조금 덜 움직이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버텨낸다.


이것이 바로 직장인 7년 자영업 7년 차에 얻은,

눈물콧물 피땀 다 서린 인생 쓴 맛의 대가이고 경단녀 된 지 7년만에 어렵게 재취업한 나의 새로운 다짐이다.


어깨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가다보면 멀리 가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 짐을 조금 덜어낸 채,

걸음을 살짝 느리게 걷는 중일 뿐,

우리는 조금 늦게 꽃을 피우고, 조금 천천히 풍경도 바라보면서, 그렇게 목적지에 다다르려 한다.


오늘도,

피곤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와, 사랑하는 존재들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금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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