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

나의 보상체계시스템과 퇴사계획

by 김먼지


빨리 퇴근해야지.

집에 가서 남편이 해주는 계란말이에

내가 어제 갓지어 차갑게 식혀놓은 파로밥을 듬뿍 떠서

빨리 허기진 내 위를 잠재워야지.


그리고 댕댕이.

나를 반겨주는 건방진 시바믹스 복구한테는

뽀뽀를 받으면 오늘 스트레스는 다 녹는다.


그래서 나는 빨리 집에 간다.


분명히 감옥은 아닌데 내 뒤에서 꽂히는

책상 뒤의 사장실의 열려있는 문

늘 같이 다녀야 하는

숨이 막히는 출근길도 점심산책길도 퇴근길도 나란히 같이 해야 하는 루틴을 깨고


약속있어서 먼저들 들어가시라 웃으며 인사를 전한 뒤

동료들보다 한 타임 더 늦은 지하철을 선택한다.

약속은 약속이지.

나와의 약속.

나의 스트레스 가득한 지금을

넘기기 한 뒤에 나에게 주는 달콤한 보상


혼자 걷는 시간,

달달구리 바나나우유 혹은 키캣 웨이퍼,

댕댕이랑 산책,

남편의 포옹,


그 어마어마한 것들로 오늘 과중된 업무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상쇄해줄

의무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대표가 날을 잡았는지

타겟을 하나 잡아서 조지기 시작한다.


그는 본인이 오해해서 실수로

절벽에 세워놓은 사람을 찔러놓고

나를 오해하게 만든 니가 잘못이라고 발로 차 밀어버리는 리더이기 때문에


회사의 안녕보다 본인의 이익이

책임은 회피하고 직원에게 전가하기를 일삼고

(소비자를 걸핏하면 귀찮아해서 회사를 찾아온다는 고객에게 직원을 시켜 출장갔다고 거짓말하게 하거나, 걔 참 싸가지없다고 말하는 말뽄새 역시 리더 그릇이 아니기에 속상)기 때문에


직원에게 책임은 다 전가하나

그만큼의 권한은 일그램도 허용하지 않는

회의가 대표아이디어의 실행 통보인 줄 알고 있는

경영학전공인데 4P의 기본을 깡그리 무시하고

중요한 시장의 가격을 본인 기분따라 10배 올렸다가 할인을 80%때려버리는

생태계의 교란종같은 리더종이기때문에


직원의 제안이나 의견은 묵살이 일상인 리더가

그날 직원 어느 누구 하나를 타겟으로 삼았다면


내용에 흠잡을 것이 없으면 갑자기 했던 말도 뒤집고

글자 포인트와 음영 띄어쓰기까지 찾아내 꼬투리잡아

(원래는 10포인트인데 작다고 해서 키우면 본인 게준 안좋은날 걸리면 키웠다고 혼이 나는 구조)

누군가를 혼내고 가르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나를 타겟으로 잡았다면


거기 리더의 결정에 체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하자가 많고 문제가 많아도

그냥 나는 일단 "네 알겠습니다"

하고 리더가 원하는대로 다 해준다.


내 업무가 아닌 일도 해달라고 하면 해주고

타겟이 되면 그냥 된 채로 그날의 제물이 되어준다.

어차피 내가 이 작업을 안해주면 막내 동료가 다음 타겟이 된다. 가뜩이나 나 먼저 떠난다고 울상인 막내마저 잃을 순 없다.


그게 내가 퇴사하는 날까지

살아남는 방법이다.


잘 알고 있다.


작년에 퇴사한 직원이 본인의 퇴사예정일을 3개월이나 앞두고 말한 죄로

꼬투리만 잡히면 "수림씨 퇴사한다고 이제 막 하는거야!!?"

하는 그 감정기복심한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기에


나는 퇴사하는 순간도 그 뒤의 기간에도

절대로 막나간다는 소리가 절대 나올 수 없도록

완벽한 인수인계서 역시 착실히 만들고 있다.


최대한 원만하게

둥글게 둥글게.


퇴사는 딱 1개월 뒤부터 안 나와도 되도록.

절차상의 문제없이

후임의 인수인계도 아무런 문제없도록


1개월 채우고 나가도 되고

당장 퇴사통보를 한 날 다음날부터 리더가 퇴사처리를 해주겠다 하더라도

아무 문제없도록

디테일하고

성심성의껏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내일 당장 내고 싶은 사직서를

오늘도 꾹꾹

내품 안에

눌러담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얼마 안남았다.


3월부터 시작한 나의 퇴사계획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스스로를 나비포옹해줄 수 있는

보상체계가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은

살아있을 것이다.


내일 또 죽어나가도

오늘은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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