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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May 15. 2024

가끔은 내 흔적도 찾아보기

나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할 수 있길

자살시도는 23살 쯤 시도했던 것 같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초5 시절,

왕따가 징글징글해서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죽을 높이도 아닌 4층 빌라에서, 친구인 척 왕따를 조종하는 동창생의 집 옥상에서 죽을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붕 아래로 조금만 몸을 기울이면 후두둑 하고 떨어질 듯 했는데, 그렇게 독하지 못했던 나는 4년째 지속되는 왕따를 가족에게도 학교에도 말하지 못한 채로 그냥 묻어만 갔다.

죽을 생각을 하다가도 멈칫하고 주저앉는 건


내가 사랑한 존재들에게 내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시도를 했던 23살의 나는 가족이 의지가 되지 않던 찰나에 만난 대학교 선배의 외도로 충격을 받았던 때.

지금 생각해보면 병신같이 남자 하나때문에 손목을 그었냐 싶은데

그 당시에는 내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던 대상이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뒤돌아서 가는 걸 받아들이지 못할만큼 여리고  타인의존적이었던 듯 하다.


그런 내가 지금 서른여덟이 되어 서 있다.


오랜만에 내가 졸업한 대학교 잔디밭을 반려견을 위해 산책하게 되면서,

내가 잊고 있던 나의 속살을 다시금 마주할 기회를 얻었나보다.


그저 맛이 좋다는 우신탕 한사발이나 먹고 산책이나 하다가 올까 했던 내 마음에 많은 것을 채우고 돌아왔다.


막걸리도 마시고 취해 잠도 자던 잔디밭.
애정도테스트를 하면 뭘하나. 요지부동 킬복구는 냄새맡느라 바빠서
이렇게 건강만 해. 아픈 건 다 엄마가 할 수 있길.
만져지지 않아도 너를 사랑해 영원히

생명이 지나간 자리에 내 애도는 이제 아무런 힘이 없을 걸 알면서도

우리집 막내 덕구의 빈자리는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가 없으니 나는 그저 멍청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너를 데리고 다니련다.

설사 너는 지금 우주여행 중일지라도.


열심히 산책에 동참한 남편에게 자유를 주었더니 낚시가 아닌 친구들과의 오지캠핑을 떠났다.

남편의 오지캠핑 보금자리란다

곁에 있는 존재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나에게 귀했는지는

그들의 빈자리가 여지없이 나를 흔들 때 알 수 있다.


그런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려 하기보다 그냥 내버려둠으로써 나는 내 흔적을 만들어간다.


열두살의 아팠던 나도,

스물세살의 힘겨웠던 나도,

서른여덟살의 지쳐있는 나도,


모두 다 내가 살아오며 만드는 내 흔적들.


나는 이 흔적을 부디 온전히 내 기억으로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길

간절히 희망한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로


이승의 내가

저 세상의 나로


너에게 가던 내가

너를 떠난 나로


어떤 나로 기억되든지

내가 나로 온전히 살아있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나를 찾아 열심히 살았던 나로 죽기를 기도한다.


그런 나의 흔적을,

가끔은 정신없이 달리다가도 멈춰서서,

한번씩 어루만져 줄 수 있게,

오늘도 기록해본다. 나의 흔적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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