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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Jun 20. 2024

주소불명

관계의 단절이 허망할만큼 쉽다라는 사실

편지봉투에 정성스레 써진 주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사실




 

노란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그리 많지 않은 이름을 위아래 손가락으로 훑어내립니다. 삼분의 일 즈음에 잠시 정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의 마침을 기억 저편에서 꺼내며 대화하기로 넘어갑니다. 글자에 남아있는 당시의 분위기가 희미해진 만큼 시간을 두고 그때로 되돌아가, 충분히 예열된 손가락을 움직여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기 시작합니다.      


“잘 지내시죠? 몸은 좀 어때요?”      

   

특별한 일 없으면 술이나 한잔하자는, 바로 용건을 꺼내던 질문은 어느새 건강을 항상 먼저 언급하는 안부 질문으로 바뀌었음을 느끼며 고정되어버린 상투어구로 대화를 요청합니다. 이어지는 답변에 따라 ‘얼굴 까먹겠네. 한 번 봐야 하는 것 아닌가아’ 같은 아저씨가 되어버린 징그러운 동생의 투정을 선사할 시점이 결정되겠죠. 그리고 늘 같은 방식으로 흘러가는 대화의 향방은 당사자 쌍방 모두 익히 알고 있는 결과를 향해 치달을 뿐이니, 오랜만의 대화에 그저 기쁘거나, 또다시 다음을 기약하거나. 


멈춘 듯한 혹은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위에 조용한 놀람으로 맺히는 한 알의 연락은 그렇게 결과를 목적하기보다는 목적 자체에 충실해지려는 일방의 작은 유희일지도 모릅니다. 던져놓으면 이후의 답변은 상대방의 몫이 되니 돌아올 대답을 예측하는 것은 토요일 저녁의 복권 당첨여부 다음으로 감정을 휘젓는 사건이 됩니다. 때로는 과한 기대에 정비례하는 실망으로 한 편의 단편 소설의 막을 내리기도 합니다.      

   

“오빠는 진짜 친한 동네 오빠로, 심심할 때 편하게 바로 만나서 술도 한잔하고 놀이터에서 수다도 떨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 좋았던거야.”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 어쩌면 만들어진 세상 속 그들이 가진 허구의 관계를 꿈꿨던 나에게 잊지 못할 고백을 던진 그녀. 내가 보낸 기대와 정반대로 맞부딪히는 기대를 품었던 그녀. 나만이 남은 이 동네를 떠나 서울의 한 지역에 일자리를 잡은 그 친구는 머지않아 자신의 사회에 섞여 끊임없이 바뀌는 파고에 배를 띄운 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또 다른 배를 모는 이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이곳과의 인연을 일단락 짓게 되었음을 돌아오는 바람에 실어 알려왔던 그녀. 그곳의 바다가 늘 평온하기를 기원하는 마지막 연락을 띄워 보냈습니다.      

   

방 정리를 하다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의문의 작은 상자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평소의 나라면 구입하지도 보관하지도 않을 상자가 품었던 것은 군 복무 시절 받은 여러 친우들의 편지였습니다. 돌아올 답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그들의 글씨체와 체온을 기대하며 써 내려갔던 손가락 끝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수량으로 보아하니 개중 몇몇과는 둘 이상의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때 침상에 엎드려 편지를 쓰고 있던 빡빡머리 군인 아저씨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냅니다. 


덩그러니 남은 편지봉투를 들어 천천히 하나씩 이름을 읊조렸습니다. 두세 명을 제외하고 난 나머지에게 이제는 잊힌 이름이 되었음을 덤덤히 통보하고, 이름과 주소가 보이지 않도록 적당한 뒤처리를 끝낸 후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끔 재활용 상자에 넣고 나니 상자는 텅 비었습니다. 괜찮지만 또한 괜찮지 않은 것 같아 일부러 괜찮다고 다독이는 마음을 붙잡고 소셜 미디어 속 거짓의 세계로 도망갑니다. 매일의 일상만을 담아 편지를 주고 받을 친구를 구한다는 게시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행여나 잊어버릴까 저장을 해두고 계속해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잊힌 것들은 떠나가라, 마땅히 떠나보냅니다. 들려올 소식이 없으니 들려줄 소식 또한 딱히 닿을 길이 없겠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작년의 겨울이 올해의 겨울보다 더 추웠다면, 내년을 얼릴 겨울바람에 내 소식 미리 채워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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