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카카오톡에는 수백 명이 있다
수천 명이 있다는 사람도 들어봤다
전부 안부 연락은 하는 사람일까
내 카카오톡을 보니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각종 알림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은 투명 유리문을 열고 한 걸음 들어섭니다. 나를 이곳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애처로운 손짓을 애써 외면하고 서늘한 냉장 코너로 걸어갑니다. 오늘의 목표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돌돌 말려진 김밥 한 줄. 몇 개 남지 않은 김밥 군중에서 혼자 슬그머니 떨어져 있는 친구를 붙잡습니다.
가장 먼저 소비기한을 확인하고 조리법으로 눈을 옮깁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혹시라도 무언가 바뀐 게 있을까 하는 기대는 늘 외면당하기는 하지만. 700W에 40초 1000W에 30초 문구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킵니다. 추천에 맞춰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다소 뜨거운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편의점 김밥은 너무 뜨겁게 데우면 되려 맛이 없음을 수차례 경험한 바 있습니다. 너무 차갑지 않으면서 너무 뜨겁지 않은 그 미묘한 적당함은 성취하기엔 다소 어렵지만 추구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20초에서 30초 사이에 전자레인지를 멈추고 김밥을 꺼냅니다. 적당히 차갑고 적당히 따뜻합니다. 바로 김밥을 먹을 정확한 때입니다.
'다 때가 있어.' 이 말만큼 지긋지긋하면서도 떼어놓을 수 없는 말이 있을까. 노는 것은 대학 가서 하고 일단 공부하라는 말에 십 대 시절을 어영부영 보냈습니다. 혹은 버렸다고 할 수 있으려나. 공부의 성과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한껏 방황하고 놀고 싶었던 대학 초년생 시절은 군대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일종의 시한부 판정을 받은 시간이었고, 군 복무 시절 가장 많이 주변을 맴돈 말은 전역 후 시간을 준비하라는 조언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모든 시간은 무언가를 위해 미리 준비해야만 하는 때였습니다. 미국 생활을 경험하고 돌아오니 그 점은 더욱 눈에 거슬렸습니다. 특정 나이에는 정해진 것을 해야만 하는 암묵적이지만 동의한 적 없는 합의와 관념과 이념은 한국 사회에 담근 몸을 더욱더 무겁게 만드는 수압이자 기압이었습니다.
단 한 방울의 검은 잉크가 한 컵의 투명한 물을 흐릴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양의 문제라기보다는 농도의 문제일까. 상황을 뒤집어 한 방울의 투명한 물은 한 컵의 검정물에 섞은들 투명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귀국한 지도 이미 연수로 두 자릿수 이상이 지난 지라 한국 문화의 농도에 마냥 저항할 수는 없습니다. 꽤나 많이 물들었고 때로 스스로를 반추하며 어느샌가 자라난 보수적이고 고집스러운 담벼락을 마주하게 되면 쓴 커피 한 잔을 입에 가져갑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음에 마냥 포기하고 한숨만 내쉬는 것이 아님을 또한 고백하겠습니다. 세상은 멈추지 않은 채 요동치는 파도를 만들어 내고 있고 나 또한 그 흐름을 타고 끊임없이 변하는 눈앞의 풍경에서 깨달음을 청합니다. 최근 마음 한구석에 뿌리내린 씨앗 또한 깨달음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요컨대 친구를 포함한 인간관계의 생명은 어떻게 피어나 어떻게 빛을 잃게 되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관계의 농도에 상관없이 기간의 오래됨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인간관계 혹은 친구관계는 그전까지 나를 둘러싼 낡은 문화이자 믿음이자 겁에 질린 몸짓이었음을 마침내 인식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한창 나 자신의 세상을 조형할 미숙한 시절에 몸에 걸친 이것을 오래 놓지 못했음을 인정합니다. 겁이 났었고 아쉬웠고 결과에 책임지고 싶지 않아 그랬었음을 또한 솔직하게 읊조립니다.
그럴 때가 된 것입니다. 이미 빛을 잃은 과거의 영광이자 나 자신을 밝혀주었던 별을 손에서 놓을 때가 된 것입니다. 마지막 인정으로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 책임을 부과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그럴 때가 된 것입니다.
어느 저녁, 한창 대화가 오가는 모임에서 문득 질문을 던졌습니다.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사람도 과연 연락처를 유지하는지. 다수의 대답은 공통된 질문의 형태로 되돌아왔습니다. '굳이 지울 이유가 있을까요?' 질문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와 나라는 사람의 방법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그들의 질문에 '있다'라는 대답을 던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오래 친했던 인연의 불이 꺼진 전화번호를 지우고 카카오톡에서 지우고 대화 내역을 지우고 SNS의 팔로우를 취소하고, 나를 찾지 못하도록 차단까지 설정하고 나서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럴 때가 됐고, 그럴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