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위크는 단순히 새로운 옷을 선보이는 자리가 아니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 장이자, 예술과 창의성이 어우러진 거대한 무대다. 지난 1월, 세계의 유행을 이끄는 브랜드들이 모이는 파리의 25FW 패션위크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브랜드들이 공작새처럼 뽐내는 퍼포먼스는 대중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국의 k-fashion도 있었다. 2018년부터 임동준이 이끌어온 포스트아카이브 팩션은 25FW 파리 패션위크에서 +8.0 컬렉션을 발표했다. 컬렉션 발표회장에서 paf의 모델들은 런웨이 위에서 잠을 자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기존 아카이브를 일깨우고-현재에 제작하며-미래를 상상하는 창조과정의 비선형성을 상징하는 "잠자는 행위"는 관객들로 하여금 파프와 함께 꿈꾸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였다. 쇼가 화제를 만들었던 만큼, 발매된 컬렉션 피스들과 함께, 온 러닝과 협업한 ‘클라우드 몬스터 2’, 클락스와 협업한 왈라비 역시 큰 관심을 모았다.
이렇듯, 수많은 브랜드가 모이는 패션위크에서 브랜드는 독창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역대 런웨이 중에서도 이러한 무대가 있었을까? 오늘은 나름대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독특한 패션위크의 퍼포먼스들을 소개한다.
1. Louis vuitton 23SS at paris fashion week
(이견이와 있겠지만) 드레익스와의 디스전에서 승리하며 마침내 힙합 신의 왕좌를 차지한 캔드릭 라마는 23SS 파리 패션위크, 루이비통의 피날레 쇼에서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앨범의 수록곡들을 라이브로 공연했다. 모델들이 무지개색 천을 들고 런웨이를 걷는 피날레의 배경음악으로는 현대 사회의 위선과 가식,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캔드릭 라마의 N95가 흘렀다.
N95는 팬데믹 기간 동안 필수적인 아이템이었던 마스크를 뜻한다. 그리고 캔드릭 라마의 곡에서 이 보호 장비는 사회적 가면과 위선의 상징을 뜻한다.
물질적인 것을 통해 가치를 증명하려 하지만 결국엔 공허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일의 중요성을 말하는 노래는 루이뷔통 부티크의 럭셔리함과 만나 묘한 이질감과 여운을 남겼다. (https://url.kr/6wc1aj)
캔드릭 라마가 입고 나온 루이뷔통 슈트와 쓰고 나왔던 티파니 앤 코의 다이아몬드 가시관, (무려 8천 개의 다이아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21년 타계한 버질 아볼로에게 보내는 찬사로도 유명했던 무대
2. kid super 23SS at paris fashion week
KidSuper는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한 패션 브랜드로, 스트릿 패션과 하이패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보를 보여준다. 브랜드의 수장인 콜름 딜란은 패션뿐만 아니라 예술, 음악, 필름,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손으로 그린 일러스트를 사용하거나, 실험적인 패턴을 선보이는 등 패션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독창적인 디자인은 브랜드의 특징이다.
그리고 23SS 파리 패션위크는 독특한 내러티브를 선보이는 kid super의 독창성이 빛을 발했던 무대였다. 브랜드는 유명 경매 회사인 소더비를 패러디한 "Superby's"를 컨셉으로 무대를 꾸렸다.
쇼는 마치 초현실주의 회화 작품을 보는 듯했다. 쇼가 시작되자, 유명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실제 경매사인인 리디아 페넷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는 패션쇼에 참여한 관객들에게 사전에 주어졌던 경매 패를 통해 자유로운 입찰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곧이어 유화 작품 23점과 유화 작품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23점의 룩이 등장했다.
쇼는 실제 경매장에 온 듯 소란스러웠고, 회화 작품을 그대로 입힌 옷을 경매를 통해 팔려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쇼의 막바지. 경매에 참여하던 관객들이 마지막 그림의 낙찰 가격을 부른 순간, 모델이 그림 밖으로 튀어나오며 등장했다. 그림을 머플러처럼 두른 채였다. 그야말로 예술과 패션의 경계에 서있는 kid super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여실히 보여줬던 쇼라 할 수 있었다. (https://url.kr/ocn5a4)
3. coperni 23SS at paris fashion week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에서 이름을 본떠온 브랜드 코페르니는 이름처럼 매 시즌 혁신적인 컬렉션을 선보인다. 그리고 23SS 파리 패션위크에서 그들이 선보였던 퍼포먼스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였다. 미래적인 디자인의 피스들이 등장했던 컬렉션 자체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대단했던 것은 쇼의 피날레였다.
피날레에서는 몽환적인 음악과 함께 유명 모델인 벨라 하디드가 쇼걸로 가슴을 가린 채 무대에 등장했다. 검은 옷을 입은 도우미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하얀 스프레이를 그녀의 몸에 분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뭘 하는 것인가 싶었으나, 이내 분명해졌다. 그들이 분사한 스프레이는 몸에 붙어 말라갔고, 점차적으로 형태를 갖춰가더니 마침내 화이트 슬립 드레스가 되었다. 순식간에 우아한 모습으로 변신한 벨라 하디드의 모습은 마치 신인류 비너스의 탄생을 보는 듯했다. 그야말로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https://url.kr/9c8gdg)
도우미들이 분사한 스프레이는 스페인의 의류 디자이너이자 마넬 토레스(Manel Torres)가 발명한 ‘패브리칸(Fabrican)’이라는 물질이었다. 이 물질은 스프레이 안에서는 액체 상태를 유지하다가 몸에 닿는 순간 섬유로 바뀌는 특징이 있다. 거기다 재활용도 가능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미래적인가. 코페르니는 이처럼 독창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퍼포먼스로 자신들의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각인했다.
4. sunnei 23SS, 23FW milano fashion week
이탈리아 브랜드 SUNNEI는 매 시즌 화려하면서 개성 넘치는 패션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신감과 자유로움 넘치는 디자인, 다채로운 색감, 화려한 패턴은 SUNNEI의 상징이다. 그리고 브랜드는 런웨이를 통해 자신들의 옷만큼이나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리고 특히, 23년도 SUNNEI의 런웨이는 그러했다.
23SS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SUNNEI는 관객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쇼를 만들어나갔다. 쇼장 양쪽으로 나란히 마주 보고 서있는 세 단짜리 관객석과 빽빽하게 들어찬 관객들, 그 사이로 난 좁은 통로의 끝에 돌아가고 있는 하얀색 회전문, 회전문을 보며 모델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긴장감을 높이는 사람들,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모델이 등장한 곳은 엉뚱하게도 관객석 한가운데였다.
모델들은 런웨이 입구와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며 등장했다. 종국에 관객들은 내려오는 모델들을 위해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는 등 자연스럽게 쇼에 참여했다. 관객을 쇼에 참여시켰던 SUNNEI의 시도는 쇼(show)와 일상 사이의 간극을 좁혔다. 관객석이든, 런웨이든, 어디에 가져다 두어도 이상하지 않는 자신들의 디자인을 세상에 각인한 것이다. (https://url.kr/rawl4g)
23FW 밀라노 쇼는 이러한 SUNNEI의 시도가 극대화되었다. 가을/겨울을 위한 SUNNEI의 쇼에는 좌석이 없었다. 또, 런웨이는 관객들 머리 높이만큼 높이 있었다. 관객들은 런웨이의 옆에서 서서 쇼를 관람했다. 곧이어 모델들이 록 음악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고, 포징을 해야 할 런웨이의 끝에서 모델들은 자신들의 몸을 관객석으로 던지는 '크라우드 서핑'을 시작했다. 관객들의 손짓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델들은 완벽하게 쇼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레디투웨어라는 컬렉션 테마에 그야말로 걸맞은 퍼포먼스였다.
이처럼, 런웨이는 단순한 패션 프레젠테이션이 아닌, 화려한 의상과 음악, 퍼포먼스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종합예술이다. 디자인 이면에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한다면, 보다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쇼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