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물건도 감정을 느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가드, K캅스, 다간에 나오는 나의 용사들을 조심스럽게 대해주지 않는 엄마에게 따지곤 했어요.
“엄마. 그렇게 머리를 잡고 장난감통에 툭 넣으면 선가드가 아파해.”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진 않더라고요. 지금도 제 주변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건들과 때때로 함께 기뻐하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며,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물건들을 보며 떠오른 생각들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처음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전인 세탁기예요.
왜 세탁기냐면, 그냥 빨래 돌려놓고 다른 거 하는 걸 좋아해요. 특히 휴일 낮 10시에서 1시 정도 사이에.
4평 원룸 싱크대에 빌트인으로 들어가 있는 세탁기. 가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무너져 내릴 때, 저는 이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고 그 앞에 앉아서 멍 때려요. 좀 뜬금없긴 하죠. 얼큰하게 취할 만큼 술을 먹는 것도 아니고 빨래라니. 그러면 왜 빨래를 돌리냐? ‘얼룩진 감정을 빨래하는 것처럼 씻어내고 싶어서?’ 아닙니다.
그냥 그 앞에 앉아 세탁기 안에서 빨래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지거든요. 그러다 좀 울기라도 하면 기분이 나아지더라고요.
글을 쓰기 전에 주변에 좀 물어봤어요. “혹시 세탁기 안에 빨래 돌아가고 있는 거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아? 아니, 조금은 나아지지 않아? 많이는 아니고 조금.” 그때 알았어요. 아 내가 특이하구나. 대부분 ‘뭔 말이야?’라고 하더군요.
“사실은 거기 앉아서 혼잣말도 해”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 말까지 했다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 취급받았겠네요. 다행히 정신이 이상하진 않으니, 글은 마음 놓고 읽으셔도 됩니다.
아!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에세이야, 소설이야?’
읽는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조금 가벼운 이야기는 저의 이야기라 생각하시고, 무겁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는 픽션이라 생각해 주세요.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일 겁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