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이게 뭐야!”
빨래를 돌리고 세탁 시간 동안 최신 에어팟 프로 2를 귀에 꽂고 책을 읽었다. 애플의 노이즈 캔슬링 기술력에 감탄하며 한참 동안 눈을 감은 채로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이 꽤나 흐른 것 같아 책상에 앉은 채 고개만 쭉 내밀어 세탁기를 봤다.
그 순간,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을 목격했다. 멀쩡한 세탁기가 게가 거품 물듯이 거품을 내뱉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제통 손잡이에서 새하얗고 풍성한 거품이 성실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거품을 뒤집어써서 그런지, 까맣게 타고 있는 내 마음과는 정반대로 세탁기는 아주 새하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5초 정도 멍 때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신기한 광경을 처음 보면 얼떨떨 해지는 거. 보통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대자연을 볼 때 느낀다고 하던데, 나는 그걸 4평 원룸 빌트인 세탁기를 보며 느꼈다. 아, 무언가 흘러내리고 있는 건 똑같긴 하네. 하마터면 놀라 벌어진 입에서 또 다른 것까지 흘러내릴 뻔했다.
“어휴. 이게 뭐야!” 주먹을 돌돌 말은 손으로 이마를 콩 찧으며 한 마디 내뱉은 뒤에야 얼른 수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탁기에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욕실 수납장에서 수건을 3장 꺼냈다. 세탁기 앞으로 돌아와 무릎을 꿇고 한 장은 바닥, 한 장은 세탁기 몸통을 닦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세제가 범람하고 있는 근원지인 세제통에 받쳐주었다.
이 자세 언젠가 해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조카가 2~3살 무렵 식사하실 때 턱 받쳐드렸을 때의 자세와 비슷했다. 우리 세탁기 선생님도 조카처럼 잘 신경 써서 돌봐드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거품 범람 사건의 원인을 밝혀냈다. 바로 세제 과다 투입! ‘100% 본인 과실!’로 감정이 끝났다. 빨래들에게 서로 적은 양의 세제를 몸에 묻히겠다며 싸우지 말라고 왕창 세제를 넣어줬는데, 거기서 탈이 난 것이다.
뭐든지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더니, 평화로운 주말 오후에 세탁기로부터 익히 알고 있던 교훈을 되새기게 될 줄이야.
괜한 주인 때문에 속이 탈 나서 어쩔 수 없이 세제를 거품까지 물어가며 뱉어내야 했을 세탁기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고생했다. 그리고 미안한데... 한 번만 더 부탁해도 될까…? ㅎㅎ“
왠지 세탁기가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