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렙 Jan 13. 2024

J에게

모든 계획형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어우 새끼. 지 멋대로구만 아주. 월급은 왜 제때 쳐 받냐. 일은 제때 처리하지도 않으면서. “



잔뜩 짜증이 난 상태로 집에 온다. 받아야 하는 자료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일을 처리하지 못했다.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봐도 받지를 않는다.




“오케이. 오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받을 때까지 연락하기로 마음먹는다.





주식 장이 열리기 5초 전, 수강신청 5초 전과 같은 결연한 마음가짐을 갖는다. 자세를 고쳐 앉는다. 수십 여통의 전화, 문자, 사내 메신저 연락 공격 끝에 겨우 사내 메신저로 답장을 받았다.




’ 죄송하지만 지금 연락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문의하신 건은 내일 답변드리겠습니다.‘ 성의도 없다.




‘나 같으면 울음 이모티콘 정도는 하나 붙여줄 거 같은데.’




빨래를 돌리고 세탁 시간을 확인한다. 1시간 10분. 러닝 뛰고 쉬다가 오면 딱이겠다. 땀을 흘리고 나니 그래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이제 집에 가서 입은 옷 세탁기에 넣고 샤워하고 빨래 널면 시간이 딱이다. 딱딱 맞는 시간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회사일도 이러면 얼마나 좋아.




집에 돌아와 보니, 웬걸. 세탁기 친구가 나에게 20분만 더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요청을 받을지 말지 선택권은 나에게 없다. 생각했던 스케줄이 어그러졌다. 짜증이 순간적으로 훅 올라옴을 느낀다.

‘회사에서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더니 집에서도 이러네. 뭐 이렇게 제대로 되는 일 하나 없냐!’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왜 이렇게 많은 걸 바라지?’ 사실 큰일이 난 것도 아니다. 세탁기가 불탄 것도 아니고 누가 빨래를 들고 도망간 것은 아니며 빨래에 독약을 풀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세탁기 입장에서는 그저 본인의 일을 더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간으로 20분만 더 달라는 거다. 지금 주어진 시간으로는 일을 제대로 못 마칠 거 같다고. 제대로 처리하고 싶다고.




그러면서 문득 회사에서의 일도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제대로 해서 주기 위해서 시간이 더 필요하지는 않았을까.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그게 내가 마음이 더 편하다.



“아니! 근데 그럴 거면 미리 말해주.... 에휴 됐다.”




세상 일이 정해진대로 착착 진행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면 계획이나 일정 잡는데도 편하니까. 그런데 알다시피 세상일이 그렇지 않지 않은가. 세탁 시간조차도 오차가 발생하니까. 어쩌면 너무 빡빡하게 살아가기보다는 시간적으로, 마음적으로 여유를 갖는 게 현실을 살아가기에는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더 현명한 자세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당장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너도 울음 이모티콘 하나 정도는 띄워줘라. 귀엽기라도 하겠네.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