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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으로, 구원하소서 5

길고긴 인내의 시작

by 영원

내가 태어나고 엄마와 아빠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엄마의 하숙은 계속 됐다.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도시락 몇 개를 싸고, 그만큼의 빨래를 하던 엄마는 무엇으로 버텼을까. 아빠는 외할머니 도움으로 약국을 경영했지만, 동네 사람들과 화투를 치고 노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내가 갓 걸음을 옮기던 시절 사건이 터졌다.


만취해 들어온 아빠는 엄마에게 주정을 했고, 물을 떠오라며 던진 주전자 주둥이가 하필, 엄마를 부르며 발걸음을 옮기던 나의 이마에 적중했다. 두려움에 엄마를 부르며 다가가던 나에게 주전자가 맞던 순간, 내 이마에서는 피가 솟구쳤고, 그런 나를 안고 무작적 뛰던 엄마의 발엔 신발이 없었다.


울어재끼는 나를 안고 실신할 듯 뛰며 걷다 주저앉은 엄마를 마침 하교하던 하숙생들이 감쌌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엄마와 나를 보며 상황을 인식한 그들은 나를 안고, 일부는 엄마를 부축하고 무작정 병원을 향해 뛰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나온 나와 엄마를 부축하고 온 그들은 "아저씨 참 나쁜 사람이네요,"라고 말했다. 돌아와 보니, 안방엔 그 모든 상황을 모른채, 취해 널브러진 아빠가 있었고, 엄마는 하숙생들이 알아서 저들끼리 방을 합친 뒤 비워 둔 방에 이불을 깔았다. 얼굴이 퉁퉁부은 어린 나의 얼굴을 보며 한 숨도 자지 못한 엄마는 다음 날, "잘못했다"는 아빠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는 그 날부터 더더욱 나를 독하게 껴앉았다.


어린 내가 있어서 어떻게든 삶을 꾸려야 했던 엄마는 계속 하숙을 했고, 돌을 지나 말을 제법 하던 시기까지 하숙허던 오빠들의 방을 오가며 재롱도 떨고 글도배우며 세월이 갔다. 그 과정에서 나의 첫 동생이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 살고, 내 첫 동생이 태어나기까지 이사도 참 많았다. 내 아래로 동생이 태어나고 막내가 태어날 때 살았던 집은 고모부 소유의 집으로 유일한 친혈육인 고모가 아빠에게 배려해 준 거처였다. 어찌어찌 살다가 막내 남동생이 태어났다. 남동생이 태어나자, 양가 할머니들은 아들이 태어났다며 함께 춤을 추었다. 둘째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는 미역국에 고기도 없었더더니, 온 집안이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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