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혔던 그대와 나는 다시 대화의 장을 다시 피우다
하루하루 취업 준비에 지쳐가던 어느 날이었다. 몇 시간씩 모니터를 보며 비대면 면접을 준비하던 나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저 잠시 쉬고 싶어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휴대폰 알림 소리가 울리며 스크린에 비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여유? 여유가 맞아?'
너무나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선 그 이름을 보고도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수없이 떠오르던 이름 답이 없던 그 이름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지현아, 정말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순간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그동안 느껴왔던 감정들이 억누를 수 없을 만큼 폭발했다. 하지만 기쁨만이 아니었다. 그리움이 컸던 만큼,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상처와 분노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수없이 생각했다. 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그래서 나는 곧바로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한참 동안 답장을 고민했다.
'어디 있었던 거야? 왜 이제 와서?'
정말 물어보고 싶은 말이 수십 가지였지만, 결국에는 차분한 문장을 만들어냈다.
'여유야... 그동안 어디 있었어? 많이 걱정했어.'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동안 그녀가 연락을 주지 않은 이유에 대한 수많은 가설들이 떠올랐다. 혹시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모든 게 너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차가운 이성은 나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몇 분 아니 몇 시간이 흐른 것 같은 시간 뒤 여유에게서 답장이 왔다.
'미안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가족 중에 아프신 분이 계셨고,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었어. 너한테 연락하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더 상황이 악화됐어. 지현이 너도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더 연락이 부담스러웠어.'
메시지를 읽자마자 차가운 느낌이 스며들었다.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서운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동안 내게 남겨졌던 침묵은 너무나 길고 무거웠다. 그 상처는 단지 변명 몇 마디로 치유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녀도 힘들었구나...'
그녀의 사과는 분명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감정은 복잡했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지 그저 끝맺음을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차마 냉정하게 끊어내지 못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갈망이 있었다.
'나도 그동안 정말 힘들었어. 네가 없는 동안 취업 준비도 너무 어려웠고, 혼자라는 생각에 너무 외로웠어. 네가 나한테 연락 한 번만 해줬으면 어땠을까 싶어.'
'그냥 단순한 안부라도... 네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이 메시지를 보내고 나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사랑, 그리움, 분노가 모두 뒤섞인 혼란이었다. 이런 솔직한 감정을 여유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불안했다.
잠시 후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정말 미안해, 지현아. 너한테 연락하지 못한 게 내 마음속에 계속 남아서 더 괴로웠어. 나는 사실 너랑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내 상황이 자꾸 발목을 잡았어. 네가 나 때문에 힘들어지는 게 두려웠어.'
그녀의 답장을 읽고서도 나는 여전히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은 갔지만, 그로 인해 내가 겪은 고통도 작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무너져 내리며 보낸 시간들은 누구의 책임인가?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다 괜찮은 거야? 너 정말 괜찮아?"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상태가 궁금했다. 만약 그녀가 여전히 힘든 상황이라면, 나는 그녀를 받아들여야 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돌아온 답장은 예상과는 달랐다.
'이제 좀 나아졌어. 정말 고마워, 지현아. 네가 나를 기다려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 사실 나는 너한테 많이 기대고 있었어. 내가 정말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다'는 말이 생각보다 깊이 와닿았다. 그 말속에 담긴 여유의 진심이 느껴졌다. 내 분노와 상처는 서서히 가라앉고 그 자리에 그리움과 안도가 찾아왔다. 나는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여유가 내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도 네가 정말 보고 싶었어 다시 연락해서 정말 다행이야.'
서로의 상황을 조금씩 공유하며 다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과 외로움을 나누며 서로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확인했다.
서로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이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동안의 고통과 상처는 분명 우리를 멀어지게 했지만 이 순간 우리는 다시 이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약속했다. 앞으로는 힘들 때마다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한테 이야기할게. 더는 네가 혼자 힘들지 않게 할게.'
'응, 나도 마찬가지야. 더는 우리 사이에 침묵은 없을 거야.'
그 약속 속에서 우리의 관계는 이전보다 더 깊고 단단해졌다. 과거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상처 속에서 우리는 함께 새로운 길을 걸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