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사한 마음은 물질적인게 아닌 나의 내면의 대화가 지금의 나라는 것
지난 주말 먼지를 걷어냈던 방 안은 이제 제법 정돈된 모습이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저녁 바람이 상쾌했다. 며칠 전 친구의 상자에서 꺼낸 머그잔에 따뜻한 차를 담아 손에 쥐었다.
기분 좋은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천천히 전해져왔다. 이 평온함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그 순간 아주 자연스럽게 한 단어가 마음속에 떠올랐다. ‘고마움’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 마음이 향하는 곳들을 떠올려보았다.
나를 기다려준 친구에게 고마웠다.
낡은 포스터 속 한 문장으로 내 마음의 벽을 두드려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도 고마웠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먼저 말을 건넸던 그날의 나에게 방구석의 상자를 열었던 주말의 나에게도 고마웠다.
마음속에 고마움은 이렇게나 가득한데 막상 표현하려니 목이 메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지낸 감정이라 어떻게 꺼내야 할지조차 서툴렀다.
나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낡은 노트를 펼치고 서랍 속에서 펜을 꺼냈다.
스마트폰 메모장의 편리함 대신 조금 더 진심을 담고 싶었다.
한참을 하얀 종이만 바라보다가 나는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첫 문장을 썼다.
“고마워요 내가 조금 늦었죠”
첫 문장이 시작되자 봇물 터지듯 다음 문장들이 뒤를 이었다.
친구에게 스쳐 지나간 인연들에게 그리고 서툴렀던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펜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만이 방 안의 고요함을 채웠다.
글을 쓰는 행위는 흩어져 있던 감정을 재정립하고 내 마음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과정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지막 문장을 쓰고 펜을 내려놓았다.
식어버린 줄 알았던 찻잔은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어쩐지 처음보다 더 깊은 온기가 느껴졌다.
이것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첫 번째 고마움이기도 했다.
내일은 이 감사를 조금 더 용기 내어 표현해보기로 다짐했다.
마음속에만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그 결심만으로도 무언가 다시 시작된 기분이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온기가 목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려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닿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의 도시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지만 오늘 밤은 유난히 그 불빛들이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저마다의 창문 안에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와 같이 조용한 밤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그 모든 익명의 밤들을 향해 나도 모르게 작은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정성껏 쓴 글씨가 담긴 노트를 가만히 쓸어보았다.
그리고는 소중하게 덮었다.
이것은 그저 오늘의 기록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기도 했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며칠 전만 해도 나를 짓누르던 어둠이 오늘은 포근한 이불처럼 느껴졌다.
내일 아침 나는 친구에게 아주 오랜만에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어색할지도 모르지만 괜찮다.
오늘의 나는 그럴 용기를 배웠으니까 스르르 잠이 들기 직전 나는 아주 오랜만에 편안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