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 저, 1984년 발표
⁸주다주: 안녕하세요 여섯 번째 책 시사회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시간을 바꾸어서 시사회를 엽니다. 저는 사실 이번주 시사회를 상당히 걱정을 하면서 요 며칠을 보냈습니다. 끝까지 읽었다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는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이번 주 시사회의 주인공이라서요.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책의 가치를 좀 더 알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 큽니다.
먼저,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8년의 프라하의 봄에 대한 이해가 좀 필요합니다. 이차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하에 있었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운동은 소련군 중심의 바르샤바 조약 가맹국의 침공으로 실패를 합니다. 이 소설은 작자 쿤데라가 프랑스로 망명한 후에 나온 소설이라 먼저 불어로 그리고 다음 해에 체코어로 다시 발표가 됩니다. 1988년에서 영어번역본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제작됩니다.
이 소설은 소련군에 점령당한 체코의 정치 사회적 현실이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정도의 힘든 상황속에서의 4명의 삶을 조명하여 인간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보여줍니다. 토마시와 테레자 커플의 삶을 통해서는 영혼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인식 및 행동이 대립을 통해 가벼움과 무거움을 형상화합니다. 한편 스위스로 망명한 사비나와 스위스 출신의 지식인 프란츠 삶을 통해서는 집단적이고 전체적인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소설의 네 주인공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씨를 모셨습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이 네 분과 더불어 스탈린의 아들 야코프 씨를 정말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야코프님이 '쿤데라 작가님이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기만 하면 똥 이야기만 한다'며 거절하셨습니다.
먼저 오늘 나와 주신 네 분께 감사드립니다.
토마시: 안녕하세요. 독자로부터 바람둥이라고 몰매를 맞고 있는 가벼운 남자 토마시입니다.
테레자: 안녕하세요. 한없이 무겁기만 한 여자, 토마시의 부인 테레자입니다.
사비나: 안녕하세요 가벼운 인생이지만, 키치와 싸우는 힘든 여자 사비나입니다.
프란츠: 안녕하세요. 오늘 사비나를 만나서 반가운 무겁지만, 가벼움을 즐기려 하는 프란츠입니다.
주다주: 사실 프란츠 씨는 토마시 씨와 테레자 씨를 만난 적이 없으시죠?
프란츠: 예 사비나 통해서 한 두 번 이야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키치, 그 알듯 말듯한 그 무엇
주다주: 먼저 사비나 씨가 언급하신, 이 책의 주된 테마의 하나인 키치에 대한 네 분의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프란츠: 키치란 무언가 집단적으로 사람들이 믿는 가치, 사회구성원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맹목적인 관성적인 행동과 생각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에서는 2차 세계 대전 시 독일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스탈린의 아들 야코프가 영국군 장교와의 대립으로 고압 철조망에 몸을 던져 자살한 뉴스로부터 이 개념을 이끌어 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야코프가 사회주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 자살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똥을 - 아니 대변이란 용어로 바꾸겠습니다- 제대로 치우지 못한다는 지적을 그 장교로부터 여러 번 받고, 모욕감을 느껴서 그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대변은 그 키치의 허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주다주: 아마 이에 대해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이 사비나 씨일 것 같아요. 어떠세요? 본인의 일생을 '키치로부터의 도피'라 규정지으실 정도로 키치에 대해 두려움과 증오를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사비나: 저는. 어려서부터 대열을 맞추어 행진을 하여야 했고, 하루종일 군가와 같은 노래를 들어야 했고, 그림도 국가에서 정해준 방식대로 그려야 하였죠.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늘 왕따였고, 저 자신도 제가 바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날 제가 그린 그림에 실수를 하여 물감을 떨어트렸는데 그 물감방울 하나가 그 그림을 다르게 보이는 것을 보고 저를 억누르는 키치적인 구호들 -그런 것 있잖아요, '우리 인민들이 만들어 가는 찬란한 미래' 그런 것들- 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정말로?' ' 어떻게?' '왜?' 하고요. 그랬더니 정말 그 구호가 싸 놓은 똥, 아니 대변들이 보였죠. 사람들은 그 구호를 신성시하였지만 결국은 감시 때문에, 질투 때문에, 돈 때문에, 또는 억울함에 얽매어 있었던 것이죠.
토마시 : 저는 야코프가 좀 극단성 이중인격자나, 심한 우울증 환자, 아니면 조현병 환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신도 대변을 볼 수 있다? 없다?
주다주: 그럼 네 분에게 한 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신도 대변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토마시: 글쎄요, 잘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의사인 저의 관점에서는 장이 좋아야 대변도 잘 보고, 건강할 수 있죠. 그래서 우리가 신진대사가 나쁜 신의 모습을 상정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신이 대변을 보는 것, 저는 흥미롭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테레자: 저는 키치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제 성격상 신을 사람과 상응한 모습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신은 신이죠.
사비나: 문제는 사람들이 스탈린을 신으로 만들었고, 그의 아들인 야코프도 당연히 사람들의 인식엔 신의 위치로 올라와 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신의 아들이 대변으로 죽었다. 허망하죠. 신은 사람들이 만든 존재이죠. 그래서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란츠: 작가가 말한 대로 신학에 있어 '대변을 보는 예수'의 문제는 그 어느 이슈보다 힘든 문제예요. 저는 사람이 신을 만들었건 아니건, 신은 신의 영역에 두는 것이 좋아요. 무언가 우리가 바라볼 것이 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희망과 짜릿함을 주죠.
당신의 삶의 키치는?
주다주: 이 키치라는 개념이 원래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개인적인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개념이죠. 실지로 그렇죠. 정부나, 미디어로부터 시작된 이미지, 감성의 터치가 개인의 인식에, 또는 무의식에 습관적으로 박혀 있을 때 사회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공유된 '확고 부동한 믿음'으로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럼 자신의 일생에 있어 영향을 미치는 키치가 있을까요?
사비나: 저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에 대한 미련이 있죠. 제가 사회주의인 제 조국 체코를 배반함과 동시에 저는 가족을 배반했죠. 그래서 가족을 떠났고, 조국을 떠났고 스위스, 파리, 그리고 미국으로 끊임없이 저를 얽매는 것이 있으면 도망을 가듯이 떠났어요. 그러면서도 늘 저녁에 가족이 모여 따뜻한 식사를 나누는 그런 모습을 그리워했어요. 그래서 늘 허전하였죠.
테레자: 저는 육체와 영혼의 연결성이 제 키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모든 육체를 동일시하는 친정엄마의 폭력적인 언동에 너무 질렸어요. 그래서 제 육체는 저의 영혼을 드러내는 고유한 것으로 대접받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바람둥이 토마시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제 이 믿음을 일상에서 확인할 수 없어 너무 힘들었어요. 질투심으로 죽고 싶은 적인 한 두 번이 아니었죠.
토마시: 생각해 보니 저의 키치는 테레자였어요. 바람둥이로서 제 생활에 만족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나서 나의 여자와의 과련 행동방식을 바꾸어 버린 여자이죠. 그렇다고 저는 제 육체의 즐거움에 탐닉을 포기할 수 없어 다른 여자와 끊임없이 만났지만, 늘 제정신을 차리고 보면 테레자 옆에 가 있었어요.
프란츠: 저는 제 외부적이 요소와 내부적인 요소가 일치되는 것을 추구해요. 그래서 거짓말하는 것 힘들어하고요.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과 연결될 때 흥분이 됩니다. 그래서 사비나와 헤어진 후에 젊은 여학생과 가볍게 만나지만, 또한 대장정에도 참석하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주다주: 사비나 씨는 키치에 대한 적대감이 강했죠. 언제든지 자신의 자유가 구속된다고 느낄 때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났는데 그러한 연속적인 도망의 끝에서 결국 사비나 씨가 느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가벼움이었다고 하죠. 여기서 그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책 제목이 나옵니다. 좀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비나: 그냥 공허감, 허무함으로 이해하면 좋은 것 같아요. 인간의 삶이 일회성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가벼울 수는 있지만, 그게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참을 수 없죠. 그러다 보면 또 나를 얽매는 키치에 발을 담그게 되고 다시 떠나고 하였던 것 같아요.
사비나: 그녀의 가벼움에 대하여
주다주: 사비나 씨는 여기서 가볍게 사는 사람으로 나오죠. 그 가벼움이라고 하는 것이 자유로움의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어때세요.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실 수 있으세요?
사비나: 저 자신 키치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지만 제 삶이 가볍다고 하고 싶진 않아요. 그러다 보니 제 자유를 얽매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 없이 배반을 했죠. 다른 말로 도망을 간 것이죠. 사실 이 세상은 키치 덩어리고 그것을 피하거나, 반대로 싸우는 것은 매우 힘들어요. 오히려 키치와 화해하는 삶이 편할 수도 있어요. 도망가다 보면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의문감과 함께 허무감이 몰려오죠. 저는 제 삶이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키치로부터 도망가는 삶은 결국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직접 마주 대해야 해요. 마치 자유에 책임이 따르듯이.
주다주: 만약 사비나 씨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좀 더 개인의 자유가 중요시되는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자랐다면 그렇게 키치에 대해 예민하지는 않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요?
사비나: 아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어릴 적 저를 바라볼 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저의 천성이 반항적인 기질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어요. 어느 사회에서 존재하든 그 사회가 권하지 않는 것을 해보려 하는 그런 성향요. 그래서 어쩌면 키치에 짜릿함을 느끼는 프란츠의 모습이 제 모습일 수 도 있지 않을까요.
테레자: 그녀의 무거움에 대하여
주다주: 사실 독자로서, 이것은 21세기의 젊은 여성의 관점이기는 합니다만, 어쩌지도 못하면서 힘들어만 하는 테레자가 같은 여자로서 짜증이 나기도 할 때가 있어요.
테레자: 저에게는 창피하면서 두려운 기억이라 말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은 저도 토마스처럼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여 생각해 볼 수 있을까 하여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한 번 시도했어요. 결과는 참담했어요. 육체뿐만 아니라 제 영혼이 산산 조각나는 것을 경험하였어요. 더구나, 그것이 저를 추행하려고 했던 질 나쁜 공무원의 공작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 두려움까지 생겼어요.
주다주: 그건 정말 1960년대 사회주의를 이해하지 않으면 힘든 상황이기도 하죠.
토마시: 맞아요. 정부의 권력이 너무 사람들 일상에 영향을 미쳤어요.
테레자: 사실 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어요. 토마시를 떠나면 예전 어머니의 그 폭력적인 세계로 가야 하는데 그것은 정말 싫었어요. 그래도 토마시가 저를 어린 아이 보듯, 귀엽게 보는 그런 눈빛을 보이는 한 저는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불안하지만 안전하다고 느꼈어요. 말을 하고 보니 이상하네요.
토마시 그의 가벼움에 대하여
주다주: 토마시 씨가 테레자 씨에게 늘 다시 돌아가는 것은 그냥 안전장치, 그냥 미래 늙었을 때 같이 있어줄 사람 정도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너무 테레자 씨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난이 있어요. 더구나 의도적이지 않았지만 반체제 인사로 몰려 의사직을 파면당하고, 유리창 창 닦는 일을 할 때, 오히려 여성 편력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독자들의 반감을 사는 것 같아요.
토마시: 테레자가 스위스에 혼자 프라하로 돌아갔을 때 많이 망설였죠. 드디어 자유롭게 살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도 했는데, 테레자와의 같이 있는 것이 제 운명이라 믿음이 가서 프라하로 돌아갔죠. 물론 테라자를 보는 순간에 제 믿음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요. 사실, 사회가 요구하는 바는 너무 싫고, 그렇다고 내가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힘이 없고. 그래서 더욱 여성 편력이 심해지는 것이 있죠. 그런데 그 뒤에 오는 공허감이 점점 갈수록 심해지고, 그 공허함에서 구출할 사람은 테레자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모든 길은 테레자에게로 통했죠. 하하
주다주: 사실 요즈음 시대 같으면 심리상담이나, 섹스중독치료 같은 것을 받아야 할 증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테레자: 맞아요. 저희가 21세기에 살았다면 부부상담을 받았을 것 같아요.
프란츠는 그의 무거움에 대하여
주다주: 프란츠 씨는 지식인의 순진함과 허위의식을 동시에 보여주신다는 평을 받으시죠. 사바나가 연락도 없이 떠났을 때 꽤나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아요.
프란츠: 예 저는 제가 이혼을 하면 당연히 사바나가 좋아하고 같이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바나는 아니었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하지만 집과 아내를 떠나 혼자 생활하면서 사바나가 누리던 자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어요.
주다주: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체코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키치에 대하여 다른 세명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보여요.
프란츠: 저는 사비나와 반대로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고 행동할 때 살아 있음을 느껴요.
사비나: 그런 것들이 다 키치적인 모습인데, 나는 그것이 싫어서 도망간 사람인데, 나를 생각해서 대장정에 참석하였다는 것은 저를 잘못 이해한 것 같아요.
주다주: 프란츠 씨의 죽는 모습이 야코프 씨 죽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야코프 씨가 마치 사회주의를 위해 감옥에서 자살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변 때문이었고, 프란츠 씨도 대장정에 참석해서 캄보디아의 해방을 위해 일하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도한테 죽음을 당한 것으로 대응이 되어 보이는데 본인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프란츠: 가서 알았어요. 사람들이 '캄보디아의 해방'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나를 봐주세요'를 외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아무도 봐 주는 사람이 없었죠. 죽을 순간에 알았습니다. 대변이 얼마나 위대한지.
참석자 및 모두 방청객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 그 어디
주다주: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자신들의 삶을 이 무거움과 가벼움사이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티모시: 저는 현재의 체코에 태어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저를 괴롭힌 것은 정부당국의 간섭이었고, 다른 것은 그렇게 두려운 것이 없었어요.
테레자: 아마 현재 태어나도 저는 육체와 영혼의 일치성에 대하여는 같은 의견일 것 같아요. 그렇게 살지 않을 때 불행하다는 것을 알아버렸거든요. 대신 티모시와 이혼하고 대신 혼자 산다거나, 커리어 우먼으로 살고 싶어요. 일과 제 심장이 같이 가도록 아마 열심히 일할 거예요. 근본적으로 죽으면 없어지는 인생은 가볍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겁게 임할 필요도 있어요.
프란츠: 그렇죠 사람의 삶이 무거울 수도 가벼울 수도 있어요. 저는 시계의 진자처럼 이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게 인생인 것 같아요. 티모시가 자유를 맘껏 누린 후에 결국은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인간의 존재감에 절망하고 다시 테레자에게 돌아가는 것처럼요.
사비나: 삶이란 일회성이기 때문에 다시를 상정하지 말아야 하는데... 삶이란 근본적으로 무거운 것 같아요. 무거움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데에 있고요. 일회성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 무거움을 인식하되 순간순간은 가볍게 살고 깊어요. 예를 들면 '행복해야지' '행복하려면 이렇게 해야지'하고 조건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보다는 '어 내가 살아 있구나'하면서 리스트를 만들 수 있는 바탕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의 노골적 개입에 대하여
주다주: 진짜 마지막 질문입니다. 할까 말까 망설이던 질문이었는데 그냥 해보겠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먼저 펼치고 등장인물의 에피소드 나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작가의 개입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요?
티모시: 저는 저의 여성편력을 행위보다는 심리 분석 쪽으로 초점을 두고 해 주셔서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테레자: 글쎄요.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안나카레니나도 보면 작가가 말이 길잖아요. 저는 그냥 그러녀니 했어요.
사비나: 저는 주다주씨 말에 동의합니다. 예술의 형태를 빌어 너무 작가가 자신의 욕심을 채운 것이 아닌가 해요. 예를 들면, 키치를 설명할 때 뜬금없이 그 스탈린 아들의 이야기를 단독 에피소드로 집어넣을 필요가 있었나 해요. 제이야기로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물론 그 똥이야기는 독자의 눈길을 잡기에 매력적이긴 하죠. 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예술가로서 좀 맘에 안 들어요. 너무 작가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다 보니 등장인물들이 대역배우 같아요.
프란츠: 저는 예술의 형식적인 면, 장르적인 특성을 고정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식이든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양식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습니다.
주다주: 밤새 이야기를 해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야기하다 보면 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느낌도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무거움과 가벼움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더 방황이 깊어지기 전에 오늘의 책 시사회는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