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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숙현 Jul 15. 2023

3. 선계의 대장간

 화로에 올려놓은 덩이쇠가 벌겋게 달궈지고 있었다. 무길은 불의 온도를 가늠해보면서 풀무질을 했다. 바람이 일 때마다 불꽃이 화르르 일어났다. 무길은 여유 있게 불길을 바라보면서 숯을 한 움큼 더 집어넣었다. 이번에 들여온 숯은 향기가 좋을 뿐 아니라 화력도 셌다.  

 "불꽃이 네 놈을 삼켜버리겠구나."

 어느새 나타났는지 그림자 비도가 비아냥거렸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서인지 비도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만으로 비도의 검고 우중충한 얼굴이 눈앞에 있는 듯 했다. 무길의 양미간에 굵은 주름이 생겼다. 그는 못들은 척 외면을 하며 풀무질을 계속 했다. 손에 힘을 주니 탄탄하게 자리 잡은 팔뚝의 근육이 튀어나왔다. 


 마침내 달궈진 덩이쇠의 끝부분이 옅은 노란빛을 띄었다. 무길의 손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달궈진 시우쇠를 집게로 집어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조금이라도 먼저 쇠를 꺼내 메질을 하면, 물에 담금질을 하기도 전에 쇠는 식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잠시 딴 생각에라도 빠져 쇠를 꺼내는 시간이 늦어지면 물에 닿는 순간 금이 가버리는 것이다.

 "귀신 같이 때를 맞추는구먼. 내가 500년 동안이나 선계에서 살았어도 네 놈 같이 솜씨 좋은 대장장이는 못 봤다고."

 이제 윤곽이 제법 뚜렷해진 그림자 비도가 무길의 곁으로 다가왔다. 불에 달궈진 몸에 서늘한 기운이 확 끼쳐왔다. 세로로 붉은 줄이 나 있는 비도의 눈동자는 볼 때마다 역겨웠다. 

 '냄새나는 쓰레기 같으니라고.'

 대장장이 무길이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무길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비도를 쏘아보았다. 무길은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검은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게 나 있었다. 선계에 사는 정령치고는 키가 작았지만 대장간 일에 단련된 몸은 돌처럼 단단했다.  


 선인들이 주문을 하면 무길은 솥을 만들고, 쟁기를 만들고, 방패를 만들고, 칼을 만들었다. 쇠를 두드릴 때마다 몸에 비릿하고 시큼한 쇳내음이 배었다. 그는 타고난 대장장이였다. 불의 정령이 그의 아비요. 돌의 정령이 그의 어미였다. 무길은 뜨거운 불을 견디고 돌을 녹여 쇳물을 만들었다. 그 쇳물이 굳어 덩이쇠가 되면, 다시 불에 달궈 메질을 했다. 

 뜨거운 불 속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시우쇠를 보면 온 몸의 신경들이 다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무길이 만든 쇠붙이는 강하고 단단하며 아름답기까지 했다. 까다로운 선인들도 무길에게는 군말을 하지 않았다. 

 "따깡 따깡 따강."

 무길이 메질을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자 머릿속이 말갛게 개는 느낌이 들었다. 


 선계의 대장장이는 선인들이 주문을 한 물건만 만들 수 있었다. 돌을 녹여 쇠를 만드는 것, 그 뜨거운 불의 비밀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특히 인간에게 그 비밀을 알려서는 안 된다. 생과 사의 지혜를 깨우치기 전에 쇠의 비밀을 알게 되면, 인간 세상에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만들 때부터 정해진 약속이었다. 

 쇠의 비밀을 알고 있는 무길은 선계의 대장간 마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다. 대신 선계의 모든 것들을 선인들과 똑같이 누릴 수 있었다. 향기로운 바람과 달고 시원한 물, 세상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산해진미까지……. 무길의 생활은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무길은 손목의 힘을 가볍게 뺐다. 쇠가 녹신녹신 메질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들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질 좋은 쇠였다. 무길은 손맛을 느끼며, 굉장한 물건이 하나 만들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길은 자신이 만든 쇠붙이를 사랑했다. 반짝이는 쇠붙이를 보면 피로가 풀렸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것은 문제를 만들기 마련이었다. 선인들의 주문을 받아 만든 물건을 보며 무길은 진한 아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만든 쇠붙이를 주인에게 건네면서 무길은 망설였다. 자신의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이런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이것은 나, 무길의 쇠다."

 무길은 이렇게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그 욕망은 용광로보다 뜨겁게 무길을 삼켰다.

 그림자 비도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아무도 모르게 키워가고 있던 쇠붙이에 대한 욕망을 알아챈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비도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무길은 뜨거운 쇠붙이에 살을 데이고 말았다. 

 하지만 자신의 눈에 비도가 보인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대장간에서 쫓겨나는 것 뿐 아니라, 선계에서 내쫓기는 것을 의미했다. 비도가 나타나고 나서 무길의 말수가 없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는 척이라도 한 번 해줘야지. 우리가 보통 인연은 아니잖아. 혹시 알아? 나한테   아쉬운 소리라도 하게 될지. 클클클."

 비도의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속에서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저리 꺼져. 이 쓰레기 같은 놈아." 

 무길은 비도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에 맞은 비도의 몸이 검은 먼지처럼 공중에 흩어졌다. 하지만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알았어, 알았어. 성질하고는……. 자고로 불을 다루는 놈 치고 순한 놈이 없다니깐."


 그림자 비도가 궁시렁거렸다. 선계에 사는 정령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욕망과 집착이었다. 한없이 가벼운 정령이 욕망과 집착으로 마음을 채우는 순간, 그 존재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비도는 바로 그 순간을 노린 것이었다. 

 무길은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무길은 자기 앞에 놓인 덩이쇠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귀한 쇠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깊게 숨을 내쉬고 나서 무길은 다시 메질을 하기 시작했다. 덩이쇠를 앞뒤로 돌려가며 두드렸다. 무길은 두드리고 있는 것은 덩이쇠뿐만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무서운 욕망에도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욕망을 버리고 마음을 가볍게 하라.'

 무길은 주문이라도 외듯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치익.'

 뜨거운 쇠가 물에 들어가는 순간, 허연 김이 피어올랐다.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이었다. 누군가 무길에게 언제 쇠를 물에 넣고, 얼마만큼 담금질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말로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모든 것은 무길의 몸이 알아서 했다. 온 몸에 화상 자국이 생기며 익힌 쇠부리 기술은 무길의 몸에 새겨져 있었다. 차갑게 식은 쇠를 다시 한 번 화로에 올려놓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무길은 다시 달궈진 쇠를 엿가락처럼 늘여 두 겹으로 접어가며 두드렸다. 칼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메질을 하는 것이다. 무길의 망치는 엇나가는 법이 없었다. 쇠는 어느새 길게 늘어나 칼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그림자 비도는 무길의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무길의 메질 소리는 마치 음악 소리 같았다. 선녀들이 잘록한 허리에 맨 장구를 두드리는 것처럼 장단이 있었다. 어깨 위에서 신명난 가락이 놀고 있었다. 비도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는 자신의 눈이 틀림없음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운명이라는 말은 나를 위해 있는 것 같군. 지금 같은 시기에 무길이란 놈을 찾아내다니.'

 무사히 사로국을 다스린 혁거세는 선계를 찾아와 상제를 알현할 것이다. 그 틈을 잘 이용하면 비도는 선계를 벗어나 인간 세상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른다. 선계의 문이 열리는 때를 그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비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무길을 찾아왔다. 


 비도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무길은 담금질을 위해 새 물을 준비했다. 날카로운 칼을 만들기 위한 자신만의 비법이었다. 

 '칙'

 칼날 부분만 먼저 물에 넣어 급속히 식힌 후, 칼 전체를 물에 담갔다. 칼날은 칼등보다 더 단단하고, 상대적으로 무른 칼 등은 충격을 흡수해 줄 것이다. 이렇게 만든 칼은 거푸집을 이용해 만든 칼보다 몇 배나 더 강했다. 


 무길은 숫돌을 꺼내 칼을 갈기 시작했다. 불에 그슬려 거무튀튀했던 칼이 달빛처럼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쇠가 가진 본래의 색이 드러나는 눈부신 순간이었다. 쉽게 구부러지는 청동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빛이었다.  

 하얗게 벼려진 칼을 보는 순간, 무길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햇살까지도 베어낼 수 있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칼. 아무도 모르게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칼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무길의 눈빛이 아득해졌다. 


 비도가 슬쩍 그 곁으로 다가왔다. 

 "뭐야,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사라져야 하잖아. 무길, 오늘은 너무한 것 같은   데. 난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는데. 벌써 돌아가야 한단 말이야." 

 무길은 얼른 새 칼에서 눈을 떼었다. 도둑질을 하다 들킨 것처럼 가슴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길은 밖을 내다보았다. 열중하고 있던 사이, 희끄무레한 새벽 이 찾아들고 있었다. 


 무길은 문을 활짝 열고 숨을 들이마셨다. 향기로운 공기가 폐부에 가득 찼다. 어깨에 뻐근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예전처럼 뭔가를 완성했다는 가뿐한 기분을 만끽할 수는 없었다. 머리 뒤쪽으로 하얗게 벼려놓은 칼이 무길을 강력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무길은 그 힘을 거스를 수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칼 쪽으로 몸을 돌렸다. 


 비도는 투덜거리는 척 하며 무길의 눈치를 살폈다. 칼을 바라보는 무길에게서 짙은 욕망의 냄새가 풍겨왔다. 그것은 인간에게서만 나는 고약한 냄새였다. 비도는 무길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입김을 불어넣었다. 500년 동안이나 선계의 그늘에서 살았던 비도였다. 선계에서 버려진 존재는 욕망과 탐욕과 집착을 집어삼켰다. 이제 그 뜨거운 기운을 뿜어낼 때가 온 것이다. 작은 불씨가 바람을 만나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무길의 마음에서 그렇게 욕망이 불타오를 것이다. 

 비도는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난 이쯤해서 사라져줄까. 이제 날이 밝으면 그 칼을 찾으러 진명 선인이 사람을    보내겠지? 잘 건네주라고. 아주 귀한 칼이니까 말이야. 클클클."

 비도는 올 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무길은 아무 말도 없이 그림자 비도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

 무길은 점점 가슴이 답답해졌다. 힘껏 달린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 대장간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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