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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Apr 03. 2023

7. 우주 쓰레기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우주 쓰레기에 대해 수업을 했어. 화면 칠판에는 어떤 행성 위를 가득 덮고 있는 우주쓰레기들이 보였어. 

“이 행성의 이름은 바온이란다. 아름다운 자연 상태 그대로를 간직한 원시 행성이야. 한때 바온 행성은 안드로메다은하의 아름다운 보석이라고도 불렸지. 그러나 지금 바온 행성의 우주궤도를 가득 덮고 있는 건 우주쓰레기란다. 폐우주선과 낡아서 버려진 인공위성들, 로켓의 잔해들, 부서진 우주정거장의 파편들, 우주유람선이 몰래 버린 쓰레기들로 가득해. 우주 쓰레기들은 손가락만 낡은 부품부터 거대한 우주선까지, 그리고 우주법상 결코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는 독성 폐기물들까지 온갖 것들이 다 뒤섞여 있단다.”

선생님은 슬퍼서 말을 하기 어려운 듯 잠시 멈추었어.

“바온 행성은 원시 행성이라서 우주선도 인공위성도 없어. 그런데 어떻게 이 원시 행성의 우주궤도가 이토록 많은 우주 쓰레기로 뒤덮이게 되었을까?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던 이 행성은 어쩌다 죽음의 행성이 되어버렸을까?”

선생님은 다른 화면들을 보여주었어. 거대한 행성들의 쓰레기운반 우주선들이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을 쉴 새 없이 바온 행성 상공으로 가져와 쏟아버리는 모습이었어.

“문명이 발달한 행성들이 자기 행성을 깨끗하게 하겠다고, 온갖 쓰레기들과 독성 폐기물들을 마구 우주에 갖다 버리고 있어. 우주에 그냥 쏟아버린 쓰레기들도 우주 공간을 흐르다 행성 중력에 이끌려 이런 행성으로 모여들지. 문명이 발달한 행성은 자기 행성에 밀려온 쓰레기들을 다시 다른 행성 쪽으로 밀어낼 수 있어. 하지만 바온처럼 그럴 수 없는 행성들은 결국 이렇게 우주 쓰레기로 뒤덮여 버리게 된단다. 그리고 이게 그 결과야.”

선생님이 다른 화면을 보이려는데 갑자기 엄청 큰 소리가 났어.

쿵! 하고 말이야.

우린 모두 놀라서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지. 선생님도 화면을 보이려다 깜짝 놀라서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어.

바위였어!

자기가 앉은 의자를 다 먹어버려서 바닥에 쿵! 하고 떨어진 거야. 선생님이 큰 코에 잔뜩 주름을 지으며 말했어. 

“바위야, 수업 시간에 의자 먹지 말랬지!” 

“죄송해요 선생님. 그렇지만 너무 배가 고픈 걸요.”

바위는 입안 가득 의자 부스러기를 문 채 웅얼거리듯 말했어. “이제 교실에 남은 의자도 없어. 네가 지금까지 먹어치운 의자만 모두 모아도 아마 학교 하나는 더 만들 수 있었을 거다. 어쩔 수 없다, 오늘은 그냥 바닥에 앉아서 수업을 듣도록 해.”

선생님은 코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손가락으로 화면칠판에 새로운 화면을 띄웠어. 

행성의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화면이 나타났어. 화면에 나타난 것들은 정말 끔찍했어. 이전의 아름답던 행성과 같은 행성이라고는 절대로 믿을 수 없는 행성이 보였어. 행성 주변을 덮은 우주 쓰레기 때문에 태양의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독성 폐기물 비를 맞아 기괴하게 변형된 동물들은 고통 속에서 우박처럼 쏟아지는 쇳덩이 쓰레기들에 맞아 끔찍하게 죽어갔어. 

“우리처럼 발달한 문명을 가진 우주인들이 계속 지금처럼 쓰레기를 버린다면, 우주는 결국 쓰레기 더미가 되고 말 거야. 우리는 이 우주가 무한히 넓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우리가 버린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단다.”

화면에는 우주로 끊임없이 쓰레기를 밀어내고 있는 우주 곳곳의 수많은 행성들이 보였어. 행성들 각자는 쓰레기를 먼 우주로 밀어내지만 다른 행성들도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 결국 서로가 버린 쓰레기들로 다시 뒤덮이고 있었지. 

선생님은 화면에 아름다운 우주를 띄워놓았어.

“우주를 오염시키는 생물은 그 자신도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거야. 우리가 이걸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들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을 거야.”

아름다운 우주가 쓰레기로 뒤덮인다니 조금 무섭고 슬퍼지려 했어. 

그런데 그때 젤로가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더니 놀려대듯 말했어.

“너희 화물선도 저 쓰레기처럼 된 거 아냐? 너희 화물선은 아마 저 쓰레기더미 안에서 찾아야 할 거야.”

나는 화가 나서 젤로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퍽 때렸어. 

“꾸앗!”

젤로가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어. 

“너희 둘, 무슨 장난을 하는 거냐!”

선생님이 우리를 노려봤어.

“젤로가 우리 우주 화물선이 쓰레기가 되었다고 놀렸어요. 우리 화물선은 그냥 사라져버렸는데 말예요.”

“내가 쓰레기라고 했냐? 쓰레기 속에 있을 거랬지!”

젤로가 소리쳤어.

“둘 다 그만!”

선생님 가슴의 숨구멍에서 후웅, 후웅 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었어. 저건 선생님이 엄청 화가 났다는 뜻이야. 난 얼른 입을 다물었어.

“지아! 젤로! 사라진 화물선과 오늘 수업한 우주 쓰레기가 무슨 관계가 있지?”

선생님이 정말 화가 나면 우웅 하는 울림 때문에 유리창이 덜덜덜 떨려. 나는 잔뜩 겁을 먹었지. 

“너희 둘은 오늘 남아서 반성문을 써야 할 거다. 화물선이 오늘 수업한 우주 쓰레기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말이야.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아주 아주 길게 말이야.”

그런데 그때, 교실 아래에서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온갖 비명과 색깔들, 전기 자기장이 울려퍼졌어. 

“끼아악!”

“케우우욱!”

파지지직!

찌릿찌릿!

아래층은 1학년 교실이야! 비명이 울려나오는 곳은 우리 교실 바닥의 커다란 구멍이었어. 외계인 학교엔 바닥에 구멍 같은 게 있냐고? 교실에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잖아. 아이들이 걸어가다 구멍에 슝슝 빠져버릴 텐데. 하긴, 거기에 소방관들이 출동하는 것처럼 미끄럼봉이 있으면 좋긴 하겠다. 수업하는데 아래층 교실로 쓩 타고 내려가면 정말 신 날 거야.

어쨌든 우리 교실 바닥에 갑자기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고 거기로 아래층 교실이 보였어. 아래층의 1학년들은 난리가 났어. 너도 봤다면 우와, 이렇게 재밌는 광경은 아마 처음일 거야.

1학년 아이들은 되는대로 막 비명을 질러댔어. 그건 엄청 무서우면서도 정말 신 나는 비명 같았어. 수업 중에 갑자기 교실 천장이 뻥 뚫리면서 커다란 바위가 와장창 떨어져 내리는 것보다 더 신 나는 일이 어디 있겠니. 물론 뻥 뚫린 교실 바닥의 구멍으로 난리가 난 1학년 교실을 들여다보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신 나는 일이지만 말이야.

교실 바닥의 뻥 뚫린 구멍은 바위가 앉아 있던 자리였어. 먹보 바위 녀석이 자기가 앉아 있던 바닥을 먹어 치운 거야. 그래서 바닥이 구멍 나고 1학년 교실로 떨어져 내린 거지. 

아래층 교실에서 1학년 선생님이 1학년 꼬마들을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히려고 애썼어. 하지만 비명을 내지르고, 훌쩍거리고, 놀라서 토하고, 수업 안 하고 도망치려고 문을 나서고, 신 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붙잡아 다시 수업을 시작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지. 바위는 그 틈에 슬쩍 뒷문으로 빠져나오고 있었어. 그 와중에도 바닥에 떨어진 지우개 하나를 슬쩍 먹어치우더라. 

바위는 다시 우리 교실로 올라오는데 한참이나 걸렸어. 내려갈 땐 바닥으로, 아니 천장인가?, 어쨌든 뚝 떨어져서 갔지만 올 땐 문과 계단과 복도를 이용해야 했거든. 문으로 나가서 긴 복도를 지나서, 계단을 오르고, 다시 긴 복도를 거슬러 와서 우리 교실에 돌아와야 했지. 물론 돌아온 교실에선 엄청 긴 반성문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어. 선생님은 바위를 복도에 벌세우려 했지만, 복도에까지 구멍이 날게 걱정이 되셨나봐. 바위가 벌을 서다가 복도 바닥을 먹어치울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운동장으로 가라고 하셨어. 바위가 자주 운동장에 있던 이유가 있었던 거야. 

선생님은 꾸물꾸물 운동장으로 나가고 있는 바위에게 소리치셨어. 

“수업 시간에 바닥을 먹어치우는 일과 우주 쓰레기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써와야 할 거다.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아주 길게, 길게, 길게! 말이야.” 

선생님은 숨구멍으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말했어. 선생님이 으르렁거리는 소리 때문에 창문이 덜덜 떨렸어. 우리도 창문처럼 벌벌 떨었지. 

한참 후에야 선생님은 천천히 숨을 내쉬고는 우리 반 모두를 향해 말했어.

“오늘 숙제는 오늘 배운 우주 쓰레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각자의 생각을 적어 오는 거다. 제발 하루라도 말썽 없는 수업을 하고 싶구나. 너희가 말썽만 부리지 않는다면 재밌는 수업이 될 텐데 정말 슬프구나.”

난 선생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어. 오늘 수업은 정말 재밌었거든. 오늘처럼 신 나는 수업은 우주 어디에서도 하기 어려울 거야. 

수업 시간은 무척 재미있었지만 나와 젤로, 그리고 바위는 수업이 끝난 뒤에 교실에 남아서 반성문을 써야 했어. 그래도 한 가지 더 좋은 일도 있어. 젤로의 옆구리에 빨간 멍이 들었다는 거야. 

오늘 점심시간에 젤로가 복도 벽에 붙어서 날 넘어지게 하려고 발을 내밀고 있었어. 물론 몸 색을 벽처럼 완전히 바꾸고 말이야. 다른 때 같으면 난 또 녀석에게 당했을 거야. 발에 걸려 음식을 와장창 쏟으며 바닥에 철퍼덕 널브러졌겠지. 하지만 오늘은 젤로의 옆구리에 난 빨간 멍 자국을 보고 녀석을 쉽게 찾아냈어. 그래서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다 녀석의 발을 꽉! 밟아 주었어. 

“꾸아아아악!”

젤로는 오늘 하루 비명을 두 번이나 질렀어. 두 번째 비명은 첫 번째 비명보다 우주 괴물이 질러대는 것만큼이나 더 컸어. 발등에 생긴 두 번째 커다란 빨간 멍 자국만큼이나 엄청 큰 소리였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온 엄마와 아빠의 표정이 좋지 않았어. 저녁에도 사라진 화물선은 나타나지 않았어. 아빠가 하루 종일 위치추적기를 들여다보며 찾았지만 화물선은 보이지 않았대. 

“학교에선 별 일 없었니?”

엄마가 물었어.

“제 친구 바위네 우주 탐사선이 사라졌대요.”

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했어. 물론 반성문 얘기는 엄마한테 꺼내지 않았어. 엄마가 알면 날 그냥 두지 않을 게 뻔하잖아.

아빠가 심각하게 말했어.

“사라진 게 우리 화물선만이 아닌 것 같구나. 다른 연구소의 탐사선과 관측 로봇들도 세 대나 없어졌다는구나. 흔적도 없이 말이야. 저 우주에서 무슨 일인가 생기고 있어.”

엄마가 말했어.

“내일은 학교에서 행성 거주자 회의를 하기로 했단다.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아. 어른들이 모여서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지.”

“그럼 우린 학교에 안 가는 거예요?”

나는 활짝 기분이 좋아져서 물었어. 숙제를 안 해도 되잖아.

“꿈도 꾸지 마, 지아. 어른들은 학교 식당에서 회의를 할 거야. 그 동안 너흰 교실에서 열심히 수업을 하고 있겠지.”

엄마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어. 난 기분이 풀썩 꺼졌지. 

“그럼 내일 학교는 두 분이랑 같이 가는 거예요?”

“아니, 한 사람은 연구소를 지켜야 해. 아빠가 갈 거다.”

“내가? 여보 제발.”

아빠가 애원하듯 엄마를 바라보았어. 

엄마는 단호했어.

“당신도 돌멩이 대신에 살아 있는 우주인들을 좀 만날 필요가 있어요.”

엄마가 한쪽 눈을 치켜뜨자 아빠는 기가 죽어서 서재로 들어갔어. 서재라기보단 돌멩이 창고 같은 거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숙제를 하러 들어갔지.

뭉치는 창에 달라붙어서 어두운 우주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어. 그리고 길게 실을 뽑아내 창에 꿈틀꿈틀 붙여 놓았어. 꿈틀 꿈틀 말이야! 이게 무슨 뜻인지는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엄마가 억지로 뭉치를 창에서 떼어내고는 한숨을 쉬었어.

“뭉치, 이런 일이 아니어도 신경 쓸 게 너무 많아. 오늘은 제발 얌전히 있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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