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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Apr 03. 2023

6. 사라진 화물선

요즘 난 학교에 다니는 게 정말 즐거워.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어. 바위와 파랑이, 젤로 그리고 무엇보다 나린과 사이좋은 친구가 되었어. 먹보인 바위와 나한테 똥을 줬던 파랑이는 알지? 파랑이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거의 언제나 얼굴이 파래. 하지만 마음이 아주 착해. 

젤로는 젤론 행성에서 온 아이야. 내 짝이지. 처음 교실에 들어갔을 때, 파리외계인을 긴 혀로 잡아 꿀꺽 삼켰다가 침에 쏘여 비명을 질렀던 외계인 아이 기억나니? 그 아이가 바로 젤로였어. 젤로는 그날 하루 종일 퉁퉁 부은 혀를 입안에 가득 물고 다녔어. 젤로는 아마 우주 제일의 장난꾸러기일 거야. 몸을 마음대로 바꾸는 카멜레온 같은 아이야. 

새로 사귄 친구들 중에서 나랑 제일 마음이 잘 맞는 건 나린이야. 나린은 자기 이름이 ‘하늘에서 내려온’이라는 뜻이라고 알려 줬어. 그런데 놀랍게도 나린의 이름이 지구말에서 따온 거래. 오래전 옛날에 나린의 할아버지는 지구에 있었는데, 거기서 쓰는 말이 아름다워서 손녀딸이 태어나자 붙여준 거래. 

엄마에게 말했더니, 옛날에 지구 사람들이 요정이나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들이 사실은 지구에 온 외계인들이었을지 모른다고 했어. 우리와 많이 다르면 괴물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처럼 생기면 요정이라고 부르고 그랬을 거래. 나린도 그런 존재들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하니 신기했어. 어쨌든 그래서 내가 나린과 마음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나린은 지구에 대해 관심이 많아. 나한테 지구에 대해 많이 물어봐. 언젠가 자기도 꼭 지구에 가 보고 싶다고 했어. 자기 같은 외계인 종족이 요정이라는 존재로 불린다는 게 신기한가봐. 

아참, 외계인친구들을 소개하다보니 미래의 우주생물학자로서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나 빠뜨린 것 같아. 내가 우주언어번역기에 대해서 얘기한 거 기억나니? 귀걸이말야. 우주언어번역기라고 말하면 너는 아마도 이런 상상을 할 거야. 이상하게 소리 나는 외계인들의 말을 지구말로 바꾸어주는 기계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왜냐하면 외계인들의 말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거든.

네가 우주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모든 외계인들이 소리로 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누군가와 생각이나 감정을 주고받는 걸 의사소통이라고 해. 우리 지구인들은 보통 소리 ‘말’을 이용해서 생각이나 감정을 이야기하지. 그런데 소리 말로 의사소통을 하는 외계인들은 생각보다 엄청 적단다. 우주가 어마어마하게 큰 만큼 외계인들의 언어 방식도 정말 다양해. 어떤 외계인들은 자신들만의 특별한 냄새로 의사소통을 한단다. 지구의 곤충들이 자신들만의 페로몬이라는 냄새로 대화하듯이 말이야. 어떤 종족은 색깔로 의사소통을 해. 예를 들면 내 외계인친구 파랑이네처럼 말이야. 파랑이는 몸 색이 아주 기묘하게 계속 변하는데 그건 파랑이가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바위네 종족은 전기 같은 것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눠. 바위네 종족이 화를 내면서 크게 얘기할 때 근처에 있으면 몸이 감전된 것처럼 지릿지릿하단다. 젤로 같은 외계인들은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주로 몸짓만으로 말하기도 해. 어떤 외계인들은 진짜 텔레파시같은 걸 사용하기도 하지. 내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걸어오는 거야. 우주언어번역기는 그 모든 것들을 지구말로 바꿔준단다. 

이렇게 놀라운 우주언어번역기도 우주의 모든 언어들을 다 알고 있지는 못해. 우리는 우주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고, 우주는 끝없이 넓으니까.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말을 이해해내거나 문제를 해결해내야 한단다. 그래서 우주생물학자인 우리 엄마나 우주광물학자이자 행성탐사학자인 아빠 같은 사람들이 지구를 떠나 이 먼 곳까지 와 있는 거겠지. 우주엔 항상 새로운 행성과 외계 종족들, 그리고 생물들이 존재하니까. 

엄마 아빠도 이곳이 맘에 드는 모양이야. 집을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 계속 얘기하고 있어. 새로운 일터인 세종우주기지에서의 연구와 주변 행성 조사 일도 조금씩 시작했어. 모든 게 잘 풀리는 것 같아. 

그런데 집에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었어! 오, 맙소사!

학교에서 돌아오자 엄마 아빠가 엄청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어. 아빠가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어.

“화물선이 사라졌어!”

우주 화물선이 사라졌다고? 이건 진짜 큰일이야! 부모님이 저렇게 걱정스러운 얼굴인 이유가 있었던 거야! 엄마 아빠가 저렇게 걱정하는 건 처음 봐. 

여긴 지구에서 너무 멀어서 우주 화물선은 여섯 달에 한 번밖에 오지 않아. 무인 화물선엔 세종우주기지에 필요한 연구장비들과 우리 가족이 여섯 달 동안 먹을 식량이 실려 있어. 우린 아직 이곳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외계인들이 먹는 음식이라도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하나하나 조사를 해야 해. 어떤 외계인에게는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지구인에게는 독이 되거나 병을 일으킬 수도 있거든. 그동안은 안전을 위해서 지구에서 보내온 음식을 먹어야만 하지. 그래서 우린 화물선이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그 화물선이 사라져버렸다는 거야.

이곳에 올 때 타고 온 우주선은 우리 이삿짐과 연구소의 연구장비들까지 모두 실어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짐을 줄여야 했어. 장난감이나 간식을 더 챙기는 건 꿈도 못 꾸고 꼭 필요한 물건조차도 다 빼놓아야 했지. 덕분에 우린 이곳에 도착한 이후 거의 매일 맛없는 통조림과 말린 음식, 물에 풀어서 끓여 먹는 가루음식 같은 것만 먹어야 했어. 그런데 그것마저도 떨어져 가고 있어.

“3일 후면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잖아요!”

“그래, 그런데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단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어. 

“혹시 길을 잃은 게 아닐까요?”

“무인 화물선은 자동항해장치가 되어 있어서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없어. 아빠가 매일 확인하고 있었는걸.”

아빠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어. 

그때 동생 미르가 심통 난 얼굴로 소리쳤어.

“우주 해적이 뺏어간 거야! 뭉치야, 칼 만들어줘. 내가 가서 다시 뺏어올 거야!”

미르는 문밖에 해적이라도 와 있는 것처럼 싸우겠다고 뭉치를 안고 문으로 달려갔어. 미르를 붙잡느라고 나는 다이빙 태클을 해야 했지. 그런데 미르는 계속 자기가 해적을 때려주겠다고 소리를 질렀지. 발버둥치는 미르의 발에 코를 계속 얻어맞았어. 

“으악, 내 코!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미르!”

아파 죽는 줄 알았어. 코피가 쏟아질 것 같았지. 미르는 해적과 싸우기 전에 나를 먼저 죽이고 갈 작정인가 봐. 

미르는 나중에는 엉엉 울었어. 

“우린 굶어 죽을 거야! 틀림없어!”

바보 같은 소리만 해대는 동생이지만 이번만은 미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큰일이네. 남은 식량도 거의 떨어져 가는데.”

엄마는 나와 동생이 거실 바닥에서 엄청 소란을 떠는데도 이번엔 야단을 치지 않았어. 그만큼 화물선이 사라진 걸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야. 

우리 가족은 걱정과 우울이 가득한 얼굴로 천장 위로 보이는 검은 우주를 올려다보았어. 어제까지만 해도 저 우주는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전구로 가득 찬 것 같았어. 그런데 지금은 연필로 마구 구멍을 뚫어놓은 검은 도화지 같아. 하루 만에 우주가 바뀌었어. 

화물선이 도착하면 우리는 자그마한 파티를 열 예정이었어.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가족의 앞날을 축하하는 의미로 말이야. 그런데 화물선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파티 대신 굶어 죽는 걱정을 해야 할지도 몰라. 우리 가족에게 ‘앞날’이란 없는 거지. 도대체 우리의 우주 화물선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다음날, 나는 기운 없이 학교에 갔어. 사라져버린 화물선을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가 비명을 지르고 말았어. 의자 대신 뭉클한 게 엉덩이에 느껴졌거든. 

“흐아악!”

“카카카, 또 속았지?”

젤로는 몸의 모양과 색깔을 원래대로 바꾸어 드러나면서 카카카 하고 막 웃었어. 젤로는 젤론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야. 몸 모양을 맘대로 바꿀 수 있어. 녀석이 의자처럼 몸을 바꾸고 앉아 있으면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알아채기 어려워. 젤로가 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나는 몰랐던 거야. 

난 웃을 기분이 아니었어. 젤로가 여전히 벙글거리는 얼굴로 내 어깨를 툭 치며 물었어.

“무슨 일 있어?”

“지구에서 오던 우리 화물선이 사라졌어. 우리 엄마 아빠는 지금 엄청 걱정하고 계셔.”

그러자 자기가 앉은 의자를 먹고 있던 바위가 투덜거리며 말했어. 

“어제 우리 아빠 탐사선도 없어졌는데. 이곳 우주를 날아다니면서 지도를 작성하고 있는 탐사로봇선이야. 내가 먹어버리지 않았냐고 야단하시더라니까.”

그때 앞자리의 나린이 돌아보며 말했어.

“그러고 보니 내 머리띠도 아침에 사라졌는데. 요즘 뭔가 사라지는 게 유행인가 봐.”

“음, 이건 틀림없이 엄청난 사건의 냄새가 나. 정말 멋진걸?”

젤로는 재밌는 일이 생겼다는 듯 더 크게 벙글거렸어. 

하지만 나는 좀 더 심각해졌어. 

“이건 틀림없이 무슨 일인가 생기고 있는 거야.”

“맞아, 그 머리띠는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거란 말이야.”

나린이 말했어.

“내가 먹은 거 아냐.”

바위가 말했어.

“야, 신 난다! 엉망진창이다!”

젤로가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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