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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Apr 03. 2023

5. 외계인 친구들

학교를 뛰쳐나와 집으로 가려 했어. 하지만 곧바로 화난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어. 엄만 이 세상에서, 아니 이 우주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야. 길이가 1킬로미터나 되는, 구름 풍선처럼 떠다니는 가스 행성의 우주 괴물도 엄마한테 덤볐다가 엄청 혼나고 도망치고 말았는걸. 내가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면 엄만 날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어.

“그래, 아무도 내 얼굴을 모르잖아.” 

난 시침을 뚝 떼고 모르는 척하기로 했어. 내가 똥 먹은 걸 본 건 잿빛 꼬마 외계인 아이밖에 없어. 그런데 그 꼬마 아이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잖아. 

가장 큰 문제는 나한테 똥을 먹인 빌어먹을 머리 작은 부끄럼쟁이 ‘파랑이’ 녀석인데, 자기도 똥을 먹었으니 설마 떠벌리고 다니진 않겠지. 그 녀석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내가 똥을 먹었다는 걸 아무도 모를 거야. 

수업종이 울렸어. 난 어쩔 수 없이 교실로 들어가야 했어. 교실 안은 정말 요란시끌했어. 교실에 들어온 게 아니라 어디 놀이공원에라도 와 있는 것 같았지. 책상과 의자만 없었다면 난 잘못 들어온 줄 알고 다시 밖으로 나갔을 거야. 

선생님은 아직 오지 않았어. 온통 난장판이었지. 교실엔 내가 아는 외계인 종족도 있고, 처음 보는 외계인 종족들도 있었어. 카멜레온 행성 출신으로 보이는 카멜리오 외계인 아이는 파리외계인을 긴 혀로 낚아채서 삼켰다가 입을 쏘여 비명과 함께 뱉어내고 있었어. 지구에서 많이 보았던 잿빛의 그레이 외계인 종족 아이도 보여서 무척 반가웠지. 

얼음행성의 털북숭이 예티 외계인 아이, 파충류 얼굴의 외계인 아이, 진흙늪 행성 출신이라 오징어 다리 같은 촉수를 가진 외계인 아이, 머리가 위로 길쭉한 외계인 아이, 해파리처럼 다리를 늘어뜨리고 천장에 둥둥 떠 있는 가스행성의 외계인 아이 등은 내가 잘 아는 외계인 종족이었어. 

그러나 창가에서 전기뱀장어처럼 전기를 튀겨내며 온몸에 네온사인처럼 빛을 번쩍이고 있는 외계인 아이나, 물고기 같은 게 헤엄치고 있는 둥근 어항을 우주복처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는 아가미 달린 외계인 아이, 날개 없는 박쥐처럼 생긴 외계인 아이, 투명한 물고기처럼 몸을 너울거리며 흐느적거리는 외계인 아이, 윙윙거리며 끊임없이 날아다니는 파리 같은 작은 외계인 아이,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생긴 외계인 아이, 커다란 둥근 버섯 포자처럼 자리 잡고 앉아 숨만 들썩이는 외계인 아이 등은 아직 한 번도 직접은 본 적이 없는 외계인 친구들이었어. 

  내가 헛기침을 하자, 시끄럽던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어. 모두들 나를 보고 있었지. 나는 조금 놀랍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했지. 와, 이 아이들은 전부 얌전하구나. 이런 곳이라면 학교를 잘 다닐 수도 있겠는데? 

“얘들아, 모두 자리에 앉거라. 오늘 지구라는 행성에서 새로 전학 온 친구가 있다.”

내 뒤에서 휘웅 휘웅 울리는 소리가 들렸어. 알고 보니 내 뒤에 선생님이 서 있었지. 선생님의 길게 펼쳐진 코는 하마 입처럼 크고 넓적했어. 가슴에는 커다란 숨구멍이 있었어. 목소리는 그곳에서 울려 나와서 웅웅거리는 느낌이었지. 그 구멍은 고래의 머리에 있는 숨구멍 같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돼. 

“네 소개를 해주겠니?”

선생님은 나를 보며 말했어. 내가 막 내 소개를 하려는데 교실 문이 열렸어. 나는 숨이 멎어버리는 것 같았어. 

맙소사! 나한테 똥을 먹인 작은 머리의 파랑이가 들어오고 있어. 녀석은 코끼리 다리 같은 다리로 폴짝폴짝 뛰며 들어왔어. 아이들이 녀석의 얼굴을 보더니 키득거렸어. 

아이들이 모두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자, 파랑이는 얼굴이 금세 파랗게 물들었어. 파랑이의 얼굴엔 아직 똥 흔적이 남아 있었어. 똥을 먹는 것도 한심한데 뒤처리조차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었어. 내가 어쩌다 저런 녀석을 처음 만나게 된 걸까. 정말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녀석은 문을 닫고 자기 자리로 가려 했어. 그때였어.

“잠깐만!”

밖에서 급한 소리가 들리더니 손 하나가 막 닫히는 문을 잡았어. 그리고 누군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지. 지각한 학생 말이야. 그런데 난 그 아이를 보고는 진짜 숨이 멎어버렸어. 그 아이는 요정이었어. 빗대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요정이라고. 살짝 솟은 귀에 긴 머리, 너무도 예쁜 얼굴, 단지 날개가 없을 뿐이었어. 어쨌든 요정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이라니까! 

“나린, 제발 지각 좀 그만 할 수 없겠니? 새로 전학 온 친구한테 이런 모습을 맨 먼저 보여야 하다니 정말 부끄럽구나.”

나린이라고 불린 요정 아이는 선생님 말씀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 대신 날 보더니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나린이야. 잘 지내 보자.”

난 얼결에 나린이 내민 손을 잡았어. 

“난 지아야.”

‘난 미리내 은하 중심부에서 3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 지구에서 왔어. 지구는 정말 멋진 곳이야. 지구인들은 모두 친절해. 너희들과 잘 지내고 싶어.’라는 말을 준비했었지만 너무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그때 누군가 말했어.

“너 아까 똥 먹은 애 아냐?”

“똥 먹고 운동장을 미치광이처럼 달려간 녀석이잖아!”

“나를 밀쳐 넘어뜨리고도 자기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어!”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어댔어. 그 웃는 아이들 속에 나린도 있었지. 

난 죽을 만큼 창피했어. 무작정 교실을 뛰쳐나갔어. 뒤에서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어.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막다른 복도 끝이었어. 화장실이 보였어. 난 화장실로 달려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어. 

아,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난 거야. 왜 내 심장은 아까 멈춰버리지 않았을까. 그때 멈췄다면 난 이런 일을 겪지 않고 조금이라도 행복한 기억을 갖고 삶을 끝마칠 수 있었을 텐데. 

난 너무 창피해서 견딜 수 없었어. 요정처럼 예쁜 나린은 날 똥 먹고 비명이나 질러대는 녀석으로 기억하겠지. 화장실에서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내 학교 생활은 완전히 끝난 거야. 난 이 우주가 끝날 때까지 이 화장실에서 나가지 않을 거야. 여기서 내 삶을 끝낼 거야. 아니, 난 이미 끝난 거야. 

선생님이 밖에서 문을 두드렸어.

“지아, 그만 나오거라. 그건 애들의 장난일 뿐이야.” 

“절 그냥 내버려두세요. 전 여기서 나가지 않을 거예요. 전 여기서 죽을 거라고요.”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 그 누구도 날 화장실에서 나가게 하지 못할 거야. 난 절대로 여기서 나가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 결심은 1분도 가지 못했어. 밖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거든.

“쟤 혹시 안에서 또 똥 먹고 있는 것 아냐?”

난 문을 박차고 나가며 소리쳤어.

“절대 아냐! 난 똥 안 먹어! 지구인은 똥 같은 거 안 먹는다고!”

최악의 하루야. 미안해, 내가 지구인의 명예를 땅에 처박아버렸어. 아니, 똥에 처박아버렸어. 내 학교 생활도 완전히 끝난 거야. 무엇보다도 요정처럼 예쁜 나린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 

그런데 난 정말 끝나버린 걸까? 아니야. 아직 멋진 이야기가 남아 있단다. 언제나 슬픔 뒤엔 기쁨이 오는 거야. 그러니까 나쁜 일이 있다고 마치 우주가 끝난 것처럼 포기해버리면 안 돼.

내가 화장실 안에서 울고 있을 때 선생님이 한 말 기억나? 바로 이렇게 말하셨어. 

“지아, 그만 나오거라. 그건 애들의 장난일 뿐이야.”

맞아, 모든 건 아이들의 장난이었어. 그러니까, 그게 똥이 아니었냐고? 아니, 똥은 맞아. 그런데 여기 아이들은 그 똥을 무척 좋아해. 그 똥을 최고로 좋아한다고. 그 똥은 이곳의 모든 외계인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우주 초콜릿 같은 거였어. 

선생님은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오늘은 야외 수업을 하자고 하셨어. 

“새로 전학 온 친구에게 우리 학교에서 가장 멋진 곳을 소개해 주자꾸나.”

선생님은 나와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숲으로 갔어. 내가 똥을 먹었던 곳에서 좀 더 들어가자 울창한 숲이 나왔어. 

“쉬잇, 숲 속 동물들이 놀라니까 조용히 하렴.”

선생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아침에 보았던 분홍색 동물이 보였어. 머리를 아래로 하고 평화롭게 먹이를 먹고 있었지. 그 녀석 말고도 여기저기에 여러 마리가 있었어. 

선생님은 분홍 동물의 이름이 ‘우웨르꾹 꾸웨르왁’이라고 알려 주셨어. 이름이 어렵지? 우웨르꾹 꾸웨르왁은 ‘버섯을 먹는 분홍색 돼지’라는 뜻이래. 그래서 아이들은 어려운 이름 대신 그냥 분홍 돼지라고 불러. 난 녀석을 우웩꾸웩이라고 부르게 될지도 몰라. 그래도 뭐라고 부르든 그게 우주에서 제일 달콤한 우주 초콜릿을 만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야. 

분홍 돼지 우웩꾸웩은 땅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먹고 있었어. 우리를 보고는 익숙한 듯 코를 킁킁거리며 다시 먹는 일에 관심을 돌렸어. 목장에서 풀을 뜯는 말처럼 말이야. 선생님이 땅에 자라있는 검은 버섯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어. 그건 마치 검은 초코송이처럼 보였지. 

“저 녀석이 먹고 있는 게 바로 이거란다. 우주에서 가장 강한 독을 가진 독버섯이야. 그 어떤 우주의 동물도 입에 넣는 순간 죽게 되는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어.”

선생님은 분홍 돼지가 태어났을 때는 털이 많은 동물인데 독 때문에 털이 다 빠지고 피부도 붉은 분홍빛으로 되었다고 알려 줬어. 

“이 우주에서 오직 저 녀석 밖에는 소화를 못 시키지. 하지만 저 녀석이 버섯을 먹고 싼 똥은 독이 없어져서 우주에서 최고로 달콤하고 맛있는 우주 초콜릿이 된단다.” 

선생님이 우리를 돌아보며 씩 웃었어. 

“자, 이제부터 자유시간이다.”

“와아!”

아이들은 신 나는 함성을 지르며 똥을 찾으러 달려갔어. 선생님이 내 엉덩이를 툭 밀어주셨어.

“너도 얼른 가거라. 다른 아이들이 분홍 돼지의 똥을 다 먹어버리기 전에.”

달려간 아이들은 벌써 찾아낸 똥을 막 입에 넣고 있었어. 모두가 신 나는 축제를 벌이고 있었지. 그래서 나도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어. 우린 그 날 가장 신 나는 초콜릿 똥 축제를 벌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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