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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Apr 03. 2023

4. 첫날에 생긴 위기

쉬이익! 슈우웅!

캡슐이 외계인학교 왼쪽으로 사라졌다가 급하게 다시 달려와 오른쪽으로 슈우웅! 가는 보였어. 엄마는 우주에서도 길을 잘 못 찾는 길치야.

너무 서두르느라 하마터면 귀걸이도 못하고 나올 뻔했어. 학교 교문엔 <우주 끝 외계인학교> 라고 쓰여 있었어. 어떻게 처음 간 외계인 학교의 글씨를 쉽게 읽을 수 있는지 궁금할 거야. 그건 우주언어번역기인 귀걸이 때문이야. 귀걸이에는 우주의 거의 모든 언어를 바꿔주는 장치가 담겨 있어. 어떤 외계인을 만나더라도 자유롭게 말하고 글을 읽을 수 있지. 그러니까 너도 우주에 나갈 때는 귀걸이를 절대 잊으면 안 돼. 네가 남자든 여자든 말이야. 깜박 잊고 귀걸이를 하지 않고 나가게 되면 완전히 바보가 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될 테니까 말이야. 엄마는 그걸 통역기라고 하는데 난 귀걸이라고 부르는 걸 더 좋아해. 귀찌처럼 귀 위에 다는 거긴 하지만 귀걸이가 좀 더 예쁜 장신구처럼 들리니까. 

교문을 올려다보는데 너무 걱정되었어. 이제부터 내가 다녀야 할 학교엔 지구인은 한 명도 없고 모두가 외계인들뿐이잖아. 난 지구의 친구들이 그리웠어.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지구로 달려가고 싶었지. 하지만 돌아가기엔 여기선 지구가 너무 멀어. 한숨만 나왔어. 

난 너무 걱정되어서 바위에 걸터앉았어. 한숨을 푹 쉬었지.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어.

“야, 엉덩이 좀 치워줄래?”

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어. 내가 누군가 길을 막고 있는가 싶어서 말이야. 하지만 아무도 없었어. 보이는 건 저 멀리서 교실로 들어가고 있는 녹색 외계인뿐이었지. 

“하아, 너무 걱정이 많아져서 헛소리까지 들리나 봐.”

나는 아까보다 더 크게 한숨이 나왔어. 그런데 이번엔 좀 화난 목소리가 다시 들렸어.

“내 얼굴에서 엉덩이 좀 치워 달라고!”

난 깜짝 놀라서 아래를 봤어. 내가 걸터앉은 바위가 꿈틀거렸어. 난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났지. 내가 앉은 건 바위처럼 생긴 외계인이었던 거야. 

“냄새 나는 엉덩이로 내 얼굴을 짓밟지 마! 으악!”

바위가 이번에는 비명을 질렀어. 내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느라 바위외계인 친구의 얼굴을 엉덩이로 콱 눌러버린 거야.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 오늘 처음 전학을 와서 너무 낯설어서 그랬어.”

나는 놀라며 재빨리 사과했어. 

바위가 아래쪽을 재빨리 꿈틀거리며 나한테서 멀찍이 떨어졌어. 그러고는 나를 경계하듯 노려보았지. 바위 위쪽에서 달팽이 눈 같은 촉수가 쑥 올라와 있었어. 자세히 보니 바위로 된 달팽이 같은 모양이었어. 아니면 바위로 된 전복이라고 할 수도 있었어. 몸 전체는 커다란 바위인데 아래쪽에 달팽이처럼 끈적거리는 넓은 부분이 있는 거야. 그걸 발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였어. 달팽이처럼 배 전체가 발인 셈이지. 

“오늘 전학 왔다고? 그래도 남의 얼굴에 앉는 건 좀 심했어.”

바위는 내가 오늘 전학을 왔다는 말에 어느 정도 용서를 하는 것 같았어. 완전히 화가 풀리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그렇게 나쁜 친구는 아닌 모양이야. 

“그런데 넌 여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물었어.

“간식을 먹고 있었어. 난 항상 배가 고파.” 

“간식?” 

바위는 꺼억 트림을 하더니 넓은 발을 비비듯 움직여 잔뜩 묻은 돌 부스러기를 쓰윽 핥아먹었어. 나는 아까 바위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어. 땅이 움푹 파여 있었어. 그러니까 녀석은 땅을 먹고 있었던 거야. 바위는 꿈틀거리는 배 전체가 발일 뿐 아니라 입이기도 한 모양이야. 

“교실에 안 들어가니?”

“네가 방해해서 아직 배를 채우지 못했어. 난 간식을 좀 더 먹어야 할 것 같아. 난 언제나 배가 고파.”

바위는 다시 땅에 주저앉았어. 그러고는 배 입을 열심히 꿈틀거렸지. 그건 먹는 게 아니라 땅을 녹이는 것 같았어. 아니면 걸쭉한 죽 위에 놓은 두툼한 비스킷이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는 것 같았지. 바위는 정말 엄청난 먹보인가 봐. 교실로 가는데 나도 아침을 먹지 못했다는 게 생각났어. 바위가 엄청 먹어대는 걸 보니 더 배가 고파지는 기분이었어. 나무를 지나가는데 누군가 나무 뒤에 숨어서 쩝쩝거리며 맛있는 걸 먹고 있는 게 보였어.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 같은 다리에 머리가 작고 하늘색으로 맨들거리는 피부를 가진 곤충형 외계인이었어. 아이는 손과 입 주변이 자기가 먹고 있는 검은 것으로 범벅되어 있었어. 

그 아이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워하며 멋쩍게 살짝 웃었어. 그러면서 아이의 옆은 하늘색 얼굴이 파랗게 물들었어. 외계인 아이는 망설이다가 자기가 먹고 있던 걸 한 줌 내밀었어.

“먹을래?”

그건 초콜릿처럼 생겼어. 다른 점이 있다면 지구의 초콜릿보다 조금 더 색깔이 검었어. 

“그게 뭔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어. 아이는 벌써 또 초콜릿 같은 걸 한입 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어.

“또온.”

나는 손가락으로 살짝 맛을 보았어. 그건 진짜 초콜릿 맛이었어. 색깔만 같은 게 아니라 맛도 초콜릿과 똑같았어. 먹기 좋게 살짝 녹은 초콜릿 덩어리 같았어. 아니, 똑같지는 않았어. 이건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그 어떤 초콜릿보다 맛있었어. 이건 지구의 초콜릿보다 100배는 더 달콤하고 맛있는 초콜릿이었어. 

“또온?”

나는 아이처럼 허겁지겁 먹어대며 말했어. 

“따뜨딴 또온.”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청 맛있었어. 

“맛있다.”

내가 말하자 아이의 얼굴이 다시 파랗게 물들었어. 이 외계인 아이는 정말 부끄러움이 많은가 봐. 말할 때마다 얼굴이 파랗게 되었어. 이 외계인 아이는 아마도 피가 파란색인 모양이야. 피가 파란색이어서 부끄러워하면 얼굴이 파랗게 물드는 거야. 곤피가 빨간 우리 지구인이 부끄러워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것처럼 말이야. 곤충형 외계인처럼 보이는데 피부색이 민트색에서 녹색으로, 그리고 다시 파란색으로 변하는 게 신기했어. 

나는 ‘파랑이’가 준 걸 받아서 정신없이 먹었어. 파랑이는 내가 맛있게 먹는 걸 보더니 한 덩어리를 더 떼어주었어. 정말 착한 아이야. 난 그걸 받아 또 허겁지겁 먹었지. 아침을 안 먹어서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밥을 엄청 먹었더래도 초콜릿은 언제나 더 먹을 수 있잖아. 내 손과 입도 아이처럼 어느새 검은 것 범벅이 되어버렸어. 그래도 신경도 안 썼어. 또온이 정말 맛있었으니까. 

누군가 내게 우주에서 제일 맛있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난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할 거야. 

“또온이요!”

만약 그보다 더 맛있는 게 있다면 그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말할 거야.

“따뜨딴 또온이요!”

정말이야. 또온보다 더 맛있는 건 이 우주에 없어. 지구인의 명예를 걸고 맹세해!

그런데 정신없이 또온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우릴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어. 고개를 들어 보니 잿빛의 작은 외계인 꼬마가 자기 엄마 손을 잡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마음 좋은 외계인 친구 ‘파랑이’는 또온을 먹느라 고개도 들지 않았어. 

잿빛 꼬마 외계인 아이가 날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어.

“엄마, 쟤 똥 먹어.”

“그런 말 하면 안 돼.”

어른 청개구리처럼 생긴 아이 엄마는 얼굴을 붉히더니 재빨리 아이의 손목을 잡아끌고는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어.

난 갑자기 멍해졌어. 똥을 먹고 있다고? 무슨 말이지? 

남은 덩어리를 다 먹어치운 파란 외계인 친구는 손가락에 묻은 또온을 빨아 먹고 있었어. 

똥이라고? 그 꼬마는 분명히 날 가리키며 “쟤 똥 먹어.”라고 했어.

파란 외계인 친구가 또온이 묻은 손으로 내 어깨를 툭 쳤어. 

“좀 더 먹을래?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야. ”

파랑이의 이에 검은 또온이 가득 끼어 있었어. 녀석은 환하게 웃었어. 그러고는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켰어.

“저기 또 똥 생겼다. 따뜻한 똥이야. 식기 전에 얼른 가서 먹자.” 

녀석이 가리킨 곳에, 당나귀 귀를 가진 분홍색의 돼지처럼 투실투실한 외계 동물이 뒷다리를 살짝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어. 그러더니 철푸덕! 철푸덕! 큼직한 검은 덩어리를 쌌어. 김이 무럭무럭 나는 그것은 분명 또온처럼 생겼어. 

“와, 이번 똥은 엄청 크게 쌌다.”

파랑이가 기쁜 얼굴로 날 바라보았어. 

“똥이라고? 똥?”

“응, 똥.”

“아깐 또온이라고 했잖아!”

난 화가 나서 소리쳤어. 내가 소리치자 파란 외계인 아이는 얼굴뿐 아니라 온몸이 파랗게 물들었어. 

“난 분명 똥이라고 했는데. 따뜻한 똥이라고 설명까지 해 줬잖아. 아까 입에 똥이 가득 들어 있어서 네가 잘못 들었나 보다. 어쨌든 너도 맛있게 먹기에 똥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

“으웩! 내가 똥을 먹었어! 넌 내게 똥을 먹였어! 으웩!”

난 비명을 질렀어. 어떻게든 토하려고 했지. 그러나 한 번 배에 들어간 똥은 나오지 않았어. 억지로라도 토해내려고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었어. 그런데 집어넣은 그 손가락에도 똥이 범벅되어 있다는 게 생각났어. 나는 황급히 똥묻은 손가락을 빼내며 또 비명을 질렀지.

“으웨웩!”

괴물처럼 소리를 질러대며 수돗가를 찾아서 미친 듯이 달렸어. 교실로 향하는 외계인 친구들과 마구 부딪쳤지. 미안하다고 말할 정신도 없었어. 그저 미친 듯이 으웩! 소리만 질러대며 물을 찾아 달려갔어. 

겨우 운동장 구석에서 물을 찾았아. 물을 잔뜩 입에 넣었다가 뿜어내는 걸 몇백 번은 했어. 그래도 개운하지가 않았어. 먹은 똥이 이미 내 몸 안에 다 퍼져가는 느낌이었지. 그렇게 많은 똥을 먹었으니 아마 난 똥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몰라. 

전학 간 학교에서 제일 처음 한 일이 똥을 먹은 거라니. 난 아마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야. 난 끝났어.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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