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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Apr 03. 2023

8. 잡아먹힌 선생님

나는 아빠랑 함께 학교에 갔어. 아빠는 잔뜩 풀이 죽어서 학교로 들어가기 싫어했어. 난 그 기분을 이해했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건 정말 힘들잖아. 난 아빠가 식당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어. 아빠는 몇 번이나 날 돌아보며 울상을 지었어. 할 수만 있다면 멀리 지구로라도 도망치고 싶어하는 얼굴이었지. 하지만 엄마가 가만두지 않겠지? 아빠도 그걸 잘 알아. 그래서 저렇게 어쩔 수 없이 식당으로 들어가잖아. 

운동장에 주차해 놓은 캡슐이 가득 차서 우린 수업 시작 전에 하는 공차기를 하지도 못했어. 교장 선생님이 운동장에 나가는 걸 금지했거든. 대신 우린 교실 창문에 달라붙어서 새로운 캡슐이 들어올 때마다 캡슐 이름 맞추기 시합을 했어. 파랑이가 제일 잘 맞췄는데, 파랑이는 우주에 있는 소형 자동차인 캡슐 우주선의 종류를 거의 다 외우고 있어. 그건 정말 재밌는 놀이였어. 

그런데 수업 시작 종이 울리고도 우리 선생님이 오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캡슐이 들어오는 걸 보지 못한 것 같아.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이 들어오셨어. 교장 선생님은 키가 크고 무섭게 생긴 녹색 외계인이야.

“오늘 너희 선생님이 무슨 일이 생기셔서 늦으시는 것 같다. 그래서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겠다. 첫 시간은 무슨 과목이지?”

우린 아무도 얘기를 안 했어. 선생님이 늦게 오는 이런 엄청난 날에 제대로 수업을 하고 싶은 아이가 어디 있겠니?

그때 젤로가 번쩍 손을 들었어. 우린 젤로가 수학시간이라고 제대로 말할까 봐 겁에 질렸어. 그런데 젤로는 이렇게 말했어.

“체육이에요, 교장 선생님. 운동장에 나가서 공을 차야 해요, 교장 선생님.”

 우린 모두 “예 맞아요, 교장 선생님.” 하고 소리쳤어. 그래, 네가 아무리 먼 우주로 달아나도, 학교가 있으면 수학시간이 있는 거야. 어쩌면 어른들이 학교를 만드는 건 우리 아이들을 수학으로 고문하기 위해서인 게 틀림없어. 

“오늘은 학교 행사 때문에 운동장에 못 나간다. 그럼 2교시 수업을 먼저 해야겠구나. 2교시는 무슨 과목이지?”

교장 선생님이 말했어. 

2교시는 우주사회야. 우주만큼이나 크고 복잡한 과목이지. 우주의 역사와 지도에다 역사적 인물과 생산품과 날씨 같은 걸 배워야 해. 어른들이 우주사회 과목을 만든 건 아마 이런 이유일 거야. “수학 고문으로도 살아남았다고? 지독한 꼬마 녀석들. 좋아, 최후의 수단이다. 머리에 우주사회로 가득 채워서 뻥 터트려버려!” 

젤로가 다시 손을 들었어.

“과학이요, 교장 선생님.”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여자아이들은 우우! 하고 소리를 질렀어. 여자아이들은 음악이나 미술을 좋아하거든. 하지만 젤로가 한마디를 덧붙이자 모두가 환호했어.

“오늘 과학 수업은 분홍돼지 관찰하기에요, 교장 선생님. 학교 숲으로 가서 분홍돼지를 보기로 했어요.”

여자 아이들도 모두 “네, 맞아요, 교장 선생님!”하고 합창했지. 

교장 선생님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어. 그러다 바위를 발견하고는 물었지. 

“바위, 지금 무슨 시간이지?”

바위는 당황했어. 바위네 종족은 거짓말을 못하거든. 거짓말을 하는 게 바닥에서 뛰어오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래. 교장선생님도 그걸 알기 때문에 바위에게 물은 거야.  

바위가 고민하는 엄청 힘들어하는 게 모두에게 느껴졌어. 바위가 고민하면서 뿜어내는 전기 때문에 온 교실 아이들의 몸에 난 털이 쭈삣쭈삣 서고 있었거든. 결국 바위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어. 

“수학요.”

교장 선생님이 우리를 노려보더니 소리쳤어.

“못된 녀석들! 교장 선생님을 놀리려 들다니. 너희들은 벌을 받아야 해. 오늘은 하루 종일 수학이다! 모두 수학책을 펴!”

봤지? 어른들은 벌을 주기 위해서 수학을 만들었다고 했잖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수학책을 꺼내는데 화면 칠판이 치지직거리더니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어.

“여보세요? 얘들아? 치지직… 여보세요? 아이들이 날 기다릴텐데….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그리고 역시 치직거리는 화면 속에 선생님의 모습이 나타났어. 선생님은 캡슐에 앉아 있었어. 뒤쪽으로 검은 우주 공간이 보였지. 아마 학교로 오고 있는 것 같았어. 그런데 길을 잃어버렸나 봐.

갑자기 선생님 뒤쪽 검은 우주 공간에서 하얀 빛줄기 같은 게 쑥 나타났어. 그건 거대하고 뱀처럼 길쭉한 하얀 괴물 같았어. 거대 괴물은 마치 보이지 않는 천장에서 갑자기 쑥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나타났어. 그리고 다시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처럼 사라졌어. 그러다 다시 아래에서 솟구치면서 그것은 점점 선생님 쪽으로 오고 있었지. 우리 모두 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어.

“선생님, 괴물이에요! 뒤를 돌아보세요!”

“빨리 달아나요!”

“제발, 선생님 도망쳐요!”

교장 선생님도 겁에 질려서 크게 소리쳤어. 그러나 선생님은 그것도 모른 채 화면만 내려다보면서 우리와 말을 하려고 계속 애쓰고 있었어.

치지직, 치직, 치이익.

“여보세요? 얘들아, 내 목소리가 들리… 치이익… 교장 선생님께… 치이익 금방 간… 치지직…”

거대 우주 괴물은 검은 우주 허공에서 쑤욱 나타나고, 중간은 보이다가, 다시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쑤욱 파고 들면서 사라졌어. 그리고 다시 한참 떨어진 검은 허공에서 쑥 올라왔어. 거대 우주 괴물이 우주 허공에서 빠져나오고, 쑤욱 파고들 때마다 보이지 않는 우주 공간에 커다란 검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어. 

“선생님, 제발 뒤를 봐요! 달아나요!”

여전히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이제 거대 우주 괴물은 선생님의 캡슐 바로 근처까지 왔어. 쓰윽 선생님의 캡슐 위로 거대한 머리를 내밀었어. 은은한 하얀 빛이 번졌지. 그제서야 선생님도 고개를 돌려 거대 우주 괴물을 보았어.

“아아앗!”

치지직거리는 화면으로 선생님의 비명이 쏟아졌어.

우주 지렁이는 쓰윽 머리를 아래로 내리며 선생님의 캡슐을 덮치는 것처럼 내려왔어. 

으악, 어떡해!

거대 우주 괴물은 캡슐 앞으로 머리를 내려 박으며 공간 구멍을 파고들었어. 선생님의 캡슐이 달리고 있는 방향이었어. 선생님은 급하게 캡슐을 돌리려고 했지만 멈추지 못했어. 캡슐 앞으로 거대한 검은 구멍이 생겼지. 캡슐은 검은 구멍 안으로 달려 들어가고 있었어. 그리고, 헉! 선생님의 캡슐이 사라져버렸어. 

화면은 완전히 끊겼어. 선생님의 비명도, 지지직거리는 소리도 없었어. 하얗게 빛나는 거대 우주 괴물도 더 이상 없었지. 우린 까맣게 변해버린 화면만 바라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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