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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Apr 03. 2023

9. 우주 괴물

아무도 소리도 내지 못했어.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어.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어.

“괴물이다! 우주 괴물이 선생님을 잡아먹었어!”

그 말과 함께 아이들의 비명이 교실에 가득 찼어. 물론 실제로 교실에 가득 찬 건 온갖 요란한 색깔들과 찌릿찌릿 머리카락 곤두서기, 정신을 뎅! 하고 치는 것 같은 묘한 냄새 폭풍, 그리고 진짜 괴상한 소리들이지만 말이야. 당연히 그 속에는 으아악! 하는 내 소리도 들어 있었지. 

교장 선생님도 너무 놀라서 우리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았어. 막 허둥대기만 했지.

“애들아, 정신 차리자, 제발, 생각해야 해, 생각하자, 뭐든지 생각해 보자.”

계속 중얼거리기만 했어. 그러다 

“행성주민자치회!”

교장 선생님은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어.

“그래, 거기에 알려야 해. 대책을 세워야 해!”

교장 선생님이 나가자 우린 점차 조용해졌어. 비명을 지르던 아이들도 조그맣게 훌쩍이기만 했어. 비명을 들어줄 어른이 없으면 소리를 질러봤자 소용이 없잖아. 이젠 자기 자리에서 혼자 훌쩍이거나 친구들과 모여서 소곤거리기밖에는 할 수 없지. 

젤로와 파랑이, 나린, 바위가 내 쪽으로 왔어. 

“저게 도대체 뭐지?”

“무서운 우주 괴물이야. 틀림없어.”

젤로가 말했어.

“저 괴물이 마루네 화물선과 우리 탐사선을 먹어치운 거야. 우리 아빠가 절대 못 먹게 하는 걸 먹어치우다니, 나쁜 녀석이야!”

바위가 화가 난다는 듯 말했어. 자기는 못 먹는 걸 괴물이 먹어 화가 난다는 말처럼 들렸어.

파랑이가 온몸을 파랗게 되도록 훌쩍거렸어. 

“선생님은 어떻게 되는 거지? 선생님을 구해야 하잖아.” 

“이미 잡아먹혔을 거야.”

젤로가 말했어. 하지만 나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어.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선생님은 구멍 속으로 빠진 것뿐이야.” 

“구멍에 빠뜨려서 잡아먹는 거지. 괴물들은 다 그래.”

젤로가 말하자 나린은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어. 나린을 보더니 바위가 말했어. 

“우주 뱀이야. 거대한 우주 괴물!”

“괴물을 물리쳐야 해!”

이번엔 젤로가 소리쳤지. 파랑이도 크게 색을 반들거렸어. 

“우주 괴물을 해치우고 선생님을 구하자!”

아이들의 눈이 내게로 모아졌어. 나도 무언가를 말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어.

엄마는 뛰어난 우주생물학자라면 어떤 순간에도 차분해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어.

나는 잠시 숨을 골랐어.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지.

“우선 사실만을 골라내보자.”

“무슨 사실? 우주 뱀 괴물이 선생님을 잡아먹는 걸 이미 다 봤잖아.”

젤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어.

나는 다시한 번 아이들을 둘러보았어.

“겁을 먹은 마음이나 짐작, 편견, 그리고 추측 같은 걸 빼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말해봐.”

나린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어. 

“선생님의 우주 캡슐, 급하게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 거대하고 길쭉한 우주 생물, 그 생물이 우주에 만들어낸 공간 구멍.”

“그래 맞아. 그게 우리가 본 사실이야.”

나는 고깨를 끄덕이며 말했어. 

젤로가 바로 반박했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선생님은 비명을 지른 거잖아. 우주 뱀 괴물이 선생님을 잡아먹으려고 쫓아왔고, 선생님은 비명을 질렀고, 우주 괴물이 파 놓은 함정 구멍에 빠져서 잡아먹힌 거라고!”

“선생님이 내지른 건 비명이 맞을 거야. 엄청 놀라서 내지른 게 분명해 보여. 하지만 길쭉하고 거대한 우주 생물이 우주 뱀이거나 더욱이 괴물이라는 건 잘못된 추측일 수 있어.” 

“저게 괴물이 아니면 뭔데?”

젤로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어. 

“저건 지렁이 같아.” 

“지렁이?”

아이들이 동시에 물었어. 

“지구에 사는 생물이야.”

나는 자료를 찾아내서 홀로그램으로 지렁이 모습을 공중에 띄워 주었어. 

“으악! 괴물이다!”

젤로가 펄쩍 뒤로 튀어오르며 소리쳤어. 허공에 홀로그램으로 불러낸 지렁이가 엄청 크게 만들어져버렸거든. 

난 당황해서 급하게 지렁이의 크기를 마구마구 줄였어.

“미안, 내가 너무 크게 불러냈다. 실제로는 이렇게 크지 않아.”

“그래도 괴물처럼 징그럽고 무섭게 생긴 건 사실이야.”

파랑이가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어. 

“지렁이는 지구의 땅속에 사는 착한 벌레야.”

“땅이 있는 곳엔 어디나 벌레가 있지.”

바위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어. 

“땅속은 이 우주만큼이나 크고 놀라운 세상이라고. 너흰 땅의 껍질에만 사니까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바위는 자기가 잘 아는 것을 말할 수 있어서 아주 기쁜 얼굴이었어.

그러자 젤로가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하며 물었지.

“저게 괴물이 아니라면 우주에서 뭘 하는데?”

 “우주 지렁이라면 땅속 지렁이랑 비슷한 일을 하지 않을까? 지렁이는 단단한 땅을 부드럽게 만들어줘서 식물들이 잘 자라게 해줘. 지렁이가 사라진 땅은 딱딱하게 굳어버려. 식물들이 뿌리를 내릴 수 없지. 어쩌면 우주 지렁이는 우주의 보이지 않는 공간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우주를 풍요롭게 하고 있는지도 몰라. 땅속 지렁이가 생명으로 가득한 숲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선생님을 잡아먹었잖아.”

젤로가 말하자 나린이 소리쳤어. 

“선생님은 잡아먹히지 않았어! 그냥 구멍에 빠진 거라니까!”

나린은 선생님이 죽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은 것 같았어. 

젤로가 움찔 하다가 다시 말했어.

“그럼 사라져버린 마루네 화물선은? 바위네 탐사선도 없어졌잖아.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괴물이 구멍으로 끌고 가서 먹어버린 거라고.”

“꼭 그렇게 말해야겠니! 넌 진짜로 선생님이 잡아먹혔기를 바라는 거야?”

나린이 젤로를 때릴 것처럼 화를 내며 씩씩거렸어.

젤로는 정말로 화가 난 나린을 보자 몸을 움찔하며 더 이상 말하지 못했어. 아주 잠깐 동안 말이야. 곧 혼잣말로 조그맣게 움직거리며 말했거든. 

“저렇게 징그럽고 무섭게 생겼는데......”

젤로는 아까 본 거대한 홀로그램 때문인지 여전히 지렁이를 무서워하는 얼굴이었어.

“그런데 만약에 말야, 지렁이가 괴물이라면 어떻게 물리칠 수 있어?”

파랑이가 조심스럽게 물었어. 

난 우주생물학자답게 사실을 말해 주었지. 

“지렁이는 소금을 싫어해. 소금을 뿌리면 녹는 것처럼 몸속의 수분을 다 잃어버리거든.”



그때 뒤에서 교장 선생님의 냄새가 들렸어.

“오호! 저 괴물을 소금으로 죽일 수 있다고?”

우리는 깜짝 놀라서 돌아봤어. 교장선생님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뒤에서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야. 

“너희들이 정말 멋진 걸 알아냈구나. 행성자치위원회에 가서 말해야겠다. 지렁이라는 우주 괴물을 죽일 방법을 찾아냈다고 말이야.”

“잠깐만요, 교장선생님!”

내가 다른 말을 더 하기도 전에 교장선생님은 위원회로 달려가고 있었어.

우주 지렁이를 죽이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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