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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Apr 03. 2023

11. 우주의 뒤뜰

마침내 모든 게 다 잘 해결되었어.

찾아온 화물선 안에는 지구에서 할머니가 보낸 선물이 들어 있었어. 할머니는 나와 내 동생 하루에게 직접 뜬 장갑과 목도리를 보냈어. 크리스마스가 곧 오잖아. 할머니는 매년 그걸 보내셔. 그걸 제일 좋아하는 건 뭉치야. 길게 풀어서는 이것저것 만든단다. 그러고 보면 뭉치도 할머니처럼 뜨개질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난 가끔 상상을 해봐. 할머니랑 뭉치가 소파에 나란히 각자의 실로 무언가를 뜨고 있는 모습 말이야. 할머니는 뭉치에게 바늘 코가 잘못 들어갔다고 알려주고 있을지도 몰라. 뭉치는 아주 행복할 거야. 

그럼 난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두 켤레의 장갑을 갖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할머니의 장갑을 더 많이 끼게 될 거야. 뭉치의 장갑은 눈덩이가 달라붙어서 눈싸움을 할 수 없을 테니까. 

행성 거주자 회의에 다녀온 아빠는 집에 와서 엄마한테 엄청 신 나서 얘기를 늘어놓았어. 회의에서 만난 어떤 어른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였어. 아빠는 유치원에 가서 멋진 친구를 만나고 온 꼬마처럼 떠들어댔지. 

“정말 놀라운 바위였어. 내 지질조사용 망치로 두드려보라고 자기 등을 이렇게 대어주더라니까? 정말 멋진 외계인이야.”

아빠는 바위네 아빠와 친구가 된 것 같았어. 

이제 우주 지렁이 얘기를 좀 할게. 우주 지렁이는 우주 쓰레기들이 넘치는 곳을 피해서 이곳에 왔을 거라고 엄마는 말했어. 문명 행성들이 마구 버린 우주 쓰레기들과 독성 폐기물들이 우주 공간 속으로 스며들어. 그래서 그곳에선 살 수 없었던 거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이제 막 공간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중이라 공간 표면에 구멍이 생기고 화물선이 사라지는 사고가 생겼대. 지렁이가 공간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했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공간은 그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우린 공간 자체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저 공간의 표면에 살고 있는 거야. 우린 우주의 껍데기에 살고 있어. 무한히 넓고 큰 우주를 우리는 전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린 그저 사과 껍질 위를 기어 다니는 작은 개미에 지나지 않는 거야. 

그날 밤 나는 우주의 껍질 위에 있는 꿈을 꾸었어. 우주는 아주 커다란 사과 같았어. 나는 아주아주 작은 개미가 되어 길게 자란 더듬이를 갸웃거리며 우주의 소리를 들었어. 껍질 아래, 아주 깊은 곳에서 우주 지렁이가 아주 느리게 사과 속을 갉아먹는 소리를. 우주가 지렁이를 배불리 먹이면서도 끊임없이 속이 차오르는 소리를. 그리고 배를 채운 지렁이가 행복한 꿈을 꾸며 잠드는 소리를. 나도 지렁이도 아주 행복했어. 

엄마는 우리가 이사 온 이곳을 우주의 뒤뜰 같은 곳이라고 했어. 우주 지렁이는 이곳을 깨끗하고 오염이 되지 않은 뒤뜰이라고 생각한 거야.

나는 아주 먼 우주의 끝에 사는 게 아니라 우주의 뒤뜰에 산다고 생각해 보았어. 예전엔 이곳이 아주 멀고 외딴 우주의 구석진 변두리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뒤뜰이라고 하니까 왠지 이곳이 더 친근하고 근사해 보였어. 우주 지렁이 덕분이야. 

거대 우주 지렁이가 나에게 준 선물이 하나 더 있어. 웜홀에 빠졌던 선생님의 우주선은 아주 멀리서 웜홀에서 빠져나왔어. 선생님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어.

“얘들아, 나 좀 제발 데려가 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선생님은 밤새 우주를 떠돌았어. 무척 먼 곳이어서 쉬지 않고 와도 월요일에나 학교에 도착하신대. 그게 무슨 말인 줄 아니? 난 처음으로 주말에 숙제가 없다는 거야. 숙제가 없어!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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