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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Apr 03. 2023

10. 거대 우주 지렁이

우리는 교장선생님을 쫓아 급하게 행성주민자치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식당으로 달려갔어. 

나린이 소리쳤어. 

“우리가 막아야 해!”

“어른들이 우리 말을 들어줄까?”

“어떻게든 해봐야지!”

식당 출입구로 들어가려는데 회색빛 외계인 어른이 우리 앞을 막아섰어. 학교 경비 아저씨였어. 

“얘들아, 위험해! 빨리 교실로 들어가 있어! 우주에 무서운 괴물이 나타났단다.”

“어른들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 들여보내 주세요.”

“지금은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단다. 너희는 빨리 안전한 곳으로 가 있거라.”

경비 아저씨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어. 경비 아저씨는 경비원이면서 아이가 이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이기도 해. 

“제발요, 그럼 대신 전해주기라도 하세요. 정말 중요한 거예요.”

나린이 소리쳤어. 

경비 아저씨가 몸을 돌렸어.

“그건 나쁜 괴물이 아니에요. 지렁이에 대해 사실을 말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경비아저씨는 잠깐 고민하는 것 같았어. 

“좋아, 너희가 직접 말하렴.”

식당문을 열고 복도를 들어가는데 벌써 어른들의 고함이 들려오고 있었어. 온갖 색깔과 빛이 번쩍거리기도하고, 전기 같은게 파지직 거리기도 했지. 어른들은 외계인 학부모이자 거주민들이니까 그들의 혼란스런 대화가 마구 요동치고 있었던 거야. 어른들은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분노하며 말을 쏟아냈어. 

“우주 지렁이는 반드시 죽여야 해요!”

“지렁이라니! 이름부터가 정말 무시무시하게 생겼군요.”

“우주 괴물이 우리 가족을 위협하는 걸 내버려 둘 순 없소!”

“저런 끔찍한 괴물 앞에 우리 아이를 놓아둘 순 없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저 괴물을 내 손으로 죽일 거요!”

아빠의 모습도 보였어. 아빠는 한쪽 구석에서 심각한 얼굴로 듣고만 있었어. 

회의장 가운데에는 거대한 지렁이 홀로그램이 떠 있었어. 선생님의 마지막 통신 장면과 함께 말이야. 거대한 지렁이 홀로그램을 띄우고 있는 건 교장 선생님이었지. 

“그런데 저 괴물을 어떻게 죽일 수 있죠?”

누군가 물었어. 

교장선생님이 말했지.

“저 괴물은 소금을 뿌리면 죽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소금 행성이 있습니다. 그 소금행성의 소금을 우주 공간에 잔뜩 뿌릴 겁니다.”

“저 괴물은 공간에 떠 있는 게 아니라, 공간 안에 구멍을 내고 들어가는 놀라운 놈인데, 그냥 공간에 뿌리는 소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공간 안으로 들어가버리면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데.”

“지렁이라는 괴물은 땅 속으로 숨는 벌레라고 해요. 그러니까 땅속 벌레를 죽이는 방법으로 죽일 겁니다. 단단한 땅이라도 소금을 쏟아 부으면 땅속으로 스며들지요. 그런 것처럼 소금행성의 소금을 우주 공간에 잔뜩 뿌리면 보이지 않는 우주 공간 속으로도 스며들 겁니다. 그리고 그 소금에 닿으면 저 괴물 벌레도 죽는 거지요.”

교장 선생님의 말을 들은 나린이 몸을 떨며 움찔했어. 마치 소금에 닿은 지렁이가 괴롭게 꿈틀대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떨렸지만 용기를 냈어.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지.

“지렁이는 괴물이 아니에요! 공간을 먹고 있는 것뿐이에요!”

어른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았어.

난 어른들에게 지렁이에 대해 말했어. 지렁이는 절대로 나쁜 괴물이 아니고 아주 좋은 일을 하는 벌레라고. 

“지렁이는 무언가를 잡아먹는 뱀 같은 포식 생물도 아니에요. 보세요, 캡슐 우주선을 삼킬 만큼 큰 입이 없잖아요. 지렁이는 둥근 고리 같은 몸통을 움츠렸다 늘리면서 움직여요. 뱀은 몸을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이동하죠. 그러니까 아저씨가 말하는 것 같은 우주 괴물 뱀도 아니라고요.”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단다. 너희 선생님은 저 지렁이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거야.”

교장 선생님의 냉정한 목소리였어. 

난 억울하다는 듯 말했지.  

“선생님은 죽지 않았어요.”

“무슨 소리냐? 너희도 괴물 지렁이가 만든 구멍에 너희 선생님이 삼켜지는 걸 보지 않았니?”

교장 선생님이 우리를 하나하나 바라보며 말했어.

“그리고 선생님은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어. 저 거대한 괴물 지렁이 때문에 말이야.”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그건 분명히 사실이니까. 


어른들은 진짜 괴물을 잡으러 가는 것처럼 소란스럽고 비장한 얼굴로 식당을 나갔어. 

아빠가 내게 와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그냥 내 어깨를 감싸주었어. 파랑이는 자기 엄마한테 온통 얼굴이 파래지면서도 뭔가를 말하고 있었어. 나린이는 엄마 품에 안겨 울었지. 

바위네 아빠는 이렇게 말했어.

“지금 그런 얘기를 들어줄 때가 아니란다. 빨리 가서 괴물을 없애야 돼.”

우린 어른들에게 말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 


식당에는 우리 밖에 남지 않았어. 긴 침묵이 이어졌어.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 나 때문에 지렁이가 죽게 되었다는 생각뿐이었어. 지렁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른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잖아. 지렁이가 불쌍하긴 하지만 선생님을 구하려면 어쩔 수 없는 걸.”

젤로가 위로해줬어. 파랑이는 물감 과일을 꺼내어 말없이 먹었어. 파랑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면 물감 과일을 먹어. 빨강, 파랑, 보라, 노랑, 초록, 주황 물감 과일을 먹어서 자기 몸에 색깔을 채우는 거야. 대화할 때 쓰는 색깔들을 채워 넣는 거지. 물감 과일은 한입 베어 먹을 때마다 치럭치럭 소리가 났어. 과일에 벌레먹은 구멍이 있었어. 파랑이는 그것도 모르고 베어 먹고 있었어. 

그걸 보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쳤어.

“그건 웜홀이야!” 

“웜홀?”

나는 선생님이 정말로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마구 흥분됐지.

“웜홀은 말 그대로 벌레구멍이야.” 

나는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을 펼쳤어. 그리고 종이의 대각선 끝에 점을 하나씩 찍었어.  “이 종이가 우주라고 해 봐. 그러면 두 점은 우주의 양쪽 끝에 있는 가장 먼 곳이야.”

그리고 파랑이한테 과일 하나를 뺏어서 왼쪽 점 위에 올려놓았어. 

“이건 우주선이야. 우주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이렇게 가겠지.”

나린이 과일로 똑바로 두 점 사이를 바로 가로지르며 말했어.

“맞아. 그렇게 직선으로 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야. 하지만 이 두 점이 우주의 양 끝에 있다면 이 우주선은 아무리 빨리 가도 끝에서 끝까지 가는데 몇 억 년이 걸릴 거야. 그런데 이보다 더 빨리 가는 방법이 있어. 아니, 순식간에 가는 방법이지.”

“야, 이보다 더 빨리 가는 길이 어딨냐? 말도 안 돼.”

젤로가 따지듯 말했어. 나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어.

“아냐, 있어.”

나는 종이를 들어서 점이 찍힌 두 부분을 맞대고 손가락으로 구멍을 냈어.

“이렇게 하는 거야. 두 점 사이가 바로 이어졌지? 그럼 바로 가는 거야. 이게 바로 웜홀이야.” 

젤로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어.

“우주를 어떻게 네 맘대로 구멍을 내냐?”  

“맞아, 우린 구멍을 낼 수 없어. 하지만 거대 우주 지렁이라면 사과 벌레처럼 공간에 구멍을 뚫을 수 있지. 웜홀은 벌레구멍이야. 젤로가 먹고 있는 물감 과일이 우주라고 생각해봐. 우린 그 위에 살고 있는 작은 개미야. 음, 개미는 지구에 있는 아주 작은 기어다니는 곤충이야. 어쨌든, 개미가 이쪽 끝에서 아래 꼭지로 아래로 가려면 이렇게 사과 둘레를 빙 돌아가겠지. 그런데 벌레가 중간을 파먹었다고 해 봐. 그럼 이제 가장 빠른 길은 벌레가 파먹은 벌레구멍이겠지? 선생님은 바로 그곳에 들어간 거야. 괴물의 함정에 빠진 게 아니라고.” 

나는 나린을 보며 말했어. 

“지렁이를 죽이면 선생님은 영원히 못 돌아와. 선생님을 구하려면 지렁이를 죽이면 안 돼.”

“그렇구나! 지렁이가 살아 있어야 반대쪽 출구가 뚫릴 수 있어. 지렁이를 죽이면, 반대쪽 출구가 뚫리지 않아서 선생님은 영원히 웜홀에서 빠져 나오지 못 할 수도 있어. 개미처럼.”

나린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어.

바위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얼굴이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선생님이 개미라고?”

 젤로가 자기는 알았다는 듯 바위 머리를 탁 때리며 말했어.

“개미가 과일 벌레 구멍에 들어갔는데, 과일 벌레가 아직 반대편 구멍을 다 뚫고 나오기 전에 죽어버리면, 개미는 구멍에 갇힌다고!”

파랑이가 소리쳤어.

“선생님을 구하려면, 지렁이를 구해야 해!”

우린 밖으로 뛰쳐나갔어. 

“어떻게 어른들에게 연락하지?”

“우리 말은 이제 듣지도 않을 텐데.”

그때 나린이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어.

“어? 저거 너희 엄마 캡슐 아니니?”

진짜 엄마였어. 

“엄마!”

나는 너무 기뻐서 아이처럼 소리를 질렀어. 엄마가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어. 

“엄마, 어떻게 여기 계세요? 연구소는요?”

“괴물이 나타났다고해서. 괴물을 보러 가려면 먼저 미르랑 널 집에 데려다놓고 가야하니까.”

역시 엄마는 우주생물학자였어.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엄마에게 쉬지 않고 설명을 했어. 나린이랑 젤로, 파랑이, 바위도 엄마를 둘러싸고 급하게 말을 쏟아냈지.

“선생님은 웜홀에 빠진 것뿐이에요. 지렁이는 잘못이 없어요. 그냥 구멍을 만들었을 뿐이라고요.”

“어른들을 막아 주세요! 지렁이를 죽이면 선생님은 영원히 웜홀에 갇혀 버릴 거예요. 우주 지렁이가 살아 있어야 선생님도 출구로 빠져나올 수 있어요.”

“지렁이는 선생님을 잡아먹으려고 한 게 아니에요. 괴물은 그냥 저기를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데 선생님이 운 나쁘게 괴물이 만들어낸 공간 구멍에 빠진 것 뿐이라고요.”

“얘들아 진정해. 한꺼번에 말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언어번역기가 터져버릴 거 같아.”

그래도 우리는 말을 멈출 수 없었어. 너무나 중요하고 급한 일이었으니까.

결국 엄마는 우리 말을 다 들었어. 그리고 급하게 아빠에게 연락했어. 

“우주선 출발을 막아요! 애들 말을 다시 들어봐야 할 것 같아.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일단 우주선 출발을 막아줘!”

그리고 주민자치위원회 대표에게도 통신을 시작했지. 

엄마는 위원회 대표와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를 했어. 엄마의 마지막 말은 이랬어.

“그래요, 행성주민자치위원회를 다시 소집해야 할 것 같아요. 아주 긴급하게요.”

어른들이 다시 다 모인 식당에서 엄마가 우리를 보며 말했어. 

“아마 이 아이들이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나는 어른들에게 웜홀과 지렁이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해줬어. 파랑이와 나린, 그리고 바위와 젤로도 얘기를 도와줬지. 과일과 종이와 개미 그림을 펼쳐서 설명하면서 말이야. 

내가 거의 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 바위네 아빠의 위치추적기가 갑자기 삑삑거리기 시작했어. 바위네 아빠인 큰바위가 말했어.

“이것 봐요! 우리 탐사선이 나타났어요! 근데 우리 건 여기서 일주일이나 떨어진 곳에 나타났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수 있는 거지?”

바위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어.

“아빠, 탐사선 내가 안 먹었다고 했잖아요!”

이어서 여기저기서 삐삑 거리는 소리가 마구 들리기 시작했어.

“우리 화물선이 나타났어요!”

“우리 우주선도요!”

외계인 아줌마 아저씨들은 갑작스런 우주선의 귀환에 놀라고 어리둥절했지.

가장 크고 중요한 귀환을 알리는 삑삑 소리는 이거였어. 식당문을 벌컥 열며 들어온 예티가 소리쳤어.

“선생님이 다시 화면에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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