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따라 버리고 죽이기
보라매 공원에 있던 포플러 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고, 그나마 몇 그루 남지 않은 나무들은 윗부분을 강전정(강한 가지치기, Topping)으로 잘라내 버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국제수목학회(ISA) 공인 수목전문가인 이재현 아보리스트는 “이해할 수 없는 최악의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동공이 생겼다고 다 위험목이 되진 않아요. 겉에 분포한 형성층 조직이 충분히 버텨줄 때가 많아요. 수백 살 된 나무 중에 동공이 없는 나무는 없습니다. 국제수목학회에선 머리 부분은 치유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손대지 말라고 해요. 곰팡이와 세균도 침입하기 쉬워 나무가 더 약해져요. 또 나무가 머리 부분을 복구하려 잠아(숨은눈)를 틔우면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잠아에서 자란 가지는 접합면이 약해 잘 부러지니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위험해요.”
- <한겨레21>, 2023.06.21
강전정을 하는 이유는 단지 키가 커서 쓰러지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직 민원 방지와 책임 회피, 관리 편의를 위한 쉽고 단순한 결정이다. 나무를 위한 것도, 환경을 위한 것도 아니다.
나는 아직도 한국 도심에 나무와 공원이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50살 먹은 나무도 쉽게 잘라내는 걸 보니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 싶은 마음에 아쉬움 섞인 한숨이 나온다. 녹음이 푸르러야 할 공원에서 그늘 한 점 찾을 수 없게 이파리를 잘라내고 가지를 쳐내면서 나무를 그저 길쭉한 막대기로 만들어버리는 도시 환경에 질린다.
게다가 관리자가 남긴 말도 황당하다.
요즘은 너무 크게 자라는 포플러나
플라타너스 같은 수종은 잘 안 심는다.
- <한겨레21>, 2023.06.21
한 번 심으면 백 년을 살 수 있는 나무를 두고 “요즘” 안 심는 수종이니 베고 잘라 없애도 상관없다는 생각.
공원 관리자도, 공무원도, 민원인들도 백 년, 이백 년 긴 시간 동안 생태계를 이루는 나무를 얼마간만 쓰다 버릴 상품처럼 여긴다.
또 다른 사례로 자연적으로 조성된 강변 생태계를 밀어버리고 요즘 유행하는 유채꽃밭을 만든다거나 산책로를 만든다며 콘크리트를 들이붓는 경우도 꼽을 수 있겠다.
동물도 유행 따라 종을 가려 사고 유행이 지나면 파양하고 버리더니, 이제 식물도 유행 따라 심었다가 유행이 지나면 베어 죽이거나 갈아엎으면 그만이다.
한 생명이 품고 있던 고유한 시간보다 한순간 흘러갈 유행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해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