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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절은 여름 Jun 13. 2023

1. 매일이 붕어빵일 수는 없다

하루하루가 지겹다고?

 지난겨울, 붕어빵을 굽는 일에 관심을 가졌었다. 소를 다양한 맛으로 바꿔서 먹어보고 싶은 욕망에 타올랐기 때문이다. 애인과 친구들에게 원하는 맛을 주문받아 특별제작으로 구워주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애인과 붕어빵을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적당한 양의 반죽을 붓고 완벽한 타이밍에 뒤집는 장인의 빠른 손놀림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애인이 내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 보고 배우는 중이라고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했다.


 한 손으로 붕어빵 봉지를 소중히 받아 들고서 남은 한 손으로 붕어빵을 꺼냈다. 애인과 나는 붕어빵을 각자 손에 들고서 “이게 더 크고 예쁘다”며 비교를 했고, 서로에게 더 큰 걸 주려고 했다. 우리는 흔히 ‘틀에 찍은 듯이’, ‘붕어빵처럼’ 똑같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실제로 ‘틀에 찍은’ 붕어빵을 자세히 보면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반죽의 농도가 미세하게 다르다거나 붓는 각도가 조금 틀어졌다거나 손님이 말을 시켜서 반죽의 양이 더 들어갔다거나 새치기하는 사람을 말리느라 뒤집는 타이밍이 살짝 늦어졌다거나… 이렇게 붕어빵을 다르게 만드는 요인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무수히 많지 않을까 싶다.


 고정된 틀이 있는 붕어빵도 하나하나가 다른데, 무정형하고 비물질적인 우리의 매일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을까. 지인이 “요즘 어떻게 지내?” 물어보면 금방 “똑같지, 뭐”라고 대답해 버리는 나. 나는 똑같은가. 나의 매일은 똑같은가. 나의 삶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정말 똑같은가.


 어느 순간에는 “아이고, 똑같지! 지겨워!”를 외치면서 권태에 몸부림치고, 어느 순간에는 “그래도 지금은 전보다 낫지. 엣헴!” 하면서 웃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듯 나의 매일에 대한 양가감정을 갖는다. 그렇다면 나의 매일에서 무엇이 똑같고, 무엇이 다를까.


 내가 매일 느끼는 가장 큰 권태의 일면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실패감이다. ‘오늘은 일찍 자야지’, ‘작업부터 해놔야지’, ‘야식 먹지 말아야지’, … 매일 다짐하고 매일 실패한다. 일어나면 씻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작업을 하고, 책을 읽고, 출퇴근을 하고, 애인과 통화하고, 오늘의 실패감을 곱씹고, 내일은 갓생 살기를 다짐하는 일이 매일 반복된다. 이렇게 일과를 뭉뚱그리니 매일이 똑같아 보인다.


 그러니까 하루를 뭉뚱그리지 않아야 매일 다름을 느낄 수 있다. 매일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디테일.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더듬어보자. 잠에서 깰 때, 내가 꾸던 꿈이 기억이 나는지 안 나는지, 창밖 하늘이 푸르른지 비가 오는지, 충분하게 숙면을 취했는지 아닌지 같은 원인에 따라 컨디션과 기분이 달라진다. 나는 거의 매일 일어나자마자 의식의 흐름대로 모닝페이지를 작성하는데 단 하루도 똑같은 내용을 적은 적이 없다. 자고 일어난 행위는 똑같지만 그 순간의 나는 매일 아침 다른 이야기 속에 있던 것이다.


 씻을 때 걸리는 시간도 매일 다르다. 누구나 그렇듯이 머리를 감는 날도 있고, 안 감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식사 같은 경우에는, 내 기억에 따르면 점심과 저녁 모두 전날과 동일하게 일치한 날은 거의 없다. 두 끼 중 하나라도 메뉴를 바꾼다. 개인적으로 맛의 권태는 유독 참지 못하기 때문에 국을 추가하든, 계란 프라이를 하든, 김치를 바꾸든, 사소한 변화라도 만들 수밖에 없다. (참고로, 오늘의 점심 메뉴는 참치김치볶음밥이었고, 저녁 메뉴는 크로와상이었다. 어제는 점심에 멸치볶음과 김, 오이소박이, 김치를 함께 먹었고, 저녁에는 카레라이스를 해 먹었다.) 오늘 점심 때는 귀찮아서 설거지를 안 한 점도 어제와 다르다. 매일 목표하는 바도 엇비슷하다. 그래도 달성한 목표의 개수가 매일 다르다. 이 때문에 내가 싫어지는 날도 있고, 좋아지는 날도 있다.


 일상 행위 자체야 반복되지만 우리는 사소한 디테일을 다르게 선택하면서 삶을 조금씩 엮어가고 있다. 매일 독서를 하지만, 매일 다른 책을 읽고, 매일 다른 영향을 받는 것처럼. 매 순간 우리가 하는 작은 선택이 삶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다. 당장은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지 않아 어제 한 선택과 1년 뒤의 선택이 전혀 관련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무수한 선택들이 시간을 타고 흐르면서 서로를 옭아매며 만들어낸 느슨한 연결이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내 작은 선택이 매일을 바꾸고,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씨앗이라는 믿음 없이는 견딜 수 없다…….


 나는 매일 달라진다. 내 삶은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 순간이 미래의 나를 바꾸고 있다. 이런 희망과 믿음 없이 어떻게 매일 겪는 절망을 딛고 움직일 수 있을까. 내가 최근 몇 달 동안 겪어낸 변화를 생각해 봤다. 한방에 큰 변화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생각하면 솔직히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러나 나는 노력했고, 실패해 왔다.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가 바뀌었다. 무엇이.


 최근에 읽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에서 ‘뇌 가소성(neural plasiticity)’이라는 개념을 발견했다. 나에게 봄비처럼 내려온 희망이었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할 때, 뇌를 쓰는 방식에 따라 뇌 구조가 바뀌는 프로세스를 뇌 가소성이라고 한다. 우리 뇌는 우리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신경을 재배치하며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내가 매일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완벽히 믿는다. 약간의 성공과 많은 실패가 내 뇌 구조를 바꾸고, 내 삶을 바꾸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이거 좀 멋진 일이란 생각이 든다. 더 많이 실패해야겠다.



 매일이 붕어빵일 수는 없다.

 매일을 바꿀 수 있다.

 매일은 변화를 직조하는 무수한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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