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주기
지난번에는 아이의 시선의 흐름에 따라 친절하게 지치지 않고 설명해 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이번에는 잘 들어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친절한 양육자가 북 치고 장구치고를 열심히 하다 보면 아이가 어느 순간 수다쟁이가 된다. 그때부터는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언젠가 아이와 어린이 도서관에 놀러 갔었는데, 그곳에서 좋은 선생님 한 분을 뵙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자, “엄마가 잘 놀아줬나 보구나. 말을 참 잘하네.”라고 하시면서 “이제부터는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해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클수록 더 중요해요.”라는 말과 함께.
꽤 오래전 일인데도 그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가슴속에 새겨진 저 문장대로 아이와 대화하는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우연히 정우열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구나 라는 마법의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상 썸네일을 지나친 적이 있다. 영상이 넘쳐나다 보니, 영상을 직접 보는 것은 몇 개 안 되고, 이렇게 가끔씩 잊히지 않는 썸네일들이 있다.
아마 이 영상에서도 타인의 말, 아이의 말에 공감해 주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런 경우에 “그렇구나.”는 마법의 단어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다른 사람이 나에게 털어놓았을 때 듣고 싶은 말은 “그렇구나.”로 시작되는 어떤 문장일 뿐일 때가 많으니까.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서의 일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엄마, 오늘 OOO이 내가 만든 걸 무너뜨렸어.", "OOO이 OOO이 OOO 하는 것을 못하게 했어. 선생님도 OOO한테 지금 반 친구들을 모두 불편하게 하고 있다고 하셨어." 이렇게 속상한 감정을 갑자기 툭 이야기해 줄 때가 많이 있다.
보통 잠들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고요한 밤이 되면 하루 일과 중 마음에 남았던 일이 생각나는지. 이럴 때 대부분 특별한 솔루션을 제시해 주기는 어렵다. 내가 그 상황을 정확히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마냥 아이 편을 들어주기도 그렇고. 친구 입장을 이해하라고 그럴 수도 없으니. 그래서 우선 잘 들어준다. 엄마가 너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고 속상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만 잘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혹은 이런 관점 저런 관점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서 아이가 그 상황을 친구의 시각에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해 보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힘든 상황이 생기면 주변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해 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중에 정말 힘든 일이 생겼을 때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유치원 활동에 대해서는 처음 유치원에 갔을 때는 “재미있는 거, 신나는 거, 알록달록한 거 했어."라는 식으로 신나게 대답해 줬었다. 이것만으로도 좋은 유치원에 간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가 유치원 활동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감자 심기를 하고 나서 “엄마! 감자를 심으면 감자가 난대! 나 오늘 감자 심었다!” 라면서 감자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가끔 오늘 뭐 했냐고 물어보면 비밀이라고 할 때도 있다. 내가 직접적으로 물어볼 때보다는 아이가 먼저 유치원 이야기를 꺼낼 때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 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듯하다. 누가 갑자기 오늘은 아이랑 뭐 했냐고 물으면 멈칫하게 될 것 같다. 생각나는 대로 주절주절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면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지만.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유치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정말 아이에게 심각한 일이 있다면 전달해 줄 곳이라는 확실한 믿음도 있다. 덕분에 앞에서 언급한 아이의 속상한 감정들에 대해 아주 심각하지 않게 담담하게 공감해 주며 들어줄 수가 있다. 아이가 유치원 자체를 매우 좋아하고 자부심도 상당하다. 얼마 전에도 서로 다른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상황에서 “유치원 어때?”라는 질문을 받으니, 다른 애들은 멈칫하는데, 우리 아이가 가장 먼저 ”좋아요! “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한 적이 있다. 아이가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유치원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놀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솔직히 기관에 처음 보냈을 때는 특정 아이가 신경 쓰인 적도 있다. 유치원 활동은 만족스러웠지만, 반 친구 한 명이 우리 아이를 자꾸 괴롭히는 것 같아 걱정이 된 적도 있다. 그런데 유치원에 가고 반년이 넘어가자 그 친구도 우리 아이도 정신적으로 성숙해져서 그런지 그런 부딪힘의 횟수가 줄고, 서로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올해도 같은 반이 되었는데, 일 년 넘게 지켜보니, 다섯 살, 여섯 살 또래 사이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의 투닥거림이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 아이와 그 친구는 “조금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가 “이제 ㅇㅇㅇ이 나 조금 좋대. 나도 조금 좋아. (엄지, 검지 손가락으로 조그만 마름모를 만들면서) ㅇㅇㅇ이랑 조금 좋아하는 사이가 됐어.”라고 말한 것을 그대로 빌려서 표현한 것이다. 그 친구랑 어떻게 놀았는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줄 때도 있다.
때로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말하기도 한다. “엄마, ㅇㅇㅇ은 팔이 까졌대. 나는 발을 다쳤는데. 그래서 서로 다친 데를 보여줬어. “라고 말하길래 “친구가 넘어졌나 보네. 아팠겠다!”라고 하니, ”아니야! 그 정도는 괜찮대! 나도 괜찮아!” 라면서 서로 상처 공유를 한 경험을 말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릴 때 점이 여기저기 있다고 공유라를 한 기억이 났다.
여섯 살 아들이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도 참 고마운 일이다. 엄마가 대화 상대로서 편안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앞으로도 잘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