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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의 엄마 Apr 03. 2023

친절한 양육자 (1)

아이의 손가락과 눈빛이 향하는 곳을 함께 해주는 것

영유아기 시기에는 친절한 양육자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면 여러가지로 좋다. 코로나 덕분에 아이와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가슴 속 깊이 느꼈다. 이 부분 때문에라도 지독하게 힘들었던 코로나 육아가 후회가 없다. 매 순간 아이의 욕구를 가장 빠르게 알아차리고 반응해 줄 수 있었던 시간들 때문에.


아이와 함께 있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많이 안아주게 되는데, 이 때 아이가 “우우우” 라는 옹알이를 하면서 이것 저것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두리번 두리번 거리거나, 무언가를 빤히 바라볼 때도 있다. 그 시선을 함께 해주고 계속 반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친절한 양육자라고 생각한다.


친절한 양육자가 갖추어야 하는 능력은 매우 간단하다. 많은 시간 아이에게 시선을 주고, 언제나 충분한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된다. 대부분의 친절한 양육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선이 아이에게 향하게 되어 있고, 아이의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가게 되어 있다. 아이의 시선,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아이가 향하는 곳. 그 곳에 아이가 궁금해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아이가 끊임없이 보내는 신호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는 것과 아닌 것은 작지만,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왕 육아를 열심히 하기로 결정했다면 '아이의 시선과 손가락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이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를 항상 생각하면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함께 바라봐 주면 좋다.


아이의 시선과 손가락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이가 누워만 있는 시기부터 아이의 시선은 계속 움직인다. 조금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것 저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엄마가 아이를 안아주고 있을 때 아이는 엄마 네비게이션이 되어 이 쪽 저 쪽으로 유도한다. 새로운 사람을 빤히 쳐다보기도 하고, 궁금하거나 관심이 가는 사물이 보이면 계속 손가락을 가리킨다.


나는 항상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뭐가 궁금한 것일까?‘ 라는 관점에서 끊임없이 생각을 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수준에서 아이가 궁금해하는 세상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줬다. 어른 입장에서 조금 재미 없고, 자꾸 반복하게 될지라도. 계속 같은 설명은 지루하니까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주게 되기도 하고. 대부분의 엄마는 이러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조금 더 부지런히 하고, 누군가는 조금 느슨하게 할 뿐. 개인적으로는 영유아기에 함께해주기로 결정 했다면, 아이의 의식의 흐름에 대해 좀 더 예민하게 살피고, 반응해 주면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아이의 탐색 과정을 중간에 끊기 보다는.


아이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스스로 탐색하기 위해 이 곳 저 곳으로 가기 시작한다. 이 때는 아이가 기어서 가는 곳, 아이가 뛰어 가는 곳이 어디인지 잘 보고 안전한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면 참 좋다. 개인적으로 만 1-2세 때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보다 친절한 양육자가 키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독립된 개체인 우리 아이가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관심있어 하는 것에 지속적으로 반응해 주는 것은 기관에서는 쉽지 않을테니.


이러다 보면 위험한 순간도 많이 발생한다. 위험한 순간에 지나치게 소리를 질러서 아이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돌이켜보면 모두 스스로 발달하기 위해 하는 행동인데, 좀 더 관대하게 너그럽게 대처할껄이라는 후회도 든다. 내가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 소리를 더 친 것 같아서. 나는 꽤나 너그러운 엄마였는데도 말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공간 자체를 안전하게 만들어 놓고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고 차츰 집안은 아이가 놀기 안전한 공간으로 바꿔 나가게 된다. 아이를 처음 키워보는 엄마, 아빠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다가 아이가 큰 일 날 뻔한 경험을 수 차례 하면서 ’우리 집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은 공간이었으면...아이가 좀 더 안전하게 놀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바꿔 나간다. 그래도 끝없이 확장되는 아이의 탐색 영역과 솟구치는 탐색 욕구로 매일 ‘이렇게까지!‘, ‘헉!’ 소리나는 일이 매일 발생한다. 이것은 아이를 키우는 중에 모두가 겪는 일일텐데, 이 상황들을 놀이화하거나, 반복적인 친절한 설명으로 넘기면 참 좋다. 인간이기 때문에 매 순간 이렇게 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영유아기를 함께 해주면 아이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운동 능력, 지적 능력, 어휘 능력 등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관심 있어 하는 것을 찾아서 우다다다 여기저기를 충분히 걸어다니고, 달려다니면, 더 잘 걷고, 더 잘 달리게 된다. 관심 있어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계속해서 듣다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아이도 언어적으로 인지하는 시기가 조금 더 빨리 찾아온다.


꼭 이렇게 해주지 않아도 아이는 꿋꿋이 성장한다. 내가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을 옆에서 누군가 봤다면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사실 밤에도 아이가 나가고 싶어하면 데리고 나가서 밤풍경을 함께 했고, 아이가 주차장에 꽂혔을 때는 틈만 나면 주차장에 가서 주차장에 있는 이런 저런 시설과 수많은 자동차를 함께 살펴 봤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코로나 시기에 몇 달씩 아이와 단 둘이 집과 그 근처 공간에서만 보낸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런 내가 친절한 양육자로서 직무 유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는 코로나 육아가 아니니, 나보다는 덜 열심히 하셔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좀 더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찌됐건 아이가 보내는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보내는 다양한 시그널을 바로바로 알아차리고 반응을 해주면 조금 더 단단하게 성장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제는 코로나 시대가 아니니까 전보다는 아이에게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지만, 영유아기 아이 앞에서는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많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이에게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방치라고 볼 수 있다. 양육자가 미디어에 매여 있으면서 아이에게 스마트폰이나 TV를 보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나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아이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보내다 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순간이 올 때는 나도 스마트폰을 켜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화장실 한 번 가기도 어려운 것이 영아기 아이를 돌보는 양육자의 삶이니까. (나의 경우에는 만 3세 반 정도 됐을 때 회장실을 혼자 갈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이런 경우, 아이는 징징댔고, 나는 이 잠깐도 안되냐고 엄마 입장에서의 답답함을 아이에게 호소한 적도 있다. 난 꽤나 열심히 좋은 엄마가 지켜야 할 규칙을 지킨 편이지만, 이런 나도 이 정도의 일탈은 있었다.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지는 말되, 최선을 다하면 후회는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적당히 하자로 가훈을 해야겠다고 적었던 글과는 상반된 이야기이지만...)




친절한 양육자가 꼭 엄마일 필요는 없다. 꾸준히 긴 시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대해 줄 수 있으면 된다. 나는 그 역할을 내가 직접 하는 것으로 택한 것이고, 스스로 너무 많은 것을 느꼈다. 지금도 나보다 진심을 다해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반응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금전적인 보상도 없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같은 육아라는 지루한 과정이지만.


이 과정에서 나도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해진 적도 많다. 육아가 너무 고달파서 순간적으로는 아이한테 감정적인 화를 낸 적도 있지만, 그 누구도 나를 대체할 수는 없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것은 뭐든지 잘 하고 싶어하는 나의 피곤한 성격 탓도 있다. 아이를 낳은 이상 엄마라는 자리를 내려 놓을 수는 없는데, 그렇다면 잘 하고 싶었다. 다른 것은 잠시 쉬어도 회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살면서 해본 것 중에 육아가 제일 힘들었는데, 이 힘든 것을 남에게 맡기면 대충 하겠구나 싶기도 했고. 주변에서 그렇게 대충 해도 아이는 다 잘 큰다고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요즘은 육아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그런지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하고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하니까 힘든 것인데, 그럴 필요는 없다며, 그냥 많이 사랑해 주면 된다고 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영유아기 아이들은 누군가의 관심이 하루종일 필요하다 보니, 사랑하는 감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순간이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나의 경우에는 코로나 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몇 달 씩 아이와 단 둘이 집에서만 보내야 하는 시간도 많았기 때문에. 이 코로나 시기에 아이를 키운 모든 부모들에게 그렇게 힘들게 키울 필요 없다는 말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코로나가 육아 난이도를 최상으로 올렸고, 부모들은 그 상황에 나름대로 대처를 한 것일 뿐이다.


코로나가 이제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고, 그 사이 아이도 나도 많이 성장했다. 아이가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이제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 들었고, 함께 있을 때도 모든 순간을 아이에게 집중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사랑하는 마음,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만 함께 하게 되더라도 아이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자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시기가 오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또 다른 일들이 펼쳐질테니, 이 말도 자신있게 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내 생각에는 아이를 믿어주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가 않으니까 역설적으로 이것을 강조하면서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 정성을 다해 키웠으니, 앞으로는 조금씩 아니 많이 내려놓으면서 믿어주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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