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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의 엄마 Aug 24. 2023

거절이 어려운 사람의 아이 키우기

한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한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문득문득 그 책이 생각날 때가 있다. 내가 남에게 라는 NO라는 말을, 좀 더 넓은 범주에서는 부정적인 말을 가장 자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까지 난 극도로 NO라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대학생이 되고, 일을 하면서 점점 더 조금은 No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때로는 화도 낼 줄 알고. 하지만 평균적인 사람들에 비하면 '착한 사람 증후군'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육아를 해보니 정말 자주 부정적인 말을 해야 했다. 이렇게 자주 남에게 부정적인 말을 해야 하다니... 내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사람이라니... 괴로운 날의 연속이었다. 옆에서 보면 나는 육아를 굉장히 잘 해내는 사람 같아 보인다. 그런데 나도 너무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나의 삐뚤어진 이 마음은 "둘째는 절대 없다."는 쪽으로 풀려서 누가 나한테 이런 질문이나 제안을 하면 화가 났던 적도 있다. 이제는 나름대로 내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내 시간을 가지고, 소일거리도 하고 그러면서 나의 육아 노여움이 좀 풀렸는지 그런 말을 웃어넘길 여유는 생겼다. 사실 지금이 너무 좋다. 하루종일 아이와 몇 년을 지내면서 꾹꾹 누르면서 참아온 시간이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다 키우는 애기 뭐가 그리 힘들다고 그러냐고 누구는 말하겠지만, 굉장히 제약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키워서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이런 마음을 먹었다고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같이 제약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키운 사람들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아니 그냥 지나가 주기를 바란다. 이해해 주지 않아도 된다.




미묘하게 아이들마다 변화하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 뭔가가 잘 안 되다가 어느 순간 계단식 성장을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몇 백번을 이야기해도 안 되던 것들이 갑자기 변하는 날이 있다. 갑자기 이 닦자고 하면 이 닦고, 약 먹자고 하면 약 먹고. 애를 키우면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 하나하나가 힘겨울 때가 정말 많다. (난 그래서 아이랑 놀이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그 시간만큼은 서로 행복할 수 있었으니까. 백 번쯤 반복되는 놀이의 지루함만 참으면 되니까. 이건 나름 잘하는 편이다.)


사실 나름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는 편인 내가, 부정적인 말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내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매일 컨트롤하기 어려운 상대에게 컨트롤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같은 말을 여러 번 평정심을 유지한 채 해야 하고, 아이에게 지금도 매일 잔소리를 해야 한다. "TV 뒤에서 보자.", "손 입에 넣는 거 아니야. (마스크 해제 이후 그 동안 못했던 손 입에 넣기를 다 하는 느낌이다. 여섯 살이 된 지금 와서..)“ 백 번까지는 그냥 말하다가, 백 번에 한 번쯤은 "수백 번을 말해도 안 고쳐진다."는 잔소리를 얹어서 말한다. 같은 잔소리를 만 번쯤 하는 날이 되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는 것도 알지만. 잔소리로 고쳐진 건지, 그냥 시간이 흘러서 해결된 건지 모르게 알아서 아이가 내가 말했던 대로 행동하는 날이 오긴 온다.


아이가 많이 어릴 때는 안 된다는 말을 자제하는 편인 엄마였다. 이 전 글에도 어린아이에게는 안 된다는 말을 최대한 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시간을 주는 것이 맞았던 것 같다는 글을 쓴 적도 있다. (부정적인 말을 자제한다고 해서 아이의 행동이 거슬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참는 것일뿐. 결국은 위험한 행동, 오징어같이 흐느적 대는 행동 등에 참다 참다가 화도 냈었기도 하고.)


잔소리 무용론자이지만, 그렇다고 잔소리를 안 할 수는 없다. 세 돌 전에는 모르고 했을지라도 이제 여섯 살이니까 이 정도의 행동은 고치기도 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육아하는 사람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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