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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의 엄마 Mar 16. 2023

후회 없는 육아 (feat. 코로나)

'코로나 때문에'를 '코로나 덕분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사람들은 내가 아이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열심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보지만, 나도 이렇게 길게 아이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 못했었다.


나도 돌이 조금 지났을 때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했었다. 어린이집 입소 관련 상담을 받을 즈음 코로나가 터졌다. 그즈음에는 공포 분위기가 심각했고, 이 작은 아이가 그 병에 걸리는 것은 정말 안 될 것 같았다. 그때까지 작은 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란 아기였어서 더더욱 그랬다. 어쩌면 건강 체질이라서 기관에 갔어도 안 걸렸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나와 우리 아이는 결국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유치원을 보내기 시작한 작년부터는 이제는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사실 유치원에 처음 보내기 직전에도 고민이 많았다. 세 돌 전후에 이런저런 자극에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아이였기 때문에 코로나 검사를 자주 할 각오를 하면서 유치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이 되었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아이가 굳이 감내할 필요가 없는 외부 자극을 요구해야 하나 싶었다. 나도 우리 아이처럼 어렸을 때 이런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조심하면서 지냈기 때문에 막상 아이를 사회에 내보내려고 하니 이런저런 고민이 됐다. 하지만 세 돌이 지나면서 친구도 만나면 좋을 것 같고,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엄마와 떨어져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지내보는 경험도 하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에 며칠을 고민하다가 보내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일주일에 두 번씩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다. 의심 증상이 없는 아이를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자가 검사를 하는 것은 실제로 부담이 되기는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지나갔다. 항상 "의사 선생님! 검사 좀 해 주세요!"로 시작됐다. 아이가 의사 선생님 역할을 맡고, 엄마, 아빠를 검사해 주는 역할 놀이를 하면서 검사를 했기 때문에 집에서 하는 검사는 크게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가 검사는 검사소에서 검사할 때보다는 수위 조절도 가능하기는 했으니까. 아이가 걸리면 나도 걸릴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나는 매우 깊게 넣어서 검사를 했고, 아이 스스로 살짝 넣었다 뺀 면봉을 내가 조금 더 깊게 넣어서 빼는 정도만 해서 검사하는 방식으로 넘어갔다. 속으로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서 검사소에서 검사받는 일만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주변에서 들어도 그 검사를 하고 나면 검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서 면봉으로 검사하는 것에 대해 더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긴 가정 보육의 가장 큰 핑계는 '코로나'였지만, '코로나'가 터졌을 즈음 약 3개월 정도 단 하루도 문 밖을 나가지 않고 아이와 집에서 보내고, 완연한 봄이 찾아오고, 코로나 위기감이 조금 수그러들었을 때 아이와 집 주변 공원 등을 산책하기 시작하면서 어릴 때는 왜 엄마가 키우면 좋은지에 대해서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육아서를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간혹 접하게 되는 명제 문장 중 하나가 세 돌까지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이다. 막연히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아주 깊은 깨달음이 나에게 찾아왔다. 코로나로 아주 농도가 진한 가정 보육을 몇 달 하고 나니, 코로나가 웬만큼 잠잠해지지 않으면 가정보육을 그만두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참 많고, 아이도 그만큼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물론 그 과정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서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시간 들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지만,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돌이 좀 지난 아기에게는 엄마의 손길이 계속 필요하다. 행복한 엄마가 아이를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이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엄마라는 사실 자체게 크게 만족하면서 매우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엄마도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을 이렇게 성스러운 생각으로 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힘들지만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노력하면 아이가 나에게 행복을 주는 방식으로 나와 우리 아이의 행복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 갔다. 아이랑 열심히 놀아주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고, 많은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놀고, 아이가 원하는 이런저런 활동들을 마음껏 하게 해 주느라 힘들기도 하지만, 이래야 아이도 나도 행복할 수 있었다. 이래야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엄마가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아이가 징징댄다. 그러면 나는 더 힘들어진다. 나는 아이가 징징대는 그 순간들이 나를 더 괴롭게 했기 때문에 그것을 줄이기 위해 '잘 놀아주는 엄마'가 되는 쪽을 택했다. 다행히 나는 그쪽으로 매우 재능이 있었다. 아이는 나랑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 주었다. 객관적으로도 아이랑 잘 놀아주는 편이라 아이는 항상 나를 바로 옆에 두려고 했다. 엄마랑 계속 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 둘 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이미 몇 천권의 책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다. 두 돌 조금 전부터 타기 시작한 밸런스 바이크 덕분에 단단한 아이로 성장했다. 공원에서 아이가 놀고 싶어 하는 만큼 마음껏 뛰어놀았다. 아이와 함께 놀기 좋은 곳에 많이 놀러 다녔다. 구강기가 끝난 시점부터 일 년 정도는 거의 매일 물놀이, 설탕 놀이, 거품 놀이, 물감 놀이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이가 지나가는 버스 구경을 좋아하면 버스 정류장에 멈춰 서서 한 시간씩 버스 구경 하면서 버스 번호 읽기 놀이를 했고, 주유소 세차장 구경을 좋아했을 때는 세차장 앞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코로나 때문에'로 시작된 가정보육이 '코로나 덕분에' 아이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매일 줄 수 있었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매우 압축적으로 다 준 느낌이 들 정도로 후회 없는 육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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