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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한지 17년, 말할 수 없는 비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by 온정 Jan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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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월 10일에 개봉한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오늘이 개봉한지 딱 17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17년 만에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하여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명작으로 회자되는 이 작품을 나는 이제야 보게 되었다. 오래전에 잠깐 본 적은 있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라 시청 중 중도 포기를 했었다. 그러다 올해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보기로 결심하였고,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본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예전과 달랐다. 평소 가지고 있던 대만 로맨스 영화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걸작이었다. 지금까지 본 대만 로맨스 영화 대부분이 말랑하고 달콤한 청춘의 사랑 이야기였다면,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그렇지 않았다.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비밀이 많은 복잡 미묘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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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비밀스러운 여자 '샤오위'와 예술 학교로 전학 온 피아노 천재 '상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상륜은 옛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치는 샤오위에게 첫눈에 반하고, 이후 둘은 부쩍 가까워지며 서로를 향한 마음이 같아진다. 


 영화 전반부는 샤오위와 상륜 사이에 오고 가는 사랑의 기류가 주를 이룬다. 여느 학생들처럼 풋풋한 설렘이 느껴지는 청춘물 그 자체였다. 다른 청춘 로맨스 영화와 비슷하게 전개되는 모습을 보고 가벼운 로맨스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합쳐진 작품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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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어진 후반부에서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된다. 졸업식 날 강당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던 상륜은 몇 달 동안 자취를 감춘 샤오위를 발견한다. 연주 도중 뛰쳐나간 상륜은 샤오위에게 교실에서 기다라고 말한다. 뒤이어 교실로 간 상륜은 샤오위가 없자 교실에 있던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축제 때 자신과 춤을 춘 여자애(샤오위)가 어디 있는지. 그러자 친구들은 축제 때 상륜은 혼자 춤을 췄다고 말하며 샤오위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전개는 달라지고 말할 수 없던 비밀들이 속속들이 나온다. 


 사실 샤오위는 과거에서 온 인물이었다. 우연히 '시크릿'이라는 악보를 발견하고, 이를 피아노로 연주하여 20년 후 미래이자 현재로 넘어온 것이다. 그 악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음표를 따라 여행을 떠나시오. 처음 본 사람이 당신의 운명이리니. 여행을 마치고 나면 빠른 건반을 타고 돌아와야 하리라.] 


 샤오위가 처음 시간 여행을 했을 때 처음 눈을 마주친 사람이 상륜이었다. 그와 운명이라 믿은 샤오위는 미래로 올 때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상륜이길 바라며 음악실에서 교실까지 발걸음 수를 잰다. 그렇게 상륜에겐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갖은 채 그와 사랑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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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음악실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며 샤오위를 기다리던 상륜은 실수로 청의와 키스를 하고, 그 모습을 샤오위가 보고 만다. 충격을 받은 샤오위는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로 돌아가 선생님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털어놓지만, 선생님은 그녀가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라고 여긴다.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 한 샤오위는 선생님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같은 반 반장에게 샤오위을 잘 보살펴 달라며 그녀의 비밀을 말하게 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샤오위는 우울감에 빠져 학교에 가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엄마마저 자신을 믿지 않고 아픈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깊은 실의에 빠진 샤오위는 집으로 찾아온 선생님에 의해 졸업식에 가게 되지만 여전히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느낀다. 그렇게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여 미래로 온 샤오위는 졸업식 날 상륜을 만나게 되는데, 상륜의 팔에 끼고 있는 팔찌가 청의 것이라는 걸 알고 과거로 돌아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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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충격에 빠진 샤오위는 교실 책상에 상륜에게 짧은 몇 마디를 남긴 채 쓰러지고 만다. 천식이 있던 샤오위였기에 호흡곤란이 와 쓰러진 것은 곧 죽음을 암시하는 부분이었다. 이윽고 상륜은 과거에서 왔다는 샤오위의 비밀과 샤오위가 비밀을 털어놓았던 선생님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상륜은 과거로 가기 위해 곧 철거될 음악실로 달려가 무너져 내리는 건물 속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다. 그렇게 과거로 가 샤오위와 만나고, 두 사람이 함께 졸업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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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열린 결말'이라는 것이다. 언뜻 보면 단순히 두 사람이 만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비밀스러운 부분들이 많다. 결말에 정답이 없는 영화이기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결말을 해석했다. 단지 감독이자 주연 배우였던 주걸륜이 '해피엔딩'이라고 말한 것만이 정답일 뿐이다.

 

 결말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이 있는 가운데, 나는 결국 두 사람이 과거에 머물러 계속 사랑을 이어나가는 결말을 생각했다. 과거에서 상륜과 샤오위가 만났을 때 샤오위의 표정은 상륜을 처음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는 샤오위가 미래로 넘어왔던 시점보다 더 이전의 시점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시크릿 악보의 존재를 모르던 때이기에 샤오위가 미래로 간 적도, 그때 있었던 일들도 다 없는 셈이다. 모든 관계가 리셋된 채 새로운 샤오위와 상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졸업사진 속 상륜이 머리를 짧게 자른 것으로 보아 상륜은 과거에서 계속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래이자 현재에 있는 피아노도 건물을 철거하면서 부서졌기에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없어진 것이고, 시크릿 악보의 비밀과 법칙도 모두 의미가 사라지면서 상륜은 과거에 계속 머물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의문점이 들 수 있다.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연주하고 있던 상륜은 정말 살아서 과거로 돌아간 게 맞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피아노 음 하나를 남겨두고 상륜의 손에서 피 한 방울이 건반 위에 떨어졌다. 그 건반은 아직 치지 못한 피아노 음 하나였다. 덕분에 연주를 완주할 수 있었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긴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연주였기에 샤오위가 연주했던 것보다 더 빠른 템포로 연주를 할 수 있었고, 그만큼 더 오래전 과거로 갈 수 있었다고 본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의문점들은 많다. 어떻게 졸업사진에 상륜이 찍혔는지, 샤오위 외 다른 사람들도 상륜을 볼 수 있는 것인지 등 질문을 던지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나는 미래이자 현재에 있는 피아노와 시크릿 악보의 법칙이 함께 사라지면서 모든 판타지가 없어진 평범한 과거가 새롭게 시작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련하고 씁쓸한 영화 분위기와 달리 결말은 '해피엔딩'일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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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영화를 보면서 단순한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이 아닌 진심으로 나를 믿어주는 사람의 가치를 느꼈다. 과거의 샤오위가 무너져 내린 결정적인 계기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 친구들, 심지어 부모님(어머니)까지 샤오위가 망상에 빠진, 정신병을 앓는 사람으로 볼 뿐이었다. 이때 누군가 한 명이라도 샤오위의 말을 믿어줬다면 결말은 달라졌을 것이다. 샤오위가 상륜에게 기댔던 이유도 상륜만이 비밀스러운 그녀를 온전히 믿고 받아줬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마지막에 샤오위가 웃으며 졸업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상륜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 아트인사이트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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