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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들에게, 그때 우리가 조아한

이곳에는 그 시절 우리들의 추억이 담겨 있다.

by 온정 Feb 22. 2025


2000년대 초를 강타한 문화가 있다. 활자로 모든 것을 표현한 '인터넷 소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 시절 학생이었다면 이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밤에 잠들기 전 MP3로 인터넷 소설을 보곤 하였다. 오글거리는 내용과 대사가 대부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엄청난 몰입감으로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당시 가장 친했던 단짝 친구도 이를 참 좋아했다. 나와 놀 때면 항상 자신이 본 인터넷 소설의 내용과 결말을 들려주었다. 귀로 들은 인터넷 소설만 해도 여러 편이 될 것이다. 이에 푹 빠진 친구는 나와 함께 공책 한 권을 주고받으며 우리만의 소설을 썼다. 결국 완결은 못 냈지만 그만큼 인터넷 소설은 그 시절 추억을 담고 있다.

 

유행은 평생 가지 않듯이, 인터넷 소설 역시 시간이 흐르며 점차 사라져 갔다. 대신 현재는 웹소설과 웹툰이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웹툰을 좋아하는 독자가 되었다. 지금도 어린 시절처럼 밤에 잠들기 전에 웹툰을 보고 잠든다. 나는 각 요일마다 챙겨 보는 웹툰이 여러 편이 될 정도로 열심히 보는 독자이다. 일상, 액션, 코믹, 로맨스 판타지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고루 보고 있다. 그중 요 근래 내 마음에 쏙 들어온 웹툰이 있다. 작년 12월에 완결이 난 작품이만 여전히 나의 인생 웹툰 중 하나이다. 그 이름은 '그때 우리가 조아한'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때 그 시절로 보내주는 '인소의 법칙'


이 작품은 인터넷 소설이 성행하던 시절의 고증을 고스란히 담았다. 인터넷 소설 특유의 전개와 인물 묘사, 대사 등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작품은 인터넷 소설의 단골 주제였던 학교 짱과 평범한 여고생의 만남,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우정을 그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설은 여자 주인공 '최아란'이 '조아한'이라는 필명으로 학창 시절에 쓴 인터넷 소설이다. 어른이 된 그녀는 소설가이자 출판사 대표로 성공을 이룬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이 쓴 소설 속 세계인 '천양시'로 가게 된다. 이곳에서 그녀는 평범한 여고생 '조아한'이 되며 소설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세계는 인소의 법칙, 클리셰가 일어나는 곳이다. 인물들의 이름부터 인소 재질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영원한 라이벌 관계 상고와 공고, 까칠한 매력이 있는 상고 짱 흑발의 남자 주인공 '강휘영'과 부드러운 매력이 있는 공고 짱 갈발(갈색머리)의 서브 남자 주인공 '천은재'가 있다. 이 둘은 한 여고생을 좋아하며 삼각관계 구도를 이룬다. 그리고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싸움을 일으킨다. 여자 주인공은 까칠한 남자 주인공을 선택하고, 그런 그녀를 서브 남자 주인공은 계속 좋아한다. 이러한 인물 구도는 우리들을 남주파와 서브 남주파로 나뉘게 만들었다. 그 시절 나는 대부분 남주파였다.   


인터넷 소설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인물들의 표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이다. 대사 끝마다 -_-, -_-^, >3< 같은 이모티콘이 들어갔다. 이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표정 변화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확실히 웹툰 속에서 이 표정들을 살리니 인소 세계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그 시절 나도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을 때 이런 이모티콘을 사용했었다.


또한 우리들의 항마력을 테스트하게 만드는 대사도 놓칠 수 없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친구가 된 여자 주인공을 '마누라'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그리고 '너 때문에 내 심장 XX 됐잖아', '너 안 좋아하는 거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너 책임져줘?' 같은 오글거리는 말을 아무렇지 한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이지만 이것이 인터넷 소설을 보는 하나의 재미였다.


이 외 인터넷 소설에 꼭 등장하는 NPC 같은 인물들이 있다. 소설 속 주요 인물이 아닌 엑스트라 같은 존재를 말한다. 예를 들어, 잘생긴 남자 주인공을 보고 놀라서 수군덕거리는 여고생 1, 2나 남자 주인공에게 갑자기 시비를 거는 행인 1, 2 같은 것이다. 나름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나'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으로 보면, 이 작품은 그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웹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이 작품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녀가 학창 시절에 인터넷 소설을 쓴 이유는 그 시절이 암울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그녀의 마음속은 남부러울 것 없는 멋진 겉모습과 달리 유년 시절의 상처로 가득했다. 그 시절 그녀의 남동생은 사고로 떠나고 부모님은 이혼을 하신다. 학교생활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힘겨운 시기를 보낸다.


그 시기를 버티게 해준 건 다름 아닌 '인터넷 소설'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 후 그 소설이 그녀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문학의 가치를 훼손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부정적인 시선에 그녀는 자신이 조아한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간다. 조아한은 인생의 흑역사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차곡차곡 쌓인 상처들은 그녀를 천양시로 보낸 것이다. 이는 힘든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자신이 만든 세계였던 것이다. 그 세계에는 자신이 좋아하고 바랐던 모든 것들이 투영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깊은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사실 과거의 자신을 가장 미워했던 사람은 그녀 자신이었다. 타인의 비난은 그때일 뿐,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 과거의 모습을 스스로 비난해 왔다. 과거와 지금의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간주하며 과거의 자신을 부정했다. 천양시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 그녀는 진정으로 과거의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나'였다. 조아한 덕분에 이루게 된 것들이 많았다. 과거 속 조아한이 있었기에 지금의 최아란이 있게 된 것이다. 비로소 그녀는 온전한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된다.


살다가 불행한 날이 오면 언제든 우리를 찾아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시즌2, 70화)


※ 이미지 출처 : 카카오웹툰








※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 아트인사이트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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