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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Apr 16. 2024

임꺽정 숨어 살던 감악산

자녀와 함께 하는 100대 명산 놀이

코스 난이도 - ★★☆☆☆

주차장 - 가능 (감악산 출렁다리 주차)

입장료 - 1일 주차 2,000원

에어건 - 입구 O

근처 식사 - 주차장 입구에 다수 식당 있음. 정상 - 라면, 막걸리, 아이스크림 판매

코스 - 출렁다리 주차장 - 법륜사 - 약수터 - 정상 - 까치봉 - 만남의 광장 - 원점회귀

거리 - 왕복 8km , 3시간 30분 (휴식 30분 포함)

특징 - 경치가 좋은 임꺽정으로 오르고, 경사도가 높은 까치봉은 하산길로


좌측으로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달리는 자유로(自由路)는 언제고 참 시원하다. 주말에도 차량흐름이 적은 탓이다. 모처럼 속도감을 느껴본다. 봄을 알리는 분홍 빛 꽃들이 수놓은 도로를 달려 파주에 진입한다. 망향의 아쉬움으로 가득한 통일전망대는 노란색, 분홍색의 화려한 봄의 채색에 둘러 쌓여 있다.


겨울이 긴 경기도 파주는 늦은 4월이 되어서야 봄의 한가운데에 들어간다. 그래서일까? 꽃잎이 날리는 늦은 봄이 되면 파주가 생각난다. 빛이 좋은 4월 초 파주 감악산을 올랐다. 짧은 봄을 조금이나마 길게 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감악산 출렁다리

산행의 시작은 법륜사다. 계곡을 오르는 코스와 능선을 걷는 코스가 있다. 최단시간 오르는 코스는 등산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재미도 함께 줄어든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능선을 둘러 걷는다. 주차 공간이 많은 출렁다리 주차장을 이용할 경우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자녀가 있다면 등산 시작과 함께 걷는 것에 흥미를 잃을 수 있다. 감악산 주차장을 피해 출렁다리 밑으로 차를 몬다. 인파가 적은 곳에서 등산을 시작할 수 있는 들머리다. 출렁거리는 다리를 지나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관절에 무리한 중력을 줄 필요도 없다.


주차장 주소: 경기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산 43-8

 


걷기만 해도 즐거운 길이구나


노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벼운 첫걸음을 뗀다. 법륜사 이정표를 따라 1분 정도를 걸어 입산한다. 산에서 흐르는 물소리의 청량함과 조잘조잘 떠는 산 새들의 조화가 마음을 쉬게 만든다. 침대의 폭신한 감촉과 영상, 게임에서 얻는 도파민을 포기하는 것은 아빠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주말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귀찮고, 성가시다. 쉬고 싶은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꽤 힘들 때가 있다.


나오길 잘했다. 역시 밖으로 나오면 좋다. 아이뿐만이 아니다. 정작 신나는 건 아빠다. 5학년이 된 아이의 손이 몰라보게 두터워졌다. 저 작고 보드라운 손이 아빠를 따라잡으려고 한다. 아빠의 오른손과 아이의 왼손을 합쳐 앞 뒤로 크게 휘젓고 함께 걷는다. 보폭을 맞추려는 아이에게 일부러 왼발을 두 번 내딛는다. 걷기만 해도 즐겁구나.


감악산은 양주와 파주, 연천군의 광활한 평야에 솟아있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감의 색을 띤다고 하여 감악산이라고 불린다. 넓은 평야인 이곳은 신라시대부터 크고 작은 전쟁이 많았다. 조선 명종 때는 임꺽정이 관군을 피해 숨어 있었던 곳이다. 한국전쟁에서는 반드시 차지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기도 했다. 치열한 전쟁지였던 이곳에 영국군  참전비가 있다. 조용하고 차분한 곳이지만, 봄이 가고 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총탄이 오가던 골짜기에서는 더위를 피하려는 인파가 몰리기도 한다.

법륜사 초입

법륜사에서 정상으로 오른 뒤 까치봉으로 내려오는 길을 선택했다. 막상 오르고 보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임꺽정봉이 있는 1코스로 오를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계곡 깊숙이 오르기만 하니 영 재미가 없는 데다 돌이 많은 감악산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거리가 부족했다. 그 와중에도 땅에서 솟아 나는 새싹을 관찰하는 녀석이 고맙다. 밖에 있는 아이들의 오감은 쉽게 자극된다. 어른이 함께 있어주기만 한다면 밖은 그 자체로 아이들의 놀이터다.


꽤 오랜만에 찾은 감악산이다. 돌이 많아 발목에 피로를 남기던 등산로가 친절하게 정비됐다. 그 많던 돌을 어떻게 다 치웠을까 감탄하며 포장도로를 성큼성큼 밟는다. 감악산은 4월이 되고 나서야 기지개를 켠다. 대한민국은 온 세상이 벚꽃에 물들어 있다. 그에 반해 이곳은 아직은 잠잠하다. 늦은 봄 겨우내 얼어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들이 참 신비롭다. 나무와 온 산을 물들이기 시작하는 연두색 빛깔에 마음을 뺏긴다.


법륜사에서 우측으로 가면 임꺽정봉을 통하고, 운계폭포 좌측으로는 능선을 따라 까치봉에 이른다. 모두 아름다운 길이지만, 까치봉에서 정상까지는 난이도가 상당한 오르막이다. 아이와 함께 한다면 상당한 좌절과 고난을 배울 수 있을 테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 길고 넓은 좌절의 값과 지혜가 꼭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더라. 마흔을 넘고 보니 조금은 깨닫게 된다. 옛말이 틀린 것도 있다는 것을.


약수터를 지나는 2코스는 정상으로 최단으로 오르는 코스답게 영 재미가 없다. 돌을 밟고 밟아 오르는 동안 호연지기를 담을 경치 따위를 허락하지 않는다. 무턱대고 오르기만 해야 하니 아이가 유독 힘들어한다. 재미가 덜한 등산로 탓이다. 조금 따분해 보이는 아이를 위해 먼저 휴식을 제안했다. 빼빼로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비쵸비 과자를 꺼내 함께 나누어 먹는다. 돌을 몇 개 주어 형이상학 돌탑을 쌓아보기도 한다. 작은 돌멩이 몇 개를 주워 만든 탑을 보고 낄낄낄 웃으며 동심(童心)을 함께 나눈다.

인파가 몰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빠를 보고 배운 아이는 사람이 많은 걸 불편해한다. 몰상식과 비매너를 싫어하는 아빠를 보고 자란 아이는 정의롭지 못한 일에는 유독 더 발끈이다. 아빠의 까칠함이 아이에게 여과 없이 전해진 것이 내심 미안하다. 스스로에게 옳고 그름이 되는 기준을 만들어가는 아이다. 나의 잣대가 아이에게 관념이 되지 않도록 할 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아이에게 많은 것은 선물한다. 아빠보다는 자연이 더 좋은 코치가 될 테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아빠도 영 힘이 나질 않는다. 사실 아이와 함께 하는 등산은 꽤 힘들다. 우선 걷는 리듬이 깨진다.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는 아이의 호기심을 기다려 주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의 마음과 생각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관망하는 코치가 돼야 하는데, 성격이 급한 나는 이것도 참 힘들다. 한 시간 반이면 다녀올 곳을 세 시간 반에 가야 하는 것도 곤욕이다. 느리게 가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한다. 지금 걷는 이 길과 시간이 아이의 성장을 지탱할 것을 알고 있다. 아이로 하여금 오히려 내가 성숙해질 것을 알고 있다. 함께 걸으며 맞춰가는 보폭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지난한 오르막을 마치고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길이 보인다. 마지막 몇 개의 계단을 밟고 오르니 그렇게 꼭꼭 숨겨두었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깨를 쭉 펴고 정상을 만끽하는 녀석이 제법 멋있다. 정상에 이른 안도감을 얻기 위해 그 지루한 돌길을 걸어 올랐다.


우측에 보이는 임꺽정봉을 뒤로하고 정상이 있는 좌측으로 향한다. 일요일 오후의 산은 참 조용하다.

감악산 정상에는 작은 매대가 있다. 감사하게도 이곳까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온 상인 덕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문다. 외상환영이라는 적힌 상인의 호의 어린 영업전략은 보는 이도 기분이 좋아진다. 조용한 정상을 차지한 까마귀와 서로 알지 못할 대화를 나누고 까치봉으로 향했다. 오를 때와는 다른 조망과 감악산 줄기의 광활함에 힘이 절로 난다. 빠르게 하산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아이는 신이 났다. 빠르게 내려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아빠도 신이 났다.


재미는 덜하고, 수고는 더했던 오늘의 산행은 불청객 미세먼지 마저 함께였다. 기대하고 생각했던 모습의 산행은 아니었다. 감악산 특유의 조망을 보지 못했고 계획한 범주의 경로에서 벗어난 하루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 소중하게 잘 갈무리한다. 불평을 감추는 아이의 배려에 고마웠던 산행이었다. 만남의 장소로 회귀하여 법륜사로 내려왔다. 같은 장소지만 해가 지고 있는 이곳은 또 다른 모습이다. 산과 강, 그리고 하늘에 비친 윤슬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같아 냉큼 받았다.


둘이 함께한 네 번째 산행이었다. 스틱을 제법 편하게 사용하는 녀석은 하산길 내내 슬슬 뒤를 돌아본다. 그 여유가 체력에서 오는 것인지,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쩜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마른땅에 미끄러지는 소리만 들려도 아빠를 돌아본다.


"아빠. 1도 조심. 2도 조심하고요. 3도 조심하세요. 내려갈 때 더 조심해야 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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