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우웅~~~~'
창문을 모두 닫은 집에는 에어컨 소리가 요란합니다. 시끄럽게 울던 매미소리를 대신했어요. 한국의 날씨가 변한 건지 저의 인내심이 변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더위에 쉽게 지치네요. 인공적인 바람이 마냥 좋지도 않지만 습하고 더운 공기는 질색입니다.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 옛날 어린 시절이 신기합니다.
8월 중순을 향해가는데 날씨는 여전히 여름의 가온이에요. 여름이 조금 속도를 내주면 좋을 텐데요. 낮 시간을 넘어서 수면시간까지 에어컨에 기대고 있으니 기관지가 버티질 못합니다. 마스크를 하고 침대에 눕는 저를 보면서 실소가 터져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습니다.
차가 밀리는 출퇴근 시간이 아까워 가능하면 차를 두고 다닙니다. 운전 대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면 출근시간을 내 시간으로 만들 수 있어서요. 타고 내리는 사이에 금세 땀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에어* 을 귀에 꽂고, 노이즈캔슬링을 해 놓으면 소음까지 차단되니 책을 읽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요.
요 며칠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빨간 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시간을 짧지만 지하철은 환승을 해야 해서요. 출근길 강남역으로 가기 위해선 올림픽대로를 이용합니다. 출근 시간에 버스의 운전석 라인은 뜨거운 태양의 기세를 그대로 받습니다. 반면 한쪽 라인은 직사광선이 없어 시원하지요. 매일 같은 버스로 출퇴근을 하는 탑승객들은 당연히 노하우가 있습니다. 출입문 쪽의 좌석이 우선적으로 차게 돼있죠.
요즘 같은 날씨는 아침이라 하더라도 무척 덥습니다. 앱을 보고 시간에 맞춰 나가지만 정류장에 도착하면 이미 땀이 흐르죠. 곧 버스가 도착하고 좌석에 앉습니다. 머리 위에 있는 두 개의 에어컨 중 한 개를 내 방향에 맞게 조정합니다. 더위에 지친 몸이 금세 시원해지죠. 나머지 한 개의 방향도 나에게 맞추고 싶지만, 그건 옆 좌석에 앉을 누군가를 위해 그대로 둡니다. 그 사람도 더울 테니까요.
에어컨 송풍 방향을 다 마치고 나서는 커튼으로 창을 가립니다. 햇빛을 차단할 수 있도록 커다란 버스 창에는 각 두 개의 커튼이 달려있어요.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못하게 두 개의 커튼을 잘 맞춥니다. 이제 다 됐으니 책을 꺼내어 펼칩니다. 요즘의 제 출근 루틴이네요.
그런데 이번 주에만 다투는 장면을 두 번이나 봤습니다. 커튼 때문이었어요.
한 번은 앞에 앉은 사람이 커튼을 자신 쪽으로 확 당겨버리면서 다툼이 시작됐고요. 한 번은 뒤쪽에 앉은 사람의 커튼욕심으로 다툼이 일어났어요. 후자는 서로 말하는 투가 예의가 없다며 버스 안을 시끄럽게 했는데, 전자는 그렇지 않았어요.
2~30대로 보이는 그 여성은 기분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너무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확 당기더라고요. 커튼이 떨어질 정도였어요. 느닷없이 아침 해의 직사광선에 노출된 뒷사람이 깜짝 놀라 유리창과 앞 좌석을 번갈아 쳐다봅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어안이 벙벙했죠. 1,2초 정도 정적이 흐릅니다. 당사자도 놀래고 그걸 보고 있는 주변 사람도 놀랬어요. 근처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 모두가 '이게 뭐지?' 하는 그런 느낌이요. 이성의 흐름이 툭 끊겼습니다. 커튼 당기는 소리가 워낙 날카로웠거든요. 저도 몇 초 순간적인 정적이 지나고 나서야 그 상황이 인식됐습니다. 당사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무례함과 이기심에 화가 나더라고요.
'와 큰 싸움이 나겠구나' 하던 참인데.
뒷좌석에 앉은 분이 손을 들어 커튼을 잡으려다 손을 다시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비틀어 앞 좌석의 겹쳐있는 커튼을 바라봅니다. 그 행동을 두어 번 하더니 그냥 포기하고 해를 온몸으로 맞습니다. 그 모습이 의아해서 계속 지켜봤어요. 앞사람의 행동이 좀 괘씸하기도 했고요. 아침 해가 정말 뜨거웠을 텐데 남성은 결국 그냥 몇 번 팔을 들어 커튼을 당기려다가, 그냥 침묵을 선택합니다.
'저분은 저 뜨거운 햇빛이 괜찮은가?, 덥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뒤에서 살폈어요. 목에 땀방울이 흐릅니다.
며칠 전 같은 상황에서 서로 싸우던 사람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어요.
"너만 뜨겁냐, 커튼을 왜 너한테로 다 당기냐."
"아 모르고 그랬는데, 왜 화를 내냐. 그럴 거면 택시 타고 다녀"
서로 싸우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어요.
뒷좌석에 저를 대입해 봅니다. 저는 무례한 것에 특히 좀 예민한 성향이에요. 저였으면 화가 많이 났을 겁니다. 덥고 화가 나고, 불쾌지수가 높은 건 서로 마찬가지잖아요. 내가 더우면 상대방도 덥고, 직접적으로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은 누구나 싫습니다. 뒷좌석에서 봉변을 당해 40분을 땀을 흘리던 그분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친절이라는 모습이 여러 가지가 있나 봐요. 제가 생각한 것과는 또 다른 모양의 친절을 배웠습니다. 무례한 사람과의 접촉을 아예 피하려고 했던 것인지, 배려나 존중의 의미로 그냥 그 상황을 감내한 것인지. 저로서는 그분의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침묵이 버스의 다른 승객들에게 평온을 준 건 사실이에요. 출근시간의 버스나 지하철의 분위기가 좋을 리는 없잖아요? 다들 예민한 상태일 텐데요.
그분의 마음속에 친절이 가득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현명한 생각도 가득하겠지요. 저렇게 무례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그 잘못을 인정할 리 없습니다. 앞서 다퉜던 사람처럼 그럴 거면 택시 타고 다니라며 비아냥거리고, 같이 화를 낼 확률이 높겠죠. 그분은 침묵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2차적인 다툼이나 불쾌한 일은 모면한 셈입니다. 친절은 나에게도 좋습니다.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저금> -시바타 도요 지음-
더워서 여름이고, 여름이 있어 가을이 기다려집니다. 여름이어서 잘 자라는 곡식과 과일도 있고요. 여름을 즐기는 동물들과 세상을 채우는 자연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 여름을 조금 재촉해 봅니다. 조금만 발걸음을 빨리 해주길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서로가 친절한 하루면 더 좋겠습니다.
사진 출처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