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서예 입문 편
어려서부터 뛰어놀기를 참 좋아했어요. 축구를 좋아하고 운동이라면 모두 좋아하던 장난기 가득한 꼬마였죠. 그런 활달함이 부모님의 눈에는 다소 산만하게 보이셨던 모양입니다. 저의 활달함이 조금은 차분해지길 바라던 부모님의 결정으로 아홉 살이던 저는 처음으로 서예 학원이라는 곳을 방문했어요. 시장 골목의 귀퉁이 2층에 자리한 곳이었습니다.
아홉 살의 어린이가 먹(墨)을 손에 처음 쥐게 되었지요. 또래 친구들은 그 시절에 유행이던 컴퓨터 학원에 간다고 할 때였는데 제게 쥐어진 건 네모난 검정 먹과 기다란 서예 붓이었습니다. 당시 세네 달을 다니다가 그만둔 피아노학원이나 미술학원 같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먹과 붓을 손에 쥐었던 건데, 어린 꼬마는 그 이후로도 8년을 더 먹을 갈았어요. 고등학생이 되어선 시간문제로 더 이상 학원을 다닐 수는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에게 '묵향(墨香)'은 마치 고향의 향수 같은 그리움입니다.
사회의 일원이 되어 나름대로의 작은 기능을 담당하며 돈을 벌고 살고 있어요. 정답이 없어 각자의 답을 찾아가며 무엇이 명답인지 늘 갈구하고 희망합니다. 단순히 먹고사는 것에 몰입하고 집중해야 할 정도의 궁핍한 삶이 아니기에, 생각하고 명상하고 사색해야 할 테지만 막상 현실에선 회사의 업무에 잠식당한 지 오래예요.
먹을 갈고 서예 붓을 잡던 손은 소주잔을 들어 거친 술을 입에 털어 넣고, 어린 나이 공자말씀과 맹자말씀을 외우던 입으로는 삶을 투정합니다. 주관적이라고 하지만 보편적 객관성이 결여되어선 안 되는 사람과의 관계는 갈수록 힘들어요. 술자리와 험담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보지만 몸과 마음에도 콜레스테롤 같은 나쁜 지방만 쌓일 뿐이었습니다.
오늘의 의미를 깨달은 후로는 해야만 하는 것들은 줄이고, 하고 싶은 것들은 늘려 나가고 있어요. 삶과 사회에는 우리에게 사회통념이라는 명목하에 너무 과분한 책임감을 주고 있거든요. 그래서 소위 취미부자라고 할 정도로 많은 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이라는 시간에 충실한다는 핑계로 책임감을 멀리 하지 않도록 객관화에 대한 노력을 간과하진 않아요.
많은 자극과 활동이 반복되는 일상과 하루들이에요. 빠른 시간 속에 must 조동사는 늘 자리합니다. 안정적인 느림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제야 잊혔던 '묵향'을 상기합니다. 마침 먹을 잡고 붓을 잡고 싶다는 갈증을 느낀 참이니, 고민할 필요 없이 사무실 근처 필방을 찾아 문방사우(묵, 벼루, 붓, 종이)를 준비합니다.
대학시절 묵향이 좋아 잠시 붓을 잡았습니다. 작은 전시회도 했지만 4년을 꾸준히 하진 못했어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20년 년 전의 기억일지라도 아련한 흔적이 오른손에 남아 있습니다.
A4 용지 크기의 먹에 물을 붓고 먹을 갈아요. 참 오랜만에 만나는 정겨운 친구입니다. 먹을 쥔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벼루에 마찰을 일으켜요. 몰입할 필요는 없지만 잠시라도 다른 생각을 하자면, 여지없이 먹과 벼루가 부딪힙니다. 짙은 먹물이 책상과 옷에 튀면 먹물을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예전 초등학생 시절 입던 옷마다 먹물 얼룩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 동심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요. 먹을 쥔 오른손에 조금 더 힘을 줘 봅니다.
5분여를 갈고 나자 먹이 갈리면서 점성이 생긴 먹물이 농도와 색을 잡아갑니다. 먹을 너무 갈면 먹물이 뻑뻑해져 붓이 잘 나가지 못해요. 반면에 급한 마음으로 먹을 적당히 갈지 않으면 붓이 움직이는 하얀 화선지 위에 먹물이 번져 글자의 형태를 망칩니다. 서두르다가는 먹을 처음부터 다시 갈아야 하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어요.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20년이라는 시공간을 넘어 오랜만에 먹을 갈았습니다. 적당한 먹물을 만들지는 못했어요. 뻑뻑한 먹물이니 붓이 잘 나가질 못합니다. 오랜 시간이 주는 공백과 어색함을 생각하면 당연해요. 어차피 서예라는 것이 과유불급하지 않고 그저 절차탁마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좋습니다. 묵향은 그대로예요.
줄 긋기를 시작으로 궁체를 배웠습니다. 3년 정도를 지나고서는 행서체를 배웠습니다. 왕희지의 난정서가 교본이었어요. 제 생애 가장 필체가 좋았던 6학년, 중학생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나름대로 서체는 제법 흉내를 냈어요. 오랜 시간 서예를 했으니, 시간이 만들어준 결과였습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행서체로 붓 길을 따라 가보지만, 생각과 오른손이 제각각입니다. 마음이 급해져 잘 되지 않아요.
손에 묻은 먹물이 그 서투름을 대변해요. 괜찮습니다. 이제 다시 천천히 시작하면 됩니다. 묵향은 그대로이고, 화선지에 써 나가는 질감도 여전해요. 짧은 한 시간 정도지만 이때만큼은 느리게 시간을 대합니다.
그렇게 다시 붓을 잡은 지 3년 정도가 지납니다. 10대 소년이었던 과거 저의 글씨체를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먹을 갈고, 붓에 먹물을 먹여 하얀 화선지에 쓰고 싶은 글귀를 적습니다. 어릴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느림과 안정에 대해 깨달아요. 평온합니다. 잠시라도 동(動)을 멀리하고 정(靜)적인 시간의 느림에 집중해요. 언젠가는 마음의 안정을 화선지에 옮길 수도 있을 겁니다.
에나 렘키의 <도파민네이션>에 나오는 일부 내용을 적습니다.
고통 쪽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강하고 길어진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신경 적응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쾌락을 추구할수록 우리의 그램린은 점점 더 커지고 빨라지고 많아지며, 우리는 이와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앞서 선택한 쾌락을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읽는 시대가 저물고 보는 시대가 왔어요. 영상마저도 더 짧고 강한 숏츠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더 강하고 빠른 도파민을 원하고 있는 쾌락시대에서 우리는 도파민과 자기 조절의 균형을 잡아야 해요. 강력하고 빠르게 도달하는 자극은 더 쉽게 도파민을 얻을 수 있을 수는 있겠지만, 도파민의 상실 후에는 더 강한 허탈감 또는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저 역시 도파민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게임, 야구, 러닝, 수영, 등산, 헬스, 자전거 등의 신체적 활동들이 도파민의 중독과 무관하지 않아요. 반면 책을 읽고, 일기를 쓰는 시간으로 상대적인 안정감을 얻습니다. 동중정(動中靜)이죠. 신체뿐만 아니라 감정에도 쉬는 시간은 필요합니다. 일정한 수준의 여백이 필요해요.
벼루와 먹이 만드는 질감이 묵향을 통해 후각으로 전해집니다. 먹물을 머금은 기다란 붓의 끝자락이 화선지에 닿고 일필휘지로 나아가는 질감은 귀로 담아요.
근자에는 주변에서 서예학원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글의 모양과 출력을 기계가 대신한 지 오래지요.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봉투를 건네던 저의 아버지도 이제는 글씨가 출력되어 있는 봉투를 구입하십니다. 필체가 체면을 만들어 주던 때는 지났어요. 배우기도 쉽고 개성을 반영하기에도 용이한 캘라그라피 강좌가 더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학원이 많지 않으니 독학으로 시작하는 것은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의 줄 긋기(획 쓰기)를 통해서 감을 익히고 붓의 무게를 다루는 요령만 익힌다면, 그 이후로는 붓글씨를 이어갈 수 있어요. 주변의 학원이 아니더라도 지차체들에서 운영하는 강좌도 꽤 있으니 잘 찾아보면 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하고 재미없는 초반의 줄 긋기 연습만 잘 이겨내면 돼요.
서예는 어르신들의 고유 영역이 아니에요, 오히려 빠르고 자극적인 사회에 노출되어 있는 많은 사회인들에게 쉼과 여유를 찾아 줄 수 있는 좋은 글예술입니다. 경험을 쌓은 노선배님들이 서예를 즐기는 것이 이해가 돼요. 그들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과 마음을 화선지에 옮겨 보세요.
동중정(動中靜), 정중동(靜中動). 삶에서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습니다.
대문 사진 출처 : pixabay
서예 사진 출처 : 새로가 직접 쓴 반야심경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