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몸과 마음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는 명상. 명상은 왜 이런 극적인 효과를 갖는 걸까? 그 이유를 먼저 전통적인 설명 방식으로 이해해 보자.
명상이나 요가를 경험하지 않은 분도 차크라(Chakra)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이다. 용어는 다르지만, 우리도 예전부터 경혈(經穴)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그 개념이 낯설지 않다(심지어 사우나에만 가도 '경락 마사지'라는 문구와 만나게 된다).
고대 인도인들은 인체가 물질적인 부분과 에너지로 이루어진 비물질적인 부분(물론 지금은 에너지도 물질이라 여기지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인체의 이 두 부분이 '차크라'라고 불리는 일종의 문(門)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에너지 소통의 문이 어린 시절에는 열려 있다가 어른이 되면서 닫힌다.
인도의 요가 구루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막힌 차크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크라를 열 수 있는 다양한 육체적‧정신적 기법을 계발해 제자들에게 전수했는데 그것이 인도의 요가 전통이다. 그러니까 명상과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닫힌 차크라를 열어서 우리가 잃은 육체적‧영적 잠재력을 회복하는 데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도뿐 아니라 우리의 선도(仙道) 전통에도 남아 있다. 경혈은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일종의 에너지 센터라서 경혈의 소통이 원활해지면 육체적 건강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신통력을 얻게 된다고 여겨졌다. 도가(道家) 내에 신선이 되는 양생술의 전통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다만 인도에서 차크라라 부른 에너지 센터를 도가에서는 단전(丹田)이나 경혈이라 불렀을 뿐이다.
그런데 아마도 서구식 교육을 받은 분들께는 이런 이야기가 매우 미심쩍게 들릴 것이다. 서구의 과학과 의학은 보이지 않는 인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러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진지하게 수련을 해본 나는 이 오래된 인간관이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아님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 전통 의학은 바로 이러한 인간관 위에 성립된 학문이다. 그리고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한의학조차 비과학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한의학 자체가 본래의 의미에서 많이 멀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원 전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는 동아시아 최초의 의학 경전인 『황제내경』은 지금도 한의대생들의 교재로 쓰인다. 이것은 이 책이 이천 년 이상의 세월을 견딜 만한 어떤 진실을 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만약 에너지를 기반으로 성립되었던 의학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었다면, 그것이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21세기에까지 살아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한의학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 세부 효용이나 진위까지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 바탕이 되었던 인간관은 옳았다고 믿는다. 수련을 하면 에너지 흐름에 민감해지는데, 덕분에 나는 다리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위장(胃)이 함께 움직인다거나, 가슴의 에너지 흐름이 막히면 목이 뻣뻣해지고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에너지 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거나 피로가 잘 회복되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문제를 해결하면 곧 컨디션이 회복되기도 한다.
이것은 어디서 배운 것이 아니라 그냥 나의 몸을 관찰하고 느낌으로써 알게 된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 전통 의학도 이런 경험을 모아 축적한 것이 아닐지 짐작해 보게 되었는데, 실제로 동아시아 의학이 발생하던 시기에는 의사와 도교도의 구분이 없었다 한다. 오히려 "의학을 담당하고, 의경에 주석을 가한 사람들의 다수가 도교도였다".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도 기(氣)의 흐름에 민감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모아 구축한 것이 전통 의학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 우리가 아직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인체가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까지 배척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온갖 미신적인 주장까지 무턱대고 귀기울 필요는 없겠지만, 앞으로 과학적으로 탐구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신체의 에너지 영역을 자극하여 건강도 좋아지고, 영적 잠재력까지 계발할 수 있다면 적극 권장할 일인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명상을 권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반대까지 하는 걸까?(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나는 '기치료' 같은 것도 절대 받지 않는다! 필요할 경우에 간혹 한약을 복용할 뿐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체의 구조에 관한 조금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자료 출처 : 『氣, 흐르는 신체』(이시다 히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