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축복이 올 것을 믿으며
바람이 살랑 부는 어느 날, 핸드폰에 진동음이 들렸습니다. 바로 제 동생, 하나밖에 없는 쌍둥이 동생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일란성쌍둥이로 30초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언니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동생은 어렸을 적부터 제게 늘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친구 먹어도 될 법한 사이인데 동생은 항상 언니 대접을 해줬던 것 같습니다. 습관이 돼버린 탓일까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언니 노릇을 하고 싶었는지 핸드폰 너머 들리는 목소리에 조언이란 꼬리표 달린 말들만 퍼부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중간에 말도 끊는 동생였는데 어쩐지 가만히 듣고만 있어 괜히 머쓱해 제가 먼저 말을 멈췄습니다.
사실 동생은 곧 있음 한 대학병원서 산부인과 시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난소에 혹이 있고 자궁에 용종이 있어 이래저래 병원에 입원 다음날 시술하러 간다더군요. 재작년 겨울 끝무렵 동생은 결혼을 했고 아이를 준비한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소식이 없던 찰나에 가벼이 물었던 건데 갑자기 병원 이야기를 했던 동생이었습니다. 그 뒤로 계속 신경이 쓰였던 저는 틈만 나면 동생 생각에 전화나 문자 톡 각종 소통의 창구를 이용했습니다.
큰 수술은 아니라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어떤 기분일까 묻기도 하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수술 방법에 괜스레 웃으며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동생였습니다. 듣다 보니 저 역시 분위기 흐름상 농담 아닌 농담이라도 해야 할 듯싶어 긴장도 풀어주고자 옛날 얘기를 주저리 늘어놨습니다.
"언니 생각엔 말이야, 네가 아이를 갖기 전부터 미리 네 몸을 준비시켜 가는 것 같아. 나도 예전에 한 번 유산하고서 아이가 바로는 안 생겼거든. 그러고 나서 정말 아이가 갖고 싶어 졌을 때쯤 내가 한 행동이 있었어."라고 서두를 열였죠.
일하며 없으면 안 될 카페인이란 카페인 간식은 다 끊고 밀가루도 끊고 하루에 세끼 적당량만 먹으며 최대한 몸을 무리하지 않게 지냈었는데 한 달 지났을 때쯤 생각지 못한 천사가 찾아왔다고 말입니다.
드디어 아이도 생겼으니 먹고픈 거 다 먹으며 태어날 아기만 기다리려 했는데 또다시 식단관리가 시작됐습니다. 당연히 홀몸이 아니니 조심해서 먹어야 하고 건강히 먹어야 하고 불편해서 못 먹는 그래서 식단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임신성 당뇨를 판정받았기 때문였습니다. 그렇게 출산을 앞두고 아니 아기가 태어나 모유수유를 할 때까지도(당뇨는 출산 후에도 최소 3개월까지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식단 관리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동생은 "사실 내가 이전엔 방광염에 신우염 그밖에 이런저런 몸에 염증이 잘 난다는 소견을 들었거든. 생각해 보니 진짜 일하면서 맨날 불규칙한 식사에 먹을 때도 급하게 먹고 내가 봐도 참 내 몸을 막 썼다는 기분이 들더라고."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동생이나 언니나 평소에 잘 관리하는 성격보단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런 것까지 닮았나 싶어 함께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뒤늦게 온 깨달음은 오히려 자신에게 더 큰 선물을 주었다고 말해줬습니다. 내가 내 몸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아끼며 보살폈을 뿐인데 새 생명이 선물처럼 찾아왔음을 그리고 그 아이는 선천성수신증이란 병명을 갖고도 태어났지만 현재까지 너무나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음을 말해줬죠.
아이 덕분에 엄마와 아빠도 늘 자극적인 음식보단 건강식으로, 할 줄 아는 요리도 많이 없었는데 엄마란 호칭이 생기며 늘 요리책을 보고 연구할 정도의 열정 또한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남편은 지금까지도 늘 건강하고 제 자신 역시 임신성당뇨는 일시적 현상였을 뿐, 아이는 주변에서 '참 잘 먹네 가리는 것도 없고, 그래서 키도 큰가?'라는 이야길 들을 정도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덧붙여줬습니다.
그러자 "늘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얘기만 하기 바빴던 동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언니, 언니가 아이 준비하면서 어떻게 했는지 그 방법 몇 가지 말해줄 수 있어?"라고 말이죠. "내가 했다고 이게 정답도 아닌데 그냥 난 내가 해볼 수 있는 걸 했을 뿐인데?"라고 말했지만 동생은 그래도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또 뒤늦은 후회와 자책을 일삼기도 합니다. 미리 예방하고 벌어지지 않으면 좋았을 일들조차 우리는 사실 자신에 대해서 어떤 상태인지 어떤 습관을 갖고 살아가는지 놓칠 때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삶일지언정 그것은 그것대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겪고 나야 얻게 되는 깨달음인 것처럼 결국엔 나를 이롭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이로울 수 있는 방향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니까요.
전 제 자신을 조금 더 세심히 돌봤을 뿐인데 새 생명과 보다 더 건강한 라이프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자신을 돌볼 필요를 느끼며 가족들 뿐만 아닌 자신의 행복 또한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건강해야 가족도 건강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동생은 갑자기 "언니가 그런 생활을 해왔었는지 몰랐다며" 불쑥 언니 같은 대접의 칭찬을 또 해줍니다. 동생은 안 그래도 긍정적인 편이라 시술을 앞두고도 걱정 안 하는 것 같았지만 오늘의 대화는 서로에게 잊히진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나를 돌본다는 것은 결국 주변의 이들에게도 돌봄의 영향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요. 내가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할 줄 안다면 주변의 이들 또한 소중한 존재로 여기며 없었던 사랑의 표현 또한 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자신만을 바라보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겠지만 함께 건강히 살아가는 삶의 시작점으로 자신을 아끼는 행위라면 결코 비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오늘 그 누구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잃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