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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PPY EASTER!

우리가 이전과 다르게 살아가는 이유

by 유우미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가끔 이곳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릴 때 조금은 기독교적 색채가, 풍기는 분위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를 권한다기보다 그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다 보니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점임을 양해부탁드립니다.


오늘은 대놓고 제목을 기독교적 관점으로 썼습니다. 읽는 도중 불편감을 드렸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거부감이 없으신 분들은 편하게 미소 지으며 읽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주가 바로 고난주간이었습니다. 고난주간?이라고 말하면 그게 뭔데?라고 하는 게 당연한 반응이겠죠? 그렇다면 부활절은? 계란 나눠주는 날?이라고 하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까요?

네, 고난주간은 부활절을 기념하기 이전에 즉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기 이전에 겪은 과정을 기념하는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은 그냥 아무 의미 없는 부활이 아닌 것처럼 부활 이전의 고난과정 또한 의미 없는 고난의 시간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짧게나마 말씀드리자면 그분은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인간의 몸으로(성자) 오셨지만 성부이신 하나님과 이후에 오실 성령님과 더불어 성삼위일체의 존재로 성경에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셔도 될 법한 이런 전지전능하신 분이 왜 인간의 몸으로(예수님) 이 땅에 오셨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임을 당하시려 오셨습니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왜?라고 궁금해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온통 사랑을 말하고 있고 그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누구 하나도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죄인이 죽음 이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삶에 대해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며 살겠습니까? 모두가 다 겪게 될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뉠 것입니다.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허무한 죽음과 반대로 죽음 이후의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은 천국의 삶을 말이죠.

천국이 있느냐 물으신다면 네, 저는 천국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갈 수 있다면 전 가기 위함의 선택을 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제 의지로 한다기보다 선택을 할 수 있게끔 하나님께서 다가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결국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사랑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제가 사랑의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을 믿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선택)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이 같은 삶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누구나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손 내미신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만 하면 말이지요.


앞서 언급했던 예수님의 사랑은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으로 이어지기까지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려 오신 예수님, 그분이 대신해서 죽임 당한 그 사랑으로 저는 새 삶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삶은 비단 절 위한 삶이 아닌 정말 사랑의 삶이 되도록 인도해 가십니다. 사랑이 없던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조차 사랑의 눈길로 볼 수 있습니다. 삶에 감사가 없었는데 모든 순간이 감사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조차 그저 사랑 덕분에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사랑의 깊이를 경험하고 싶다면 바로 이 예수님의 '고난주간'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묵상했던 것을 저만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수직적 사랑으로 인한 수평적 사랑의 확대'라고나 할까요? 신앙생활은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닌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받은 수직적 사랑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마음이 이끌려 수평적인 사랑이 자연스레 표현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억지가 아닌 자의적인 삶 그렇게 선행이 이뤄지는 것이니까요.


즉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 또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어떠한 목적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대속해 주신 그 사랑을 날마다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은 것들에 감사할 줄 알고 또 누군가에게 이와 같은 사랑을 베풀려 살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이번 고난주간 역시 제게 그러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얻은 것들이 모든 나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지나온 시간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게 하셨음을, 결국 하늘의 수직적 사랑이었음을 말이죠.

그 수직적 사랑 안에서 나의 삶이 수평적 사랑으로 살아가게끔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수평적 사랑의 삶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사랑 덕분에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었고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 제가 러시아 유학 당시,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했던 같은 과 언니와 연락이 닿았습니다.(저는 러시아어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때 당시 언니는 아무런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다니는 한인교회에 같이 따라가 사람들과 어울렸을 뿐 그 이후로도 언니에겐 그저 종교는 문화 같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연락이 닿았을 때 언니의 모습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묻자 어느 한 워십단체(전국을 돌아다니며 찬양 콘서트 하는 단체)에서 촬영을 맡아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때 러시아에서 일했을 때도 사교적 목적으로?(타국에 있을 때면) 가끔씩 교회 봉사는 하고 있다고 했었는데 아예 한국에 들어와 워십단체에 속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언니의 삶은 제가 알고 있던 이전의 삶과는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언니가 속해있다는 워십단체를 찾아보니 유튜브 구독자도 엄청 많았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 있어 보이는 단체 같았습니다. 언젠가 저희 교회에도 초청받아 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찬양사역자들이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고난 후 부활은 단순한 부활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분이 각 개인의 삶 속에 찾아오신 이후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듯이 부활절은 이유가 있는 그것도 의미가 깊은 날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전과 다른 자신이 된다는 사실에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그저 수직적 사랑에 힘입어 기독교적 용어로 은혜받은 자로서, 구원받은 자로서 감사히 살아가는 자들일뿐입니다. 받은 사랑을 갖고서 똑같이 사랑을 표현할 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한다고 해서 하는 사랑이 아닌 받은 만큼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수평적 사랑 바로 이럴 때 쓰는 단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찬양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예람위십 _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그대 폭풍 속을 걷고 있을 때

비바람을 마주해야 할 때

불빛조차 보이지 않아도

그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두려움 앞에서 하늘을 보아요

외로운 그대여 걱정 마요

꿈꾸는 그 길을 또 걷고 걸어요

그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고난주간을 지나 제게는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오늘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을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닌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말씀드리고 싶어 진심을 담아 남겨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님을 말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분이 계심을 말입니다.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도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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