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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의 차이

이왕이면 타인에게도 이롭길 바라며

by 유우미

어느 날, 남편과 아내는 말다툼이 오갔습니다. 따지고 보면 별 일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 있었는데 남편은 아내의 행동이 못마땅했고 아내는 자신을 뭐라 하는 남편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기분이 상했다는 남편은 함께 책임져야 할 일에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아내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고 등을 돌렸습니다.


며칠 전 제게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순간 이와 비슷했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딸아이 신생아시절 때 아내와 남편은 엄마, 아빠로서의 역할이 처음인지라 당연히 실수투성이일 텐데 남편은 너무나 쉽게 아빠의 역할을 포기했습니다. 자신이 아빠로부터 받은 사랑이 없다는 이유로 그래서 자기 딸에게도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할지 잘 모른다는 이유로 말이죠. 심지어 완벽한 아빠가 되지 못할 바에야 책임질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등을 돌렸습니다. 이 정도면 습관성 포기라고나 할까요.


엊그제는 셋이서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갔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처음으로 혼자서 내리막길을 내려가겠다던 딸이었습니다. 부모는 허락을 했고 딸은 호기롭게 내려갔지만 커브길에서 결국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빠란 사람은 울고 있는 아이에게 "울 거면 더 이상 타지마"라고 이야기했고 엄마란 사람은 "아팠겠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다 보면 넘어질 수 있어. 다시 일어나 보자"라고 말했습니다.

매섭게 한 마디 내뱉곤 먼저 가버렸던 아빠와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곁에서 기다려준 엄마의 모습은 참으로 달라 보였고 말 한마디 역시 서로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겨우 진정된 뒤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넘어졌던 커브길에서 다시금 브레이크를 잡아가며 끝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다시 웃음을 지었습니다.

넘어졌을 때 울었던 이유를 물었더니 그저 아파서 그랬다고 말하는 아이였습니다. 말 그대로 아팠을 뿐 혼자서 내려왔다는 것엔 후회하지 않았던 것였습니다. 속상한 김에 "자전거 다시는 안 탈 거야"라고 말했던 것도 사실은 진심이 아녔음을 아이의 행동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이런 아이의 행동을 보고 남편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모습였습니다. 그리고는 물었죠. 또 자전거 탈 거냐고, 아이의 대답은 "응"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이는 유치원에 가는 길에도 자전거를 탔습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내리막길을, 넘어져 울었던 그 커브길을 또 한 번 스스로 내려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브레이크를 잡아가며 내려갔고 문제의 커브길도 안전하게 돌며 마지막 지점까지 당당하게 내려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던진 한 마디 "타면서 배워야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 했던 말을 요즘 들어 실감하는 중입니다. 아이는 듣고 싶은 것만 듣지 않았습니다. 겉으론 가시 돋게 말을 내뱉더라도 스스로도 정답이라 생각하는 말들은 귀담아듣고 있었습니다.

넘어지면서 배우는 게 자전거라는 것을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서야 진짜 타는 법을 배웠다 말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한 뼘 성장해 가는 게 보였습니다.


결국 우리의 말 한마디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이 되었고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난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드러내려 한다기보다 아이 앞에선 자연스레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였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부모의 그릇을 키워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아이가 내뱉을 말과 행동 역시 가장 가까이서 보고 배우게 될 부모의 말과 행동을 닮아가게 될 것이기에 우리는 늘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며 자신의 이 글쓰기 또한 가급적이면 자신만 이로운 글보다는 이 글을 읽게 되는 분들에게마저 이로움을 전달하고픈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부디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글쓰기가 되길 바라며 이만 첫 페이지를 마쳐봅니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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