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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유산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나니

by 유우미

3월 7일,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살아생전 천국을 소망하셨기에 늘 겸손하셨고 어느 누구에게도 죄짓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무엇 하나 욕심내지 않으셨고 가진 것을 나누는데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있어선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셨고 반대로 용서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듯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유산을 더 많이 물려주신 할머니셨습니다.




제가 결혼할 당시, 거동이 불편하셨던 할머니는 비록 식장에는 못 오셨지만 편지 한 장을 써 주셨습니다. "네 남편 사랑하고 존귀히 여겨라"라는 짧은 메시지만 적혀 있었습니다. 남편은 그 편지가 참 맘에 들었는지 코팅까지 해가며 잘 보이는 곳에 둘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제가 남편을 향해 가져야 할 사랑과 존중의 마음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하루는 홀로 계신 분들을 위해 방문한다는 복지사분이 할머니집을 오가며 수시로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들 모두 그분을 불러다 책임을 물으려 했지만 할머닌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아무것도 묻지 말고 조용히 센터에 전화해 사람만 바꿔달라 요청하셨습니다. 그분의 잘못은 오로지 스스로 깨우치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섣부른 정죄를 하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갈 사람일 뿐인데 그분의 행동에 대해선 오직 하늘에 맡기시려는 겸손함과 정직함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할머니의 사랑은 이 말씀을 닮아 있었습니다. 그 누구든 조건 없이 사랑하셨고 아무런 보상도 받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힘든 순간마저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을 ''로 여겨 기도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제게도 함께 "기도하자" 손 잡아주시며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키워가게 하신 분이셨습니다.(한 때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등을 돌린 상태였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할머니 가방 속엔 그동안 8남매 자식과 70여 명의 손주, 손녀들로부터 받은 편지와 용돈 봉투가 들어 있었습니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받은 것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셨고 하나하나 기억하고 계신 할머니셨습니다. 그리고 늘 "밥 먹어라, 이것도 좀 챙겨가라"라는 할머니의 습관적 챙김은 남아있는 모두에게 동일한 사랑의 추억이 되어 늘 감사하는 마음과 베풀 줄 아는 태도를 갖게 하셨습니다.




그 밖에도 할머니 생각이 날 때면 오히려 제가 받은 것만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닮아가고픈 생각에 하루도 허투루 지내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삶을 살려한다기보다 '스스로를 사랑했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사랑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삶을 말이죠.


이제야 조금은 할머니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밀물이 들어와 앉았다 순식간에 빠져버린 썰물이 지나간 자리에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기 때문였습니다. 할머니께서 살아온 삶의 흔적 자체가 반짝이는 빛이 되어 주변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오직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여야 함을, 함께하는 모두에게 허락할 수 있는 넘치는 사랑이어야 함을 말하고 싶습니다. 때론 사랑하기 힘든 사람도 사랑하기 힘든 순간도 사랑이라 부르기 어려운 현실까지 그런데도 그저 "사랑으로 살라" 말씀하고 행동하신 할머니의 모습을 그 어느 때보다 닮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이 유산 또한 결코 제 것만이 되지 않도록(누리고 멈추는 게 아닌) 제게 허락된 모든 이들에게 심지어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조차 말씀과도 같은 이 사랑을 한결같이 표현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여전히 그립고 보고픈 나의 할머니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사진 출처 - 헤이순 일러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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