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근사한 직업 중 하나, 엄마
아이가 태어나고서 나름 좋은 엄마로 살겠다는 다짐이 컸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커질수록 양육의 기준마저 높아져갔고 결국 그 선에 가까이 가지 못할 때마다 죄책감만 커져갔습니다.
분명 나름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쓴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다른 이와 비교를 해가며 안 받아도 될 스트레스를 스스로 챙기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마치 엄마란 역할은 자신의 성격상 잘 맞지 않는다 생각했고 엄마로서의 자격마저 없다 생각해 또 모든 걸 회피하려고만 했습니다.
남편의 육아 참여도는 아내의 시선에서 봤을 때 늘 부족하다 여겼습니다. 스스로 만든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느꼈으니 더욱 고립된 상태서 자기 연민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때 당시엔 몰랐지만 스스로 암묵적인 우울감 속에서 마치 자신은 괜찮은 척하며 연기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두 돌이 채 안 된 아이를 기관에 맡기기로 하자는 남편의 제안에 거두절미하고 그러자 대답했습니다.
돌이켜보다 이 시점에서(두 돌도 안 되는 이 시기) 아이를 양육하는 태도에 있어 참 다양한 엄마들의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다 전 그저 제 성격상, 성향상, 자라온 배경상황을 모두 고려해 딱 여기까지가 제 최선의 끝자락이었을 뿐 남들과 비교할 대상과 처지가 아녔음을 깨달았습니다.
혹 저 같은 상황 속 자신의 처지를 남들과 비교를 통해 판단하는 분이 계신다면 이제 그만 멈추시길 권해드립니다. 오직 자신의 어떠함을 인지하고 자라온 배경 속 부모님의 관계와 살아온 삶의 방식을 살펴봤을 때 이해 됨이 먼저여야 할 것입니다.
아이의 적응기간은 생각보다 오래갔지만(저만큼이나 섬세한 아이였습니다) 제게 주어진 그 짪은 몇 시간은 오로지 제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줬습니다.(양가 부모님께서 편히 도와주실 수 있는 상황이 못 됐습니다)
시간이 약이 되어 아이는 어느새 적응도 마쳤고 기관서의 생활을 순조롭게 이뤄가고 있었습니다. 직장 어린이집였기에 사실상 조금 늦게까지 맡기시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저녁까지 먹고 하원을 하는 편이었으니 6시 반쯤 하원하는 게 보통의 모습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린이집서 늦게까지 근무하며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줄곧 봐 왔었기에 그때 아이들이 갖게 된 생각과 느끼는 감정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그 마음을 공감했기에) 전 제 아이마저 그 마음과 그 생각을 가능하다면 겪게 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보육교사라 해서 다 저 같은 생각을 갖는 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엄마의 삶도 유지가 되기 위해 기관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나름의 애착형성 시기 또한 엄마의 자리는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렇게 제 아이는 홀로 일찍 하원(4시 반~5시), 직장생활도 이제까지 고정직 보단 프리랜서를 택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전 직장의 커리어와 부보단 아이를 택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경단녀로서의 나름 효율적인 양육 방향으로 말이죠.
바라던 게 가능했던 상황이 되자(물질의 부보단 아이와의 애착형성을 우선시하고 싶었던 엄마) 또 한 가지 경단녀 엄마로서의 특권을 누리자 생각했습니다.
바로 하루의 한 끼는 가족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였습니다. 제 나름의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그에 따른 효과를 믿었기 때문였습니다.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아이는 커갈수록 부모의 모습을 따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식사하는 것을 즐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집 밖에서 다른 이들과 식사를 할 때도 그 모습 그대로 보여 많은 분들께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없는 편이고 자리에 앉아 스스로 잘 먹습니다)
물론 모두가 다 같은 생각의 부모는 아니라 여기기에 제 철칙만을 주장한다는 것은 아닙니다.(아이와의 애착형성과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단녀 엄마) 다만 해가 바뀔 때마다 자신은 과연 아이에게 있어 어떤 엄마였을까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단녀 엄마로서의 모습을 스스로 다시금 정의할 필요가 있을 만큼 괜히 작아져있지 않아도 될 거란 말이죠.
엄마인 자신에게도 나름의 커리어가 있었고 직장생활서 주는 유익도 꽤 컸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또 그만큼 그 모든 걸 내려놓음서 경험하게 된 아이와의 시간 또한 보람과 의미, 진정한 가치가 있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경단녀라는 꼬리표가 언제쯤 떨어질 수 있을까, 이때 당시엔 마치 자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나라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이 긴긴 꼬리표가 부끄럽기보단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이 시간 아니면 또 겪을 수 없는 아이와만의 추억이 있으니까요. 물질의 부보단 추억부자로, 커리어의 높음보단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만이 경단녀 엄마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젠 다른 누구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나름의 삶의 모습으로 아이를 생각하며(사랑하며) 양육해 왔음을 인정할 뿐이고 누릴 수 있는 게 너무 많았던 지난 시간 들였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난 한 아이도 버거운데, 기관에 맡기기까지 했어 심지어 직장생활도 하지 않는데 매번 힘드네, 정말 쉽지 않아"라고 여길 때가 있었습니다. 엄마란 역할에 있어 자신은 좀 책임감이 떨어지나? 남들에 비해 자신은 아이를 향한 사랑의 깊이가 이것 밖엔 안 되는 걸까?라고 말이죠. 마치 부모의 그릇으로 이 모든 상황을 담아내기엔 턱없이 작기만 한 건(부족한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왜 그것밖에 못 하냐 손가락질한 것도 아녔는데 꽤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순간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도 막막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자였는데도 기도마저 어떻게 또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도통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오늘 문득 성경 속 이야기,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로 지금껏 자신의 모든 삶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성전에 오른 부자와 한 과부가 차례로 나와 헌금을 하는 장면입니다.
헌금함에 부자는 가진 돈의 일부를 냈지만 한 과부는 가진 돈의 전부, 즉 두렙 돈을 다 헌금함에 넣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선 이 과부의 헌신을 더 언급하셨습니다. 분명 부자는 두 렙돈보다는 더 많은 금액으로 헌금을 했는데도 예수님 보시기엔 과부의 두 렙돈이 부자의 헌금보다도 더 많다 이야기하신 것였습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길 해보겠습니다.
(성경 속) 예수님과 열두 명의 제자가 앉아 있을 적 마라이라는 여인이 향유를 갖고 다가와 앉았습니다. 제자 중 한 명은 그 값비싼 향유를 팔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며 나무랐지만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그저 그녀는 그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씻을뿐였습니다. 이 이야기 역시 목사님께서 지금까지도 저희에게 많은 교훈을 갖고 인용해 말씀하시는 예화입니다. 예수님 역시 이 여인의 행동을 잊지 말라 하셨고 어딜 가나 이야기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과부의 두 렙돈이나 마리아의 값비싼 향유는 사실상 그들이 드려질 수 있는 전부였음을 이야기합니다. 그 전부를 드리는 마음에 대해 크기나 효용 가치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 늘 진심과 자신의 전부를 줄 만큼의 표현만 있다면 많고 적음과 크고 작음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게 있어 육아 또한 그런 것 같습니다. 잘못된 기준으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자기 비하, 자책을 일삼지 않고 그저 주어진 환경서 엄마로서 줄 수 있는 것에 사랑과 감사를 얹어 줄 수만 있다면 더할 게 없을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일까 전 지금의 경단녀인 엄마로서의 사랑을 제가 가진 사랑의 전부를 지금껏 줘왔음에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경단녀 엄마로서 줄 수 있을 사랑의 기회가 지속될 수 있단 생각만으로 감사가 넘칩니다.
경단녀, 사실상 이보다 근사한 직업 또한 없는 것 같습니다. 엄마로서의 경력 어쩌면 제 삶 속에서 가장 보람차고 의미 있을 경력이 되지 않을까 감히 이 자릴 빌려 말씀드리고픈 마음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경단녀 어머님들 있는 그 자리에게 한결같이 달려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자신은 이뤄놓은 게 없다 여기실 수도 있겠지만 엄마로서의 자릴 지키고 아이들 곁에 계신 것만으로 당신은 충분한 경력을 쌓으며 달려왔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어머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