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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 bird Apr 28. 2023

자살기도란걸 해보았다

절대 다시는 하지 않을 짓 

"어? 너 술 너무 많이 마시는데? 얼른 집에 들어가있어." 

"곧 죽을 사람한테 그게 무슨 상관? 잘있어." 


내가 약을 먹기 전 마지막 예랑과 나눈 대화였다. 


불과 며칠 전이다. 

예비시어머니는 몇 개월이나 속을 썩이던 임대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로 되어있었고 관련해서 여러가지 서류 작업이 필요해 동행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필 예랑은 그날따라 직장을 빠질 수 없는 상황이라 갑작스레 예비시엄마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데이트 해달라고 조를정도로 예비시엄마와는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이 일이 싫지는 않았다.

단지 예랑이의 인스타 계정에서 아직도 전 여친과 팔로우가 되어있던게 신경에 거슬리고 있을 뿐 


둘 사이에 아무 연락도 없고 그냥 팔로우가 되어있다고만 하지만 연애 초반에 그 어린 전 여친은 당돌하게도 나를 찾아와 자신의 전 남친을 놓아줄 것을 요구했었고, 그 일로 인해 나는 그녀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안좋은 편이다. 

그런 사람이 예랑의 인스타에서 발견되었으니 나의 기분이 안좋은건 매우 당연한 일이었고, 그 일로 심하게 다툰 상태였다. 


어머니와 함께 여러 서류 작업을 하러 가는 길에 전 여친과 그런 상태에 대해서 나는 고자질아닌 고자질을 했고, 예비시엄마 역시 예랑의 전 여친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시던 터라 니가 빨리 어떻게좀 하라고 다음주에 당장이라도 혼인 신고라도 하라고 그런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서류 처리를 해주고 밀린 숙제같던 보증금을 받으시니 예비시엄마는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하셨고, 평소라면 술을 거의 못해 거절했을 터인 나도 최근 스트레스가 쌓인 터라 흔쾌히 승낙했다. 


평소 나는 알콜 폐기물이라 칭할정도로 술을 정말 못한다.

주량이 놀랍게도 맥주 1모금

맥주 1모금이면 온 몸이 새빨개지면서 어지럽고 졸음이 쏟아진다.


그런 녀석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쏘맥을 4잔이나 연거푸 들이켰으니 의식이 저 멀리 날아갔겠지.. 

거기다 예랑이라는 인간은 파혼하쟀다가 결혼하쟀다가... 

도대체 내가 어떤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를 모르게 장단을 흔들어대고 있으니 나의 멘탈 상태도 안좋았던 게 틀림 없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예랑에게 나 죽을거야 라고 카톡을 했고, 주변에 있던 약을 털어넣었다.


몇 년 전 친구가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 할 때 이 기집애도 수면제를 털어넣은 적이 있다고 했다.

"야.. 위세척하느냐고 죽어나기만하고 3일 잠만 겁나자고 퇴원했다." 


당시 그녀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근데 하필이면 내가 손에 쥐어든 약은 혈압강하제...

술기운에 멀쩡한 사고판단도 불가능하던 나는 예비신랑이 나를 힘들어하게 하는 그 장단을 그 날 따라 버티지 못하고 약을 털어넣고야 말았다.


약을 털어넣고 예비신랑에게 전화를 해서는 "나 약 먹었어. 고양이들 잘 돌봐줘." 가 나의 마지막 인사였다고 


예비 신랑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었을것이다.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 전 여친과의 문제로 갑자기 뭐라뭐라 하더니 곧 혼인신고 예정이었던 예비 와이프가 갑자기 약을 먹고서는 전화를 해서는 고양이들 잘 돌봐줘 하더니 잠시 후 쿵 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고..


그 와중에 기억나는건 내가 쓰러져있자 우리 고양이는 내 배 위로 올라와서는 신나게 골골송을 불렀고, 의식이 멀어져가는 와중에 전화기에서는 예비신랑의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

그리고나서는 기억이 간헐적으로 끊어진다. 


누군가가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쳤고, 내 급소를 누르면서 계속 말을 걸고, 뭔가 무전소리가 다급하게 오고 갔다.

알고보니 예비 신랑이 119를 호출했고, 집 비번이나 모든걸 다 얘기했을 테니 문을 열고 들어왔고 

사람이 의식을 잃어가고 있으니 의식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이런 저런 조처를 취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나는 내 예비 남편의 얼굴을 더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이후 내가 어느정도 정신이 돌아온건 병원에 도착해서 몇 종류나 되는 수액을 꼽고, 위세척까지 하고 난 이 후였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보기에는 제일 상태가 멀쩡해보였으나 제일 사망 확률이 높은 위험환자라고도 했다. 

2시간 거리에 계시는 아빠가 동생과 함께 달려오고있다는 얘기도 들었고, 예비시엄마가 보호자로 와계셨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 와중에 처음 드는 생각이 '어... 나 안죽었네...? 다행이다 남편놈이랑 앞으로 어떻게던 지지고 볶고 할 수 있어서.' 였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 라는 말이 이래서 있나보다.


중환자실은 금지사항이 참 많은 곳이었다.

민감한 장비들이 많기에 휴대전화 사용이 불가하고

상태가 급박한 환자들이 많기에 면회가 불가능하며

내 마음대로 치료를 거부하고 나가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중환자실에 한 번 들어간 이상 내가 죽거나 나아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인가보다.


그와중에 나는 면회가 가능했다. 나중에 동생에게 듣고보니 임종면회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 아버지께서는 과거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 후로 그렇게 많은 눈물을 처음으로 보이셨다고 했다. 


철딱서니 없는 딸래미는 예랑이 얼굴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있던 그 순간 우리 아버지는 딸이 죽을 수 도 있으니 마지막으로 얼굴 보고 가십시오 라는 이야기를 주치의에게 들었어야했고, 그렇게 면회를 들어오시자마자 나의 두 손을 꼭 잡고 볼을 부비며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내가 온전하게 딸이 된 이 후에도 나의 예전 이름을 부르시던 분이 딸이 된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내 소중한 첫쨰야 라고 흐느끼는건 정말 나에게도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당시 나는 우리 아빠가 왜 그렇게 울고 계신지 도대체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약이 투여중이라고는 하나 약간 어지러운 거 빼고는 의식도 너무나 명료했고, 상태도 나쁘지 않아 위세척도 했으니 이제 퇴원해야겠다 라고 생각중이었으니 


정말이지... 자살은 그 가족들한테 제일 큰 상처라고.. 나는 내 손으로 우리 가족들의 마음을 후벼파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마도 이 일은 앞으로도 평생 우리 부모님의, 나의 자매들의 가슴속에는 큰 상처로 남겠지.. 


이 일로 인해서 자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뀌게 되었다. 


어떻게 죽으면 아프지 않게 잘 죽을까? 어떻게 죽으면 내 모습이 망가지지 않고 예쁘게 잘 죽을 수 있을까? 가 과거의 고민거리였다.

내가 선택했던 방법이었다면 난 의식을 잃고난 뒤, 서서히 맥박이 느려지며 나도 모르게 쇼크사 했을 것이다.

내가 희망했던 대로 많이 아프지 않게, 모습이 망가지지 않고 예쁘게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예비신랑도 바로 신고를 해야하나 고민을 했다고 했다.

이 사람의 죽음에 대한 선택을 존중해야하나 고민했으나 그대로 둘 수 없어 원망과 책임은 본인이 지기로 하고 날 살리기로 했다고. 


결국 난 우리 부모님, 나의 자매들, 나의 예비신랑, 나의 예비시어머니 총 6명의 걱정과 놀람과 경제적 손해를 댓가로 다시 삶을 부여받았고 죽음이란게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환자실에서는 2박3일을 입원해있었다.

원래도 저혈압이었던 나는 승압제가 들어가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혈압이 높아지지 않았고, 약물의 용량을 조금만 올리면 극심한 두통과 구역증상이 찾아와 쉽게 용량을 올릴 수도 없었다. 

약물이 들어가고 있으니 상태는 너무 멀쩡한데, 핸드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하루를 멍하지 보내는게 정말이지 가장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힘든건 소변줄... 


나는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혹시라도 내 연명 치료에 소변줄이 포함되거든 연명치료 포기한다고 해줘"라고 가족들에게 얘기할 정도로 소변줄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있다. 

소변이 마려운 것도 마렵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한 느낌

방광에 뭔가 들어있다는 불쾌감

도뇨관이라는 지긋지긋한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아마도 공감하실거다.


"저 진짜 괜찮아서 그러는데 퇴원수속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환자가 치료 거부했다고 해주세요 그냥... " 

약물이 투여중이어서 그런지 정신은 너무나도 멀쩡했고, 할 수 있는건 없었고.. 

나는 중환자실에서 새로운 타입의 진상이 되어 있었다.


조금 경력이 있는 간호사분께서 오셔서

"환자분 드신 약이 뭔지는 아시죠?"

-누구보다 잘 알죠.... 그럴려고 먹은거니까.. 근데 죽을정도 용량은 아니었을텐데.... 

"주변 한 번 살펴보세요. 지금 환자분보다 많은 수액 달고 있는 분들 단 한분도 안계세요. 심지어 저 옆에 인공호흡기 달고계신 어르신조차도요."

"지금 환자분 치료 포기 하고 나가시면 병원 정문 넘어가기도 전에 쇼크로 쓰러져서 사망하실거고 그 경우 모든 책임은 병원에 있습니다. 여기 한 번 들어오신 이상 건강해져서 나가셔야해요." 

나보다 많이 어려보이지만 그녀의 말투는 정말 단호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너 꼭 살아서 나가 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러게 예쁜 분이 왜 그런 선택을 하셨어요 다음에는 절대 다시는 이러지 마시고 좀 누워서 쉬세요." 


이틀차 예비신랑이 필요한 물품을 전달해주러 왔었다. 

예비신랑은 아직 법적으로 직계가족이 아니라 직접 면회가 허가되지는 않았다.

구급차를 타고 올 때 신발을 미처 챙기지 못했던터라 신발만 부탁했었다. 

센스 있는 그는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할까봐 에어팟, 귀마개, 눈가리개,읽을 책 등을 정말이지 너무나도 완벽하게 챙겨왔고, 그 덕분에 나는 남은 이틀을 조금이나마 덜 심심하게 보낼 수 있었다. 


병원에 앉아있으면서 희안하게도 불안감,우울감 이런게 사라졌다.

조금 더 집중해서 책을 읽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의 정리 또한 했다.

물론 그 징글맞은 소변관은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지만


퇴원을 한다면 예비신랑과 예비시엄마에게는 어떻게 사죄를 해야 할 것인지

우리 가족에게는 어찌 사죄를 해야할 것인지 


결론은 내가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잘 사는 게 그들을 향한 사죄일 것 같다. 

물론 찾아가서 도게자라도 하고 다시는 이러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게 맞지.. 


예비신랑에게는 이미 여러차례 사과 사죄 모두 했다.

이 사건의 원흉이기도 한 무덤덤한 남자는

"살아서 다행이다. 앞으로는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자." 라고만 했고.. 

시엄마는 아직까지... 뵐 낯이 없어서 카톡으로 사죄만 드렸다.

곧 어버이 날이니 대신 결제해주셨던 병원비를 포함해서 선물들고 찾아뵙고 인사드려야지 생각중이다. 


우리 가족들은 그냥 그런 바보같은 짓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 해줬다.


해프닝 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고통받고 놀랬고

만약 내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틀림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놀랬겠지?

너무나도 희안하게도 시도 전까지는 너무나도 타오르던 자살에 대한 열망이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사그러들어버렸다. 

삶의 소중함을 직접 체감해서였을까.. 

아직 이 사람과 해보지 못한 것들.. 가보지 못한 곳들.. 아직은 내가 감당해야할 4개의 생명들 

이런 것들을 놓기에는 아직까지는 나는 준비가 덜 되었나보다. 


아마도 누군가가 자살을 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이제 정말 죽음의 문턱을 밟아본 사람으로 적극적으로 생을 권유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게 더 좋더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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