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 bird Apr 06. 2023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한 인터섹스 이야기

저 남자 아니었나요?

이차성징이 나타나면 여자아이들은 월경을 하고 가슴이 발달하고

남자아이들을 골격이 넓어지면서 목소리가 낮아지고 수염이 나기 시작한다.


이차성징이 찾아오는 시기는 개인별로 차이가 있기에

나는 그냥 남들보다 좀 많이 늦어지는 거리라 생각을 했다.


그리고 중학교2학년 신체검사 때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신체검사를 하면 기본적으로 하게 되는 소변검사

여기에서 혈뇨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사실 혈뇨 자체는 여러 가지 이유로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증상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나의 경우는 꽤나 주기적으로 혈뇨가 있었고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정도지만 검사에는 나올 정도의)

후에 검사에서 생리의 형태였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것과는 다르게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변성기가 오지도 않았고

골격 자체가 도드라지게 커지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허리가 잘록해지고

가슴에 몽우리가 잡히기 시작하는 등 일반적이지 않은 이차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 남자 아니었나요 ???


잘은 모르겠지만 의학적으로 원래 생명체의 기본형은 XX 유전자라고 하는 논문을 봤다.

아마도 나의 몸은 기본형인 XX를 향해 가는 거였을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터섹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고

나 역시도 당연히 남자 아니면 여자 두 가지 성별만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었으니

나의 몸에 이러한 변화가 굉장히 당혹스럽고 불쾌했다.


이때쯤부터 그 좋아하던 수영장도 다니지 않게 되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파고가 몰아치는 것 같다는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

나의 남다른 사춘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름 공부는 해왔기에 외국어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덕분에 주변 친구들은 학업에 집중하는 분위기라 중학교때와 같은 괴롭힘은 없었고

겉으로는 밝은 성격이었기에 같이 노는 무리도 남녀 가리지 않고 여럿 있었다.

물론 단골처럼 듣는 얘기도 있었다.

여자인 친구들에게는 '야 너랑 얘기하면 남자가 아니고 그냥 여자랑 얘기하는 거 같아.'

남자인 친구들에게는 '야 너는 애가 그렇게 기집애 같아서 어떡하냐?'


또 한 번은 같이 과외를 하는 반 친구가 굉장히 진지하게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너를 보면 남자가 아닌 여자랑 대화하는 거 같아서 뭔가 기분이 이상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태어나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그 무렵 남자친구들은 한 번씩 대중목욕탕을 다녔고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권유했으나 단 한 번도 같이 간 적은 없었다.

내가 봐도 이상한 내 몸을 남들에게 절대 보일 수 없었으니까


이때쯤부터 새로운 고민도 함께 시작되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여자를 향한 관심이 높아져가는데

나는 반대로 남자를 향한 관심이 높아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아직 인터섹스라는 걸 모르던 시절..

나는 게이인 것인가?

이게 내 인생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자리 잡았다.


처음 시작은 고2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굉장히 조용해서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까무잡잡한데도 꽤나 잘생겼고, 운동을 좋아해서 몸도 좋았다.

아웃사이더를 지향하는 인사이더라고 표현하면 될까?

본인이 굳이 남들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남들이 찾아오는..?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걸 귀찮아하는


이 친구와는 짝꿍으로 만나게 되었고

첫인상은 잠만보인가? 싶을 정도로 잠만 자는 친구였다.

1년 선배와 연애 중이어서 잠을 자지 않을 때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입버릇처럼 "귀찮아"를 연발하며 자리에 늘어져있는 친구였다.

앞머리를 제법 치렁치렁 기르고 있어 잘생겼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는데

어느 날 머리를 짧게 자르고 왔는데 꽤나 잘생긴 얼굴이었다.


드라마 속 그 장면이 나에게 찾아왔다.

주변이 슬로모션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그 친구만 내 눈에 들어오는

첫사랑이 초등학교시절 정말 멋모르고 코치님을 좋아한 풋풋한 감정이었다면

고2 때 찾아온 두 번째 사랑은 너무나도 아픔이었다.


친구 이상의 좋아하는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그리고 나는 왜 남자가 좋은 거지?라고 자신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는


이 친구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알고 있었던 것 같고

내가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만큼 본인도 적당하게 완급조절을 해줬다.

여튼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 행복하고도 이를 표현할 수 없어 아팠던

염색체와 호르몬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혼란스럽기만 했던

그런 두 번째 연애 감정과 함께 내 사춘기도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고3을 맞이했고, 학교를 다니는 걸 싫어했던 나는 조금은 과감한 선택을 했다.

외고였기에 가능한 선택. 유학반


당시 학교의 제도로 외부 교육기관에서 진학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는

확인증을 학교에 제출하면 출석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가 있었고

나는 그 제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학업성적도 어느 정도 좋은 편이었기에 담임선생님은 많이 아쉬워하셨고

학교에 나오는 게 싫은 거라면 수시를 추천해 줄 테니 한국에 있는 학교도 지원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주셨지만 이미 나의 머릿속은 한국을 떠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전 03화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한 인터섹스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