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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 bird Apr 06. 2023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한 인터섹스 이야기

환자분 인터섹스입니다.

고3 국내 대학 진학이라는 선택지는 아예 닫아놓은 채

나는 유학시험을 쳤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사실은 뭐가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냥 떠나고 싶었던 거 같다.

그 나라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좋은 대학교

전공은 경영학


문학은 어차피 그 나라 가면 그 나라 언어를 해야 하니 탈락 

경제학은 수학이 많이 나온다고 하니 탈락

법학은 한국에 돌아와서 쓸 수 없으니 탈락 

수많은 소거법을 거쳐 남은 전공이 경영학이었다.


그렇게 나의 유학생활이 시작되었고 도망치듯 떠난 유학생활이

순탄할 리 없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지독히도 향수병을 겪었고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았던 그 시기에

의외의 마음의 안식이 되어준 곳은 바로 교회였다.


지금의 나는 교회를 다닌다. 자의 반 관성 반으로  

하지만 사춘기 시절 여러 가지 혼란을 겪으면서 한동안 교회에 발을 끊었다.

하지만 사람이 마음이 힘들 때면 의지할 곳을 찾는다고 했던가

타국에서 외롭고 무서운 마음에 위로가 되어준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였다.


목소리 때문에 놀림받으면서 그만두었던 어린 시절의 성가대는

교회에서 지휘자님을 만나며 노래를 다시 하게 되었고

뭔가 봉사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겨 성가대 외에도 음향부와 청년부 활동을

자의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니다 보니 옆사람의 신앙의 힘이 전염이라도 된 듯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도 다 창조주의 뜻이겠지.'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게 되었고

내가 남자에게 끌리는 것도 열심히 노력하면 극복이 될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유학시절에는 놀랍게도 연애라는 것을 전혀 하지도 않았고

교회 지체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게 당시의 큰 즐거움이었다.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무색하게 2년, 3년이 지날수록 향수병은 지독해져만 갔고 

우울증은 나날이 심해지고 소거법으로 결정한 전공이 재미있을 리도 없었다.

점점 학교생활에도 소홀해지고, 나의 심적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교회에 있는 모든 모임이란 모임은 열심으로 참석했다.

당시 교회 집사님, 권사님들께는 굉장히 열심으로 교회에 참석하는 청년으로 보였을 것이다.

내 마음속 풍파는 전혀 모른 채... 


정말 흩날리는 꽃잎에도 눈물이 나고, 비가 오면 축 쳐지고, 낙엽이라도 떨어지면 내 생명이 다 할 것 같은

소위 중2병 같은 순간들이 나에게 직접 닥쳐오니 버겁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정말 큰 사건이 생겨버리고야 말았다.

몸이 안 좋아서 방문했던 병원에서 나의 몸을 보던 의사가

혹시라도 염색체 검사나 다른 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지 물어왔다.

그럴 만도 한 게 환자 접수에는 남성으로 되어있는데 목소리도 외형도 여자 같은 사람이 왔으니

의사 딴에는 뭔가 짚이는 게 있었나 보다.

Inter Sex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다.

성별이 남성 아니면 여성이지 어떻게 다른 성별이 있을 수가 있지? 


의사의 권유에 따라 몇 가지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인터섹스가 맞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간헐적으로 생기는 혈뇨는 생리혈의 일부가 요도에 섞여나오며 생기는 증상이었고

당연스럽게도 주기가 아닐 때는 정상일 수 밖에 없으니 스트레스성이라고 진단을 받은 거였다. 

(물론 국내 병원에서도 염색체 검사 등을 권유받은 적은 있었으나 받지 않았다)


이것이 정말 나를 향한 신의 뜻인가? 아니면 신의 형벌인가? 

창조주는 실수가 없다고 했는데 나라는 존재는 실수인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며 정말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나에게는 왜 2차 성징이 다른 형태로 다가왔는지

나는 왜 같은 성별이라고 생각한 남성에게 끌렸는지 이런 의문점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유튜브 등을 통해 다른 인터섹스분들의 인터뷰를 보다보면

간혹 본인은 후에 이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 기뻤다는 분도 계셨다.

내가 왜 남들과 다른지를 알게 되어서 안도가 되었다고

하지만 어렸던 나에게는 위안이기보다는 충격으로 다가왔던 순간이었다.


한국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병원을 다녀왔고,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얘기를 했다.

"그런 엉터리 의사가 어딨어!! 그런 게 어떻게 존재를 해!!"

엄마의 화가 섞인 외침 


'엄마.. 그런 게 존재를 해.. 엄마 자식이.. 그런거래.... '


당신이 낳은 자식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걸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나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인데 낳아준 이는 오죽했을까.

많이 울었다. 지난 힘들었던 인생이 서러워서. 앞으로의 인생이 두려워서

받아들여주지 못한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서. 


결국 너무나도 무기력해질 정도로 상태는 안 좋아졌고

나는 졸업을 1년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다니던 교회에 발걸음도 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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