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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 bird Apr 06. 2023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한 인터섹스 이야기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여자로 살리라 마음먹고 순탄하게 취업까지 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은가?

20대였던 나 역시 호르몬의 장난인지 본능적 욕구인지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많이 고민되었다.

내가 끌리는 상대는 '남성'

하지만 남자도 여자도 아닌 내가 일반적인 남성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동성인 남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이렇게 생전 처음으로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가입도 해보고

몇몇 사람들을 만나도 보았지만 간과한 점이 있었다.


대중의 시선에서 남성 동성애자라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뭔가 여성스럽고 소위 말하는 끼 부리는 사람

곱상해야 할 것 같고 누가 봐도 저는 남자를 좋아해요라고 티 낼 거 같은 사람 

나 역시도 그러한 선입견이 있었고, 그렇다면 나는 꽤나 있기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나의 크나 큰 오산이었다.


만났던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본인에겐 미안하지만 아마도 본인은 여기서 연인을 만나기는 힘들 거예요.

대부분의 우리는 남자를 좋아하고, 남성스러운 사람을 더 선호하거든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예쁘고 여성스러운 사람을 원했다면 일반 여자를 만나는 게 훨씬 더 편하다.

남들 이목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그렇게 내가 이쪽에 소속된 사람이 아님을 느낀다.


"트랜스젠더를 선호하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을 만나보면 어떻겠습니까?"

카페에서 만난 어느 분이 가볍게 산책 중에 해 준 말이었다.

동성애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사람이고, 그분 역시나 나를 연애 대상으로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거도 같다.

밑져야 본전인데 가입이나 한 번 해보자 


Holy moly!! 여기였구나!! 

이곳의 남자들은 나를 좋아해 주는 것 같다.

나를 여자로 봐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근데 대화의 끝은 왜 항상 내 몸으로 가지? 


몇 사람인가 만나 몇 번인가의 데이트도 해 보았다.

좋은 레스토랑도 가보고, 밤늦게 드라이브도 가보고 

당일치기로 바닷가도 다녀와보고, 서울 시내를 산책하기도 하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데이트들이 내 현실로 다가왔고 그런 사실들에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감의 끝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행함.

누구 하나 다를 것 없이 잠자리를 요구했고, 그러면 나는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교회와 발걸음은 끊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우리 이권사님의 엄청난 주입식 교육으로 

혼전순결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걸로 알고 자라왔기에 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람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


이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그저 내 몸이 궁금하구나


정서적 교류가 충분치도 않은 상태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것도 싫지만

내 몸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 또한 어릴 때부터 학습된 극도의 공포였다.


이렇게 또 마음의 문이 하나 닫힌다. 


이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가 처음에 언급했던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그 친구이다.

본인은 선택을 했지만 완벽한 여자로 보이기는 어렵기에 많은 고민이 있는 친구였고

그 친구의 입장에서는 여자로 사회생활을 하며, 본인이 보기에 쉬이 남자를 만나는 내가 부러웠다고 했다. 


친구야 알고 있니? 나도 속으로는 이런 고민들과 두려움을 가지고 살고 있어

너에게는 하지 못한 말인데 그래도 넌 네가 선택한 길이잖아. 나에겐 의지와 관계없이 선택이 강요됐어.


이 무렵 온라인게임을 시작했다.

나 자신을 여성으로 소개했고, 길드 활동도 시작했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모임도 가지면서 청춘을 즐기고 있었다.

같은 길드에는 만나보지 못한 연하의 남성 유저도 있었는데 거리가 좀 먼 (가칭)사과시에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정말 대놓고 나에 대한 관심과 호감을 표현했는데 

내가 출근한 동안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대신 모아주거나

퇴근하고 돌아오면 바로 출발할 수 있게 레이드 파티를 모집해 주거나 

게임을 하는 시간 동안 내내 말동무를 해주거나 누가 봐도 이 사람이 날 좋아한다는 티가 나는 행동을 했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음성채팅을 하면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누나 제가 이 아이템 다 모아주면 저랑 데이트 한 번 해요."라고 했다.


당시 머릿속에서는 어차피 거리도 멀어서 연애까지 할 리는 절대 없고

게임에서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줬으니 같이 하루 노는 거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데이트를 하겠다는 열의 때문이었을까? 

일반적으로 1~2주는 걸릴 아이템 파밍을 그는 무려 3일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다 끝냈고

3일째 음성채팅을 하는데 굉장히 신나면서도 들뜬 목소리로

"누나 아이템 다 모았으니까 우리 이제 데이트해야 돼요." 

내친김에 다음 주에 껴있던 연휴를 약속 날짜로 잡았다. 


에버랜드. 첫 데이트 장소 


사과시에 사는 그가 에버랜드까지 오려면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무려 4~5시간을 와야 한다고 했다.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는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버스 안에서 기차 안에서 쪽잠을 자다 8시쯤 나를 깨우기 위한 모닝콜까지 해줬다.


어쨌든 에버랜드까지 들어가야 하기에 우리는 용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처음 만난 그는 호리호리하지만 큰 키에 어깨가 굉장히 넓은 

서글서글한 인상의 호남형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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