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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 bird Apr 06. 2023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한 인터섹스 이야기.

왔구나 드라마 같은 내 사랑! 

군대를 전역하고 복한 준비 중이었던 그

편하게 K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처음 만난 K의 인상은 

'저 코만 좀 어떻게 해주면 진짜 괜찮을 텐데.'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도 예쁘게 근육질이었고 

인상도 선하고 좋아 보이는데 미용병원에서 근무하는 내 눈에는 그의 코가 들어왔다.

나름의 이상형이 코가 예쁜 남자였기 때문에 이 사람과는 절대 연애할 일은 없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꼭 이러면 그 사람과 연애하는 게 이런 글들의 암묵적인 약속이지 않는가?


당시의 나는 내 몸의 상황을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어차피 K와 나는 4시간 정도 거리에 살고 있었고 

나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2년 차, 그는 예비복학생이기도 했다.

하물며 이 남자가 나의 이상형도 아니니 현실적으로 K와 연애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에버랜드에 가는 길에 그가 훅 들어왔다.

"누나 저한테 4번 키스해 주기로 한 거 안 잊어버렸죠?"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하면말이지

게임 아이템을 모으는데 평균 2주 정도 소요가 된다.

K와 나는 한 가지 내기를 했는데 1주일 안에 모으면 원하는 걸 해줄게 라는 내용의 내기였고 K는 


"누나 그럼 만났을 때 마음에 들면 키스할게요 

대신 일주일에서 하루 앞당겨질수록 한 번씩 더 추가예요."


평균 2주가 소요된다. 1주일 안에 끝낼  리도 없고 설령 1주일이 걸렸다고 한 들

성인들끼리 키스 한 번 하는 게 문제가 될 일도 아니니 해볼 테면 해봐라 라는 심산으로 동의했다.

근데 이걸 3일 만에 끝내버린 거다 K는..


10여 년 만에 가는 에버랜드는 새로웠고, 오랜만에 타는 어트랙션들은 짜릿함을 주었고

그로 인해 올라간 심박동 때문인지 아니면 옆에 있는 남자가 새롭게 보였기 때문인지

T익스프레스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자 약속."

이라고 하며 가볍게 입맞춤을 해버렸다.

그러자 K는 

"에이 누나 이건 반칙이죠."

하면서 드라마에서나 보던 벽치기를 하며 그야말로 나에게 들이받았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에버랜드를 돌아다니고 멀리서 온 K를 위해 저녁을 먹이고

그렇게 K를 배웅해 주고는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카톡이 울렸다


'누나 이제 말 편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 오늘부터 1일인 거다?' 


나도 모르게 버스 안에서 피식 웃었다.


'생각해 봄~'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정말 나쁜 년이었던 건 

'그래. 어차피 연애도 안 하면 연애세포가 죽는다고 했는데 너랑 적당히 하다가

근처에 사는 좋은 사람 있으면 너랑 정리하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 게임 안에서의 몇 번의 대시와 주말마다 나를 보러 오는 K의 정성에

연애를 시작하기로 했다. 

당시 병원에서 일을 했던 나는 특이하게도 평일에 이틀 오프가 있었고

K는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날짜로 수강신청을 해서는 기어이 2주에 한 번은

서울로 올라와서 데이트를 했다.


커뮤니티에서 경험하지 못한 평범한 남자와 평범한 여자의 데이트

내가 꿈꿔왔던 모든 게 K덕분에 현실이 되고 있었다. 

나를 그냥 평범한 여자로 알고 있는 것도 크게 한몫했다. 


남들처럼 맛집 찾아다니고, 영화를 보고, 카페를 가고 

좋은 곳이 있다고 하면 놀러 가고

밤새 통화하며 일상을 공유하고

내가 나였기에 허락되지 않았던 그런 소소한 행복들을 K는 나에게 선물해 줬다.


때로는 그가 내가 있는 포도시로 오고, 때로는 내가 그가 있는 사과 시로 가고

게임 오프모임에도 함께 참석해서 닭살커플이라는 별명까지 얻어가며 나의 꿈꿔왔던 연애는 시작됐다.


물론 그 역시 남자였기에 교제하고 나서부터는 잠자리를 가졌으면 하는 눈치였으나

우리 집은 기독교 집안이라 혼전순결을 중요시하고, 외박이 안 되는 엄격한 집안이다

라는 핑계로 그 부분은 어찌어찌 넘겼다.


이 무렵 나에게는 크게 두 사건이 터지게 된다.


"너 그렇게 살 거면 내 집에서 나가!" 사건이라고 부르며 나는 지금도 우리 이권사님을 놀린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우리 엄마는 20대 지독한 우울증을 겪었고, 큰 엄마의 소개로 교회에 나오게 되며 우울증이 치료되었다.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은혜를 경험한 이는 다른 누군가에게 그 은혜를 전파하기 원하고 우리 엄마 역시 그러했다.

우리 엄마의 가장 첫 대상은 바로 나의 외할머니. 엄마의 어머니였다.

당시 엄청난 불자셨던 우리 외할머니께서는 우리 엄마에게 

"너 예수쟁이 할 거면 내 딸도 아니다. 너 이년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 

라고 갈 하셨고, 우리 엄마는 아직도 그게 큰 상처로 남아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나 역시 그 광경을 생생히 목격했고 굉장한 충격과 상처였다) 


내가 결정한 성별로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에서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고

그로 인해 엄마와 손아랫동생과의 갈등이 매우 심하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술에 만취해서 들어온 동생이 내 방으로 찾아와서는 시비를 거는 참이었고

공교롭게도 우리 엄마는 그때 한창 예민할 갱년기를 온몸으로 겪는 중이었다.


양쪽에서 고주파가 깨질 듯 발사되는 와중에 엄마가 꽥 소리를 질렀다

"난 너를 딸로 낳은 적이 없다! 너 그렇게 살 거면 내 집에서 나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 이렇게 태어났나? 

아니 애당초 나를 낳아달라고 내가 애걸복걸 부탁한 적은 있었나?

나를 이렇게 낳아놓고서는 왜 나를 부정하는 것인가

당신도 당신의 어머니에게 거절당하면서 받은 상처가 그렇게도 깊어

눈물을 흘리며 주변에 그렇게 하소연을 하셨으면서 어떻게 똑같이 거절할 수 있는가


당시 엄마가 간과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당신의 자식이 더 이상 8살 어린아이가 아닌 어엿한 한 명의 성인이라는 거였다.

경제활동도 하고 있겠다 집에 있어봐야 마음만 불편하겠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독립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철쭉시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중이었고, 마침 사촌언니가 혼자 철쭉시에 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교류가 있어 나의 상황을 익히 알고있던 사촌언니는 내가 집을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자 기꺼히 본인과 함께 지내자고 했다. 


또 한 가지 사건은 K와 있었던 일이다.

사과시에서 데이트를 할 때면 같이 게임을 하던 오빠도 사과시 주민이라 셋이 같이 만날 때도 종종 있었다.

데이트에 난입한 불청객입장이면서 그 오빠는 참 눈치 없게도

"넌 도대체 이 어린애를 뭐가 좋다고 만나냐. 네가 아깝다 빨리 헤어지고 더 좋은 남자 만나라."

라는 말을 매번 했고 이 말이 K에게는 제법 상처가 되었던 모양이다.


K와 만난 지 6개월 정도 되는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셋이 저녁을 먹게 되었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K의 속을 긁었다.


그날따라 K의 얼굴이 좋지 않아 보였고, 역으로 데려다주는 내내 말도 없이 어두운 표정이었다.

역에서 날 배웅한 뒤 10분 정도 지났을까? K에게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아무에게도 축하받지 못하는 만남인데 나 너무 힘들다."

얘기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결국 마지막에는 둘 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서울로 올라오는 KTX 안에서 전화를 받으며 울고 있는 여자라니 


누가 봐도 이별했다.


K가 조금 더 쉽게 마음정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나는 지난 6개월간 그에게 숨기고 있던 나의 비밀

결코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비밀인 인터섹스임을 밝혔고, 덕분에 그동안 즐거웠고 많은 추억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그에게 보냈다. 


그렇게 K와 나는 한 번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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