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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 bird Apr 06. 2023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한 인터섹스 이야기

나의 가장 큰 행복은 나의 가장 큰 아픔이 되어 

동거 2년차 K와 그렇게 철쭉시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새롭게 다니는 병원의 원장은 조금 괴팍하지만 그래도 금전관계에 있어서는 깔끔했고 

덕분에 나는 더이상 경제적으로 K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사과시에서는 외식을 나가거나 어디 놀러가면 비용부담이 오롯이 K의 몫이었는데 올라오고나서는 내 돈으로 깜짝 여행을 선물할 수도 있었고, 좋은 선물을 사 줄 수도 있었다. 


1년쯤 지나 좀 더 좋은 조건의 병원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이때부터는 돈도 조금 더 착실히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우선 가장 급한 목표였던 카드 없애기를 큰 맘 먹고 실행에 옮겼다.

현명하게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신용카드가 유용한 경제수단이겠지만 즉흥적이고 무계획한 나에게는 빚으로 들어가는 수렁이었기에 2개월에 거쳐 단호하게 카드를 없앴다. 


모으는 돈도 조금씩 더 많아졌고, 그 무렵 K와 나는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K는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이라고 했다. 

둘이 함께 해외여행을 가서 차곡차곡 추억도 쌓았고, K는 나와 함께 했던 해외여행은 자신의 평생에 잊지못할 추억이 될거라고 했다. 


이제 남은 숙제는 나의 수술. 

내가 혁명가이지 않을거라면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지정성별은 필요했고 나는 이미 어떻게 살지 정했다.

이제 실천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조금씩이지만 차근차근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나의 인생에 큰 시련이 찾아왔다.


아마도 동거 6년차쯤이었던 것 같다.

K의 태도가 뭔가 미묘하게 달랐다.

원래도 2~3개월에 한 번 씩은 본가에 다녀오던 사람이라 2박3일정도 외박을 하는 일은 있었다.

문제는 뭔가 이 사람의 외박 빈도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뭔가 쎄함을 느끼면서도 나의 행복을 내 손으로 깨고싶지는 않았기에 애써 덮었다.

하루는 이 사람이 술에 취해 컴퓨터에서 자고 있는데 손에 우리 커플링이 아닌 다른 반지가 쥐여있었다.

"그 반지 모야?" 라고 묻자 다급하게 "우리 반지잖아" 라고 한다.

여자의 촉이 왔다. 다른 사람이 있다.

속이 울렁울렁거린다. 목이 메여온다. 

"아니 내가 바보야? 우리 반지 아니잖아." 


한참을 있다가 그가 얘기한다.

사실 술김에 전여친과의 추억을 살피다 숨기고 있던 커플링을 보고 있었다고 했다.

"당장 갖다 버려. 안그러면 내가 버릴거야." 

말도 안되지.. 내가 너랑 산 세월이 얼만데..  그 반지가 예전 그녀의 반지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안다.

그래도 나만 덮으면 돼 라는 마음이었기에 애써 모른척 덮었다.


K가 알고 지내던 Y라는 여동생이 있다. 

실제 만난 적은 없지만 몇 번인가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던 사람이고 간혹 연락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근데 뭔가 희안하게 최근 이 Y라는 여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자주 온다.

K말로는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헛헛함에 연락을 하는거라고 했다.

"아니 그래도 여자친구랑 살고있는 사람인데... 여사친을 끊으라는건 아닌데 정 연락 할거면 나랑 인사정도는 시켜." 라고 있는대로 짜증을 냈다.

평소였다면 "알겠어 곧 자리 마련해볼게." 혹은 "신경 안쓰이게 내가 잘 얘기할게." 라고 할법한데 그날따라 K가 "내가 알아서 할테니 니는 신경좀 꺼라." 라고 날카롭게 나왔다.

결국 그날 저녁 둘은 크게 싸웠고, 헤어지네 마네 난리를 쳤던 것 같다. 

우리는 각자 며칠간 생각해보기로 하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대화가 단절된 채로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3~4일정도 뒤 K는 나를 데리고 내가 좋아하는 국수집으로 갔다.

"우리 헤어져?" 내가 먼저 물었고 K는 그냥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2~3개월 지났을까? 

큰 사건이 터졌다. 


그 해 여름. 우리는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고, 난 3월부터 이미 숙소와 항공편 예약을 마쳐놨다. 

여행을 가기 2주 전 K는 회사 스케줄상 베트남 여행은 힘들거같다고 했다.

그리고 베트남을 다녀온 다음주는 본인의 가족들과 제주도를 가기로 되어있었다. 

2번이나 연달아 휴가를 쓰는건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마는 6월 여행이었고 3월부터 이미 일정공유를 했는데 그렇게 엎어버린 그에게 짜증이 난 상태로 주변에 같이 갈 사람을 물색하다 사촌 동생과 다녀왔다.


베트남 여행에서 조금 짜증나는 일이 있어 카톡으로 툴툴 불만을 표하고 같이 오지 못해 아쉬움을 표현했는데 뜻밖에 그로부터 굉장히 냉정한 답장이 왔다.

기분이 많이 상한 상태로 귀국을 했고, 그날 사건은 터졌다. 

평소라면 내 짐만 정리하고 끝냈을 것을 그날따라 그의 가방이 거실 한구석에 굴러다니는게 눈에 거슬렸다.

생각없이 가방을 슥 드는데 툭 하고 떨어지는 편지 몇 다발

Y이다.

"오빠 이제 우리 사귄지 벌써 100일이 되어가." 라는 내용의 편지도 있었고

"우리 남친 잘 부탁드립니다. 발렌타인 조공이에요." 라는 내용의 편지도 있었다.

추측컨데 이미 6개월정도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거였다. 

손이 벌벌 떨리고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한다.

눈앞이 새하얘지고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잠시 식탁 의자에 기대었다.


바람을 피울거면 좀 치밀하게 피우지....

방 한 구석에서는 버렸다고 한 전 여친과의 커플링도 나왔다.

같은 컬러. 비슷한 디자인 

우리 커플링은 전적으로 내가 골랐기에 그의 취향의 디자인도 컬러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반지가 굴러나오고, 한 장의 사진 

예전에 사진으로만 봤던 Y이다. 그리고 그 옆에 K가 있다.

예전에 나에게 보이던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전여친과의 커플링을 Y와 나눠끼고는 


여자의 촉이 다시 온다.

아 제주도여행은 Y와 가는거겠구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믿어보자. K를 믿어보자 


그렇게 K가 제주도 여행을 떠나는 날이 왔고 나는 그 나름대로는 잘 숨겨뒀다고 생각했을 반지가 있던 곳을 가 보았다.

그가 아침에 씻을 때 까지만 해도 거기 있던 반지가 없다.

혹시나가 역시나이고 발등은 믿는 도끼에 찍히는 거구나. 


K는 성실하게도 제주도에 가서 가족들과 찍었다며 풍경사진을 연신 보냈다.

그걸 찍어준건 Y겠구나. 사진을 보면서 목이 매이고 눈물이 벌컥 차올랐다.

그렇게 3박4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K가 돌아왔고, 나는 복수를 준비했다.


이 치밀하지 못한 남자는 Y의 명함을 너무나도 눈에 보이는 곳에 올려놨었고, K가 출근한 어느 아침 나는 Y의 폰으로 문자를 한 통 보냈다. 

"K와 7년째 동거중입니다. 알고계셨나요?본인 지금 바람녀 처지인거요.." 

내가 상처받았다. 너도 상처받아라. 다분히 악의를 가지고 보냈다.


1분쯤 후  Y로부터 전화가 왔다. 앙칼진 목소리로

"누구신데요. 누구신데 이런 문자를 보내시죠?"


"전 K의 9년 된 여자친구입니다. K가 사과시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부터 같이 살았고, 지금은 철쭉시에서 저와 함께 살고있습니다. 그리고 전 Y씨에 대해서도 많이 들어 알고있어요."


정적이 흘렀다. 

방금전의 앙칼진 목소리는 수그러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K오빠가.. 전화주신 분과 동거중이라는거죠?저는..믿을수가 없네요..." 


"네. 저희 집으로 택배도 보내셨으니 집 주소 아실텐데 불러드릴까요? 철쭉시 ㅇㅇ구."

"아니요 괜찮아요.."

그리고 다시 정적 


"저희 좀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빠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오늘 기차로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사과시에 살고있던 Y는 당일로 기차를 예매했고, 서울에서 우린 만날 예정이었다.

내가 K와 통화하기 전까진.. 

그날 나는 결국 배신감을 이기지 못하고 Y를 만나러 서울역으로 가는 길에 K와 통화를 해서 바람을 핀 것에 대한 원망과 저주 악담을 늘어놓았다.

내가 Y를 만나러 가는 줄 모른 K는 "차라리 잘됐네! 나도 말하기 힘들었는데. 우리 이제 끝난거야!" 라고 수화기 너머로 외쳤다. 

"지금 Y 서울에 와있어. 나 지금 만나러 가는중이야." 

"Y가 올라오는중이라고? 걔가 알아?" 

"어 다 알아." 

"일단 끊어봐!!" 

K는 다급히 전화를 끊었고 그가 어디에 전화를 했을 지는 너무나도 불보듯 뻔했다.

약 5분 뒤 Y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빠에게 말하셨네요." 

Y의 목소리에는 눈물과 원망이 섞여있었다.

"그랬네요. 어떻게 삼자대면이라도 할까요?" 

나도 착잡한 마음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Y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저 중간에 내려서 돌아갈거에요. 전 사실 언니한테 전화가 왔을 때 사실이 아니길 바랬어요. 

실제로 보고 언니가 나에게 그건 거짓말이에요 라고 말해줬으면 했어요. 실날같은 희망이었는데 오빠가 스스로 인정했어요. 제가 올라가서 뭐가 어떻게 되겠어요."

Y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요 Y씨도 나도 다 피해자인데... 이렇게 연락하게 되서 정말 유감이에요." 

깊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고 오늘 야근을 해서 늦게 돌아올거라던 K로부터 카톡이 와있었다.


'나 지금 퇴근해서 집으로 가고있어.집으로 와'


나쁜새끼.. 

집으로 들어갔다. 공기가 무겁다.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내 얼굴을 보자 그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너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줬다. 근데 난 너와 더이상 함께 하지 못하겠다."


반지를 보았을 때. 편지를 보았을 때. 사진을 보았을 때 

그에 몇 배에 달하는 충격이 나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핑핑 돌았다. 

"도대체 왜..." 


"너와는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가 없어서.. 나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를 닮은 아이를 원해..넌 수술한다해도 어렵잖아."


가불기이다. 설득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난 인생 처음으로 극도의 우울증과 공황발작을 마주하게 되었다.

하루에 1~2kg씩 1개월동안 20kg가까운 살이 빠졌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K와 완전히 이별하기까지는 2년이 더 걸렸다. 


꺼지라고 소리질렀다가 내옆에 있으라고 울부짖기를 반복하고 

자다가 숨이 막혀 깨어나 옆에서 평온히 자고있는 K를 보며 악에 받쳐 때리기도 해보고 

그렇게 처절하게 무너져가는 나를  K는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헤어졌지만 헤어지지 못한 관계... 

병원에서 일한다는건 이런 심리상태에서는 참으로 고역이다.

손만 뻗으면 치사약물이 잡힌다. 

이걸 혈관에 주사하면 심박수가 미친듯이 올라가서 심장이 터져죽겠지? 

이걸 혈관에 주사하면 심박수가 뚜욱 떨어져서 자듯이 죽겠지?

눈 앞에 있는 약들을 보면서 맨 정신이라면 하지 못할 위험한 생각들을 했다.


일부러 상처받으라고 그의 앞에서 자해를 하기도 하고 

그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를 남겨주리라 마음먹고 뭐든 해야지 했던 것 같다.

K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때로는 어딘가로 훌쩍 데리고 가고, 내가 악담을 하면 묵묵히 들어주고

내가 바보같은 짓을 해서 사경을 헤맬때면 구급차를 불러주고 했다.


이 바보같은 남자는 날 사랑했던 이유로 이렇게나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고 나 역시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을 했고 주변 지인의 소개로 정신과를 가보게 되었다.

몇가지 간단한 심리 검사 후 의사와 짧은 면담.

그는 내 이야기를 덤덤히 듣고 때로는 키보드를 눌러가며 약을 먹어보자고 했다.

약을 먹고 경과를 봐서 필요하면 심리치료를 받아보자고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항우울제, 항불안제를 먹게 되고 

K의 증언에 따르면 본인과 함께 지낸 8년의 세월중 가장 편안하게 자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어느정도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K와는 하우스메이트로 지내며 친구처럼, 연인처럼 지내고있었다. 

집의 계약 만료를 앞두고 나는 K에게 큰 용기를 내었다. 

"이 집 계약이 끝나면 이제 우리 남이 되자. 그동안 미안했고 고마워." 

K의 얼굴에 안도감과 미안함이 섞인 미소가 돈다. 

"그래 나도 고마웠고 너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


K와 완전한 헤어짐을 결심하고 나니 수술의 결심도 선다.

각자의 이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착실히 수술에 대해서도 알아보았고, 이사 후 1개월 뒤로 수술 일정을 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K가 있어 여유가 있음에도 나는 수술을 차일 피일 미루고 있었나보다. 

내가 나의 모습으로 있어도 이 사람은 내 옆에 있어줬으니까...


안녕 K. 내가 가장 빛나는 시절을 함께 보내준 고마운 사람 

힘들게 해서 미안하고 너와 함께 한 순간들이 행복했어 

득남 축하하고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래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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