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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 bird Apr 06. 2023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한 인터섹스 이야기

Epilog.

가족등록부 정정도 마쳤고, 난 이제 사회적으로는 어엿한 여성이다.

이제는 관공서에 갈 때 죄인처럼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은행이나 카드사와 금융 관련 통화를 할 때 본인 확인에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여성으로 편입한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일상생활에서의 불편감이었다. 

남들은 너무나 편하게 개인정보 몇가지로 간단하게 업무처리를 하는 프로세스가

나에게는 본인이 맞으시냐? 등록된 정보와 달라보이신다. 죄송하지만 몇가지만 더 확인하겠다.

혹은 배우자분이시냐 등의 여러가지 불편감을 끼친 부분도 있었다. 


또 연애에 있어서도 전과같지 않다.

K를 포함 나의 모든 연애는 나의 몸의 상태를 상대방에게 이해시켜야했다. 

"너 그럼 트랜스젠더였어?" 가 일반적인 반문 

"아니 트랜스젠더는 아닌데.. 나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그냥 여자랑 남자가 같이 있는거래." 


하지만 지금은 상대방을 이해시킬 필요가 없다.

나의 속사정을 얘기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누군가 육손이로 태어나, 여섯 번 째 손가락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면 

굳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안하지 않는가? 


수술 이 후 몇 번의 연애도 했고, 결혼하고 싶은 남자도 있었다. 

근데 결혼은 정말 어려운 문제이더라. 

어쨌던 나의 삶의 일부는 국가에서 남자로 규정했었고, 이로 인해 나의 상세 서류에는 그러한 내역들이 노출되게 된다. 

말하지 않고 만나기엔 혹시라도 나중에 밝혀졌을 때의 후폭풍이 부담되고, 말하고 만나기엔 눈 앞의 좋은 사람이 사라질까봐 두렵다. 

나의 속 사정을 얘기하는건 마치 상대방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는 느낌인데 그 칼이 언제 나를 향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헤어지고 언젠가 K가 말했었다.

"언젠가 너의 모든 점을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멋진 남자가 나타날거야. 꼭 만나길 응원할게." 

자기는 못한걸 남한테 하란다. 

웃긴사람


내 주변에는 나와 나이가 같은 인터섹스가 한 명 있다.

이 친구는 아직 본인의 성별 형태를 결정하지 않았고, 남자와도 여자와도 연애를 한다. 

남성으로 살아보고자 남성호르몬도 투여했었고, 여성으로 살아보고자 여성호르몬도 투여했었다고 했다. 

같은 인터섹스인데도 그(그녀)와 나는 이렇게 삶의 방향성이 다르다. 


인터섹스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고달픈 애환이 많다.

사회생활도 연애도 친구관계도 남들처럼 평범하기 힘들다. 

아마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 중에도 인터섹스인 분이 있을 수 있다. 

혹은 자신의 자녀가 인터섹스여서 아이도 모르게 수술을 시킨 부모님이 계실 수도 있고 

그리고 대다수는 인터섹스가 뭐야? 라고 할거다. 


인터섹스의 종류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 또한 나 자신의 몸만 알 뿐 그 친구의 몸은 모른다. 

평생 본인이 인터섹스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도 대다수 있다고 했다.

나 역시 우연찮은 계기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런 사람들도 실제로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마 붐비는 지하철 군중 속 한 사람일수도 있고 

혹은 당신의 옆자리에서 당신과 수다를 떠는 동료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 있던, 어떠한 삶을 살던 그의 선택이니 존중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재 결혼을 약속했던 이와 이별을 진행중입니다. 

교제 초반에 해당사실에 대해 얘기했고, 본인도 알고 시작한 관계였음에도

글을 쓰는 중간 무렵 저를 받아들이기엔 자신의 마음이 많이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6월 웨딩촬영을 앞두고있었는데 이런 얘기를 하니 정말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상견례도 무사히 마쳤고, 예비시어머니와도 친하게 잘 지내고있어서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힘들게 얘기하는 그를 보니 하필 내가 인터섹스라 상대방에게도 말하기 힘든 짐을 주었구나라고 생각하니 더 힘들더라구요


하필이면 K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고있을 시기였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겹쳐지면서 너무 많이 힘들더라구요.

회자정리 거자필반 이라 했지만 이별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네요.


글을 마무리지으면서 특별히 할 말이 없어 그냥 주저리주저리 개인 사담으로 마무리지어봤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정도.. 

소수자라고 하기에는 본인의 취향이나 선택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대중적이지도 않은 이들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주변에 이런 분들을 알게 되신다면 그냥 아무 말 없이 평소처럼 잘 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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